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주사위(1)
이 에세이는 2008년 리처드 도킨스의 뒤를 이어 과학대중화사업의 책임가인 '시모니 석좌교수'로 임명된 옥스퍼드 대학교의 수학교수 마커스 드 사토이의 저서 [What cannot know: 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를 요약 정리한 시리즈이다. 1장은 <카지노 주사위>란 흥미로운 제목으로 시작하는 데 다음의 글을 인용하면서 논의를 전개한다.
"이 세상은 예측할 수 없는 것과 이미 결정된 것들이 한데 어우러진 채 굴러간다. 눈의 결정에서 눈보라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모든 영역에서 이런 식으로 자신을 창조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시작점으로 되돌아가면 아무것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톰 스토파드의 <아르카디아> 중에서
저자는 자기 연구실 책상 위에 놓인 라스베이거스에서 가져온 붉은 주사위 하나를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만약 주사위를 굴려서 무엇이 나올지를 예측할 수 있다면, 올바른 물리법칙을 적용하여 방정식을 풀어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억만장자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면 주사위의 눈금은 '알 수 없는 것'에 속한다.
수학은 인간애게 닥칠 일을 미리 예견하기 위하여 개발되었다. 수학은 미래를 들여다보는 수단이며, 우리의 운명을 노예가 아닌 지배자로 만들어주는 학문이다.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사거리와 위치 명중률 그리고 파괴력에 대하여 수학적으로 방정식이 만들어지고 예측한 결과대로 실험이 성공하면 그다음 스위치를 누르는 것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하지만 트럼프가 당선될지 개표 전에는 누구도 확실하게 단정을 내리기 힘들고, 우크라이나 전쟁이나 팔레스타인 전쟁이 언제 끝날 지를 정확히 예측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자연에도 패턴이 아예 없거나 너무 복잡한 것도 있고, 깊은 곳에 숨어 있어서 인간의 지식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패턴도 있다. 각 주사위의 거동 방식은 태양이 뜨고 지는 것과 완전히 달라서 어떤 눈금이 나올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주사위는 타협하기 어려운 논쟁에 판결을 내리고, 놀이를 하고, 내기를 거는 수단으로 사용된 것이다. 심지어 성경에서도 고래 뱃속에서 살아난 요나의 경우 제비 뽑기를 하여 바다에 버려졌다. 물론 해석가들은 그 결과가 이미 신이 정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오늘날에 과연 누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저자의 연구에 따르면 정육면체 주사위가 처음 사용된 것은 기원전 3,000년 경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의 하라파 유적지에서 현대식 주사위와 똑같이 생긴 물건이 발견되었으며, 고대 도시 우르에서는 정사면체의 주사위가 발견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인들은 주사위 게임을 매우 좋아했다고 한다.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은 '헤저드'라는 새로운 게임을 퍼뜨렸는데, 이 명칭은 아랍어로 주사위를 뜻하는 '알자르'의 변형이었다.
과연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주사위의 눈금을 미리 알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그들은 주사위의 눈금을 절대로 예측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자연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확실한 사건'과 대부분 동일한 패턴으로 일어나지만 가끔 예외가 존재하는 '개연적 사건'과 우연히 일어나는 '미지의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중세로 넘어오면서 신학자들은 우연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발생하는 시간과 장소는 오직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된다고 설파했다. 과연 그렇까?
주사위의 눈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패턴을 최초로 감지한 사람은 16세기 초 이탈리아의 전문 도박사 제롤라모 카르다노였다. 주사위를 한 번 던지는 동안에 이 패턴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지만 카지노처럼 도박판에서 몇 시간 동안 주사위를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정보이다. 그는 모든 가능한 경우의 수를 일일이 따져보았다. 예를 들어 주사위 두 개를 던졌을 때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총 36가지이며 그 가운데 합이 10인 경우는 세 가지이며, 합이 9인 경우는 네 가지이다.
오래 도박을 하는 사람에겐 10에 거는 것보다 9에 거는 것이 유리하다. 그러나 카르다노 자신도 도박에서 파산하고 자살을 택하였다. 그에 이어서 주사위의 통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사람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였다. 그는 '주사위 세 개 눈금의 합은 6x6x6=216가지가 가능한데, 그중 9가 나오는 경우는 25가지이고 10이 나오는 경우는 27가지이므로 10이 나올 확률이 더 크다'라고 결론지었다. 그 이후 파스칼과 페르마가 주사위 게임의 이길 확률에 수학적으로 도전하였다. 파스칼은 이길 확률을 계산하기 위해서 나오지 않은 확률을 기준으로 거꾸로 계산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파스칼은 확률의 개념을 이용하여 '신을 믿는 것이 안 믿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신을 믿는 사람에게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많은 보상이 주어진다'라고 결론지었다. '신이 존재한다'는 쪽에 내기를 걸었다가 이기면 영생을 얻고 진다고 해도 잃을 것이 없다. 반면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쪽에 걸었다가 이기면 얻는 것은 신이 없다는 지식 이외에 얻을 것이 없지만 지면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진다. 물론 신이 존재할 확률이 애초부터 0이라면 파스칼의 논리는 타당성을 잃는다.
이제 저자는 주사위 확률을 위한 수학적 예측에 뉴턴의 미적분학과 그가 발견한 운동법칙을 적용해보려고 한다. 뉴턴은 [프린키피아]에서 세 가지 운동법칙을 명시하고 그 법칙에 의해 물질세계가 결정되어 있다고 결론지었다. 이 법칙을 적용하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입자의 운동을 알아낼 수 있으니 거의 '만물의 이론'이라 할 판하다. 그러나 뉴턴은 거대한 행성을 점으로 간주했기에 정확한 답은 아니었다. 하지만 뉴턴의 미적분학과 운동 방정식이 알려지면서 신비와 경이로 가득 찼던 우주는 '태엽을 감아놓은 역학의 시계'로 돌변했고, 과학자들은 만물의 이론이 완성되었다고 믿었다.
뉴턴의 방정식으로 오일러는 비점성 유체의 거동을 서술하는 방정식을 유도해 내었고, 푸리에는 열의 이동을 서술하는 열방정식을 유도했다. 그리고 라플라스와 푸아송은 뉴턴의 중력 방정식을 수정하여 유체 역학과 정전기학에 적용할 수 있는 방정식을 유도했다. 그 외에 점성 유체의 거동은 나비아-스톡스 방정식으로, 전자기학은 맥스웰 방정식으로 서술된다. 이런 방정식들로 말미암아 근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과학기술 문명이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인류가 직면한 현실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이런 방정식들로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