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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 3

첼로(1)

by 박종규

"모든 인간은 각자의 한계 안에서 이 세상의 한계를 바라보고 있다."--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저자는 3장의 제목으로 첼로란 악기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자신이 중학교 시절 악기 중에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했고. 나중에 지역 오케스트라의 트럼펫 주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현악기의 은은하고 아름다운 운율을 들을 때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하기 위해 첼로를 사서 연습을 시작한다. 왜 저자는 주사위 이야기에서 첼로 이야기로 넘어갔을까?


그는 첼로의 매력 중 하나가 첼로 지판 위에서 손가락을 미끄러지듯이 옮기면 그 사이에 해당하는 모든 음이 연속적으로 재현된다는 것이다. 트렘펫은 밸브 세 개의 개폐 상태를 바꾸는 조작밖에 할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음 외에는 낼 수 없다. 그런데 놀랍게도 첼로의 연속적인 글리산도와 트렘펫의 불연속적인 음계는 주사위의 움직임을 예측하려는 시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주사위의 눈금을 예측하려면 우선 주사위의 재질부터 알아야 한다. 한쪽 구석의 아세테이트의 밀도가 다른 곳보다 높으면 주사위는 특정 면을 선호하게 된다. 그러므로 뉴턴의 운동 방정식을 이용하여 주사위의 움직임을 알아내려면 주사위의 내부 구조도 알아야 한다. 주사위는 연속체인가? 아니면 작은 조각들이 빽빽하게 들어진 불연속체인가? 바깥 세계를 인지하는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저자가 쇼펜하우어의 글을 인용한 까닭은 바로 이런 인간 인지의 한계를 우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과학자들은 가시광선 대신에 다른 탐색자(전자)를 이용하여 현미경의 배율을 150만 배까지 향상했다. 이것이 바로 '과학자의 눈'으로 알려진 전자 현미경이다. 이 도구를 통해 주사위를 바라보면 런던만큼 확대되어 작은 알갱이 구조가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연속체로 보였던 주사위는 사실은 알갱이로 이루어진 불연속체였던 것이다. 과거엔 물질의 최소 단위를 원자라고 불렀다. 지금의 전자 현미경으로 원자를 확대하면 전자와 양성자, 중성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중성자를 더 크게 확대하면 쿼크라는 소립자가 눈에 들어온다.

2013년 과학자들은 양자 현미경을 이용하여 수소 원자의 핵(양성자) 주변을 돌고 있는 전자를 카메라에 담는 데 성공했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주사위의 기본 단위는 전자와 쿼크로 끝날까? 그 안에 더 미세한 구조가 숨어있지 않을까? 현미경의 성능은 한계가 있으니 이론적으로는 과연 어느 단계까지 파고 들어갈 수 있을까? 수학자인 저자는 분할을 등비수열이란 수학으로 정리해 보고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1, 1/2, 1/4, 1/8. 1/16.... 숫자를 반으로 줄여간다면 도중에 멈출 수가 없다. 그러나 주사위와 같은 물리적 실체를 반으로 자르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연속과 불연속, 수학적 가능성과 물리적 실체는 지난 수 천년 동안 팽팽하게 대립되어 왔다. 우리의 우주는 트렘펫의 불연속적 선율에 맞추어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첼로의 우아한 글라산도(높이가 다른 두 음 사이를 미끄러지듯이 연주하는 주법)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가?

저자는 우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는 믿음의 기원은 잘 알려진 유물론자 데모크리토스가 아니라 피타고라스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한다. 피타고라스는 어느 날 대장간 앞을 지나가다가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는 소리의 수학적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팽팽한 줄을 퉁기는 실험에 몰입했다. 예를 들어 첼로의 전체 줄 길이의 1/2 지점을 손가락으로 눌렀을 때 나는 음은 개방현의 음과 화성적으로 가장 잘 어울린다.


이 두음 사이의 간격을 옥타브(주파수가 두 배 차이가 나는 두 음 사이의 음정)라고 하는데, 우리의 귀는 옥타브 간격으로 떨어진 두 음을 비슷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음의 높이를 계명(도, 레, 미....)으로 표기할 때도 옥타브와 상관없이 같은 이름을 사용한다. 또 1/3 지점을 손가락으로 누르고 활을 그어도 개방현의 음과 화성적으로 잘 어울리는 소리가 난다. 이 음이 바로 화성의 기본인 '완전 5도'이다. 우리의 잠재의식은 소리를 들을 때 파장의 정수(0을 포함한 자연수와 음수를 모두 포함하는 수, 분수와 소수는 정수에 포함되지 않음) 관계를 인식하고 있다.

화음과 정수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발견하고 흥분한 피타고라스와 그의 제자들은 모든 만물의 기본 요소를 정수로 간주한 우주 모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로 등장한 고대 그리스의 우주론은 수학적 조화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였고, 그들의 우주 모형은 각 행성의 궤도가 수학적으로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구의 음악(music of sphere)'를 구현하고 있다. 피타고라스 이후 오랫동안 '모든 물질은 무한정 분해될 수 있다'는 믿음이 서구 사상을 지배하게 된다. 과연 그 믿음은 현대에도 지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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