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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과 이데올로기 5

20세기 전반기의 '거대한 전환'을 다시 사유하기

by 박종규

저자는 10장의 서두에서 1914-1945년 세계의 불평등구조는 한 국가 안에서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도 틀림없이 불평등주의체제의 역사에서 관찰된 적 없는 가장 빠르고 가장 심층적인 전환을 겪었다고 이야기한다. 전쟁 전야인 1914년에, 사적 소유제의 번영은 식민지체제의 번영만큼이나 절대적이고 영구적인 것으로 보였다. 소유주의적이면서도 식민주의적인 유럽 열강은 자신들의 힘의 정점에 있었다. 당시 영국과 프랑스의 소유자들은 세계의 다른 곳에서 오늘까지도 전례 없는 규모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를 보유했다.


그 후 30년이 조금 더 지난 1945년에 사적 소유는 소련에서, 그리고 곧 중국과 동유럽에서 관철된 공산주의체제에서 사라졌다. 유럽의 자본주의사회에서도 국유화, 공중보건 및 공교육 상위 소득 및 자산에 대한 강력한 누진세 등의 다양한 혼합을 통해 사민주의사회가 되어 가던 나라들에서 사적 소유제는 영향력을 크게 잃었다. 소유자사회의 몰락 원인을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 도전에서 찾고 있다.


1) 19세기말 20세기 전반기에 공산주의와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라는 대항담론과 대항체제의 등장을 초래했던 유럽 소유자사회 내부의 불평등주의라는 도전, 2) 점점 더 막강해진 식민질서에 대한 문제제기와 식민지 독립운동과 연결된 외부의 불평등주의라는 도전, 3) 유럽 열강을 점점 과도한 경쟁과 마침내 1914-1945년의 전쟁과 학살이라는 자멸로 이끌었던 민족주의적이고 정체주의적인 도전이 그것이다.

피케티는 19세기 초반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소득 불평등의 수치적 비율을 예시로 든다. 상위 십분위(소득 상위 10%)의 몫은 19세기와 20세기 초 1차 대전이 시작될 때까지도 유럽 총소득의 약 50%였다. 이는 점점 더 저하되었고, 1945-50년에 30% 선에서 진정되면서 1980까지 이어진다. 반면에 1980년 이후 대서양 저편 미국에서 불평등이 더욱 분명하게 심화되었다는 사실 역시 미국이 20세기말 21세기 초에 유럽을 제치고 불평등의 최선두가 되는 데 일조했다.


이제 불평등 구조는 유럽의 소유주의로부터 미국의 신소유주의 사회에서 심화되었다. 당시 유럽에서는 소득 불평등 수준이 소유자사회의 표지였다. 상위 소득은 거의 배타적으로 소유에서 파생되는 소득(임대료, 이윤, 배당금, 이자 등)으로만 구성되었다. 그래서 총소득에서 소득 상위의 몫이 폭락하고 고전적 방식으로 소유자사회가 무너지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부의 집중과 자산 상위가 급격히 와해되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보기에 2000-2020년 미국 불평등의 기원은 유럽 사회와 조금 달랐다. 미국에서 상위 자본소득은 여전히 사회적 위계의 상층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21세기 초 미국의 높은 소득 불평등은 부분적으로 다른 요인, 즉 1980년대 이후 최저임금 대비 기업 간부와 경영진의 고랙 연봉 급증의 소산이다. 이러한 형태의 불평등은 애초에 더 '정의로운' 또는 '능력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를 전혀 내포하지 않는다.


기회균등의 원리에 따라 능력껏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자유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가 가장 잘 작동하는 미국에서 다국적 기업의 간부와 경영진이 받는 연봉은 자국의 최저임금 근로자의 연봉과 비교할 때 소득 불평등의 격차가 더욱 커졌다. 빅테크 기업인 미국의 상위 글로벌 IT 기업의 창업자 및 경영진이 받는 높은 소득에 대한 조세 비율을 높이는 정책 대신 그 자신이 최상위 소득자에 속하는 도널드 트럼프는 정략적인 선동으로 미국 유권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는 미국 내 다수 백인 노동자들의 불만을 이용하여, 미국 경제의 성장 걸림돌을 불법이민의 증가와 유럽과 동아시아에 대한 미국 방위비의 과도한 분담, 국제 무역의 만성적인 적자 요인을 개선하기 위한 관세 장벽의 설치 공약으로 다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런 사정은 필자가 저자의 시선에 따라 지금의 국제 상황을 미리 분석해 본 것에 불가하다. 피케티는 아주 세밀하게 유럽에서의 불평등 감소와 미국에서의 불평등 증가를 대비하는 통계적 수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일반 독자에게는 그렇게 세세한 분석보다 거시적 안목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의 양대 축인 유럽 소유자사회와 미국 소유자사회와 대립되는 공산주의사회와 포스트공산주의시회에서 이 문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살펴볼 차례이다. 저자는 12장에서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동유럽 사회들의 역사적 위상과 불평등체제의 미래를 분석한다. 과연 공산주의사회와 포스트공산주의사회에서는 불평등체제가 어떻게 변화되어 왔을까? 그리고 북한이라는 기형적 공산주의사회와 마주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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