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3

남은 시간의 의미

by 박종규

테아나우를 떠나서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오는 길은 남섬의 반대쪽으로 난 해안 길을 따라서 오는 길이었다. 여행객들이 주로 중간에 머무는 곳이 바로 더니든이란 도시였다. 안내서에는 이 도시가 잉글랜드인이 아니라 스코틀랜드인이 세운 도시라고 적혀 있었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인은 잉글랜드인에게 오랫동안 탄압을 받 던 민족이었기에,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다. 북쪽으로는 북해에 접해 있기에 겨울이 길고 다른 북쪽 민족처럼 스카치위스키라고 불리는 도수 높은 술을 만들어서 추위를 견뎠다.


그런 더니든에서 스카치위스키 공장을 방문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여행 일정이었다. 영국에서 잉글랜드 지역만을 가보았던 나는 뉴질랜드에서 작은 스코틀랜드를 만났다. 더니든의 위스키는 강렬했고 달콤했다. 항암제를 위스키처럼 만들 수 없을 것인가?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항암제의 특성 중 하나는 신체의 모든 세포와 동시에 간과 신장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특히 신장의 힘이 떨어지면 먼저 나타나는 현상은 귀울림 즉 이명이다. 항암제로 말미암은 이명을 치료한다는 것은 내게 불가능하게 보였다. 그래서 그 울림을 초당 30km의 속도로 달리는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로 여겼다.

우리의 조상들은 크고 작은 고난들에 익숙해지는 법을 배웠다. 우리 인류와 가까운 네안데르탈인은 멸종했지만, 새롭게 등장한 호모사피엔스는 아직도 번성하며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소수 인종으로 살아남았다. 그들의 전투적인 춤은 비록 관광상품으로 전락했지만, 그들의 잠재의식에 남아 있는 미지의 섬에 대한 적응력과 탐구심은 영국인들과 협력하여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 대표적 도시가 바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 이다.


처음 남섬의 이 도시에 내렸을 때 방문했던 한국인 교회의 모임에서 대통령 전용기의 비행사 출신이었던 호탕하게 보이는 외모를 가진 한 노인은 내게 정 착을 권유했다. "내가 다녀 본 중에 여기만 한 곳도 없어요. 퇴직 후에 살기에 는 남섬이 최고죠. 낚시도 골프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않아요. 이민을 온 한국 사람들도 학력이 높고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 요." 그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남섬 자랑을 늘어놓았다. 게다가 원하면 자신이 운영하는 사슴 목장에 가서 녹용을 주겠다고 말했다.

크라이스트처치는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안에 있는크라이스트처지 칼리지 (Christchurch College) 출신들이 새로운 이상사회를 꿈꾸며 정착한 도시이 다. 내가 이 섬을 자유 여행지로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이 도시 인근에 있는 캔터베리 대학교에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가 이민을 와서 연구에 몰입했듯이, 연구년을 대비해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찾아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국의 지성인들이 과연 얼마나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했을까? 라는 문제를 확인해 보려는 의도도 있었다. 포퍼는 전체주의적 사회를 극도로 혐오하는 사람 이었다.


그의 주저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인데, 이 책에서 그는 플라톤에서 마르크스에 이르는 유토피아 사상이 현실 사회에서 전체주의로 변질되는 것을 거침없이 비판한다. 실제로 크라이스트처치에 와서 영국의 지성인들이 이상사회를 건설한 것인지 아니면 그 가능성을 발견해보려고 했을 것이다. 그의 이런 모색은 후에 내가 초대교회가 재현된 공동체를 중국의 가정교회들을 방문하면서 찾아보려는 시도와 비슷했다.

이 도시는 '정원의 도시'라고 불릴만큼 식물원과 아름다운 공원이 많은 도시 였다. 주말이면 공원 곳곳의 넓은 잔디구장에서 시민들이 럭비 경비에 몰두했으며, 도심에는 신 고딕 양식으로 건축된 크라이스트처지 대성당이 장엄하게 서있다. 성당 주위에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누구나 원하면 부담 없는 비용으로 배를 탈 수도 있었다. 후일 우리는 이 대성당도 지진이 발생해서 상당 부분 파손되는 광경을 미디어로 보았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 불이 났을 때도, 내 추억의 일부가 불에 타는 것처럼 느꼈는데, 이 대성당의 파손 역시 그와 비슷한 감정이 나타났다.

왜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에는 파괴되고, 없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영원하며, 영존하는 것일까? 철학자가 아니어도 사람이면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져보았을 것이다. 종교라는 독배를 마시는 순간, 예술이 라는 독주를 마시는 순간, 철학이라는 칵테일을 마시는 순간 사람들은 영원에 대한 진지한 자기 물음을 상실한다. "참 허무하네요. 인간이 만든 것들은." 아 내가 노트르담 성당의 화재를 보면서 불쑥 던진 말이었다. 함께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은 것이 어제 같았는데 그 아름다운 성당이 불에 타서 사라지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서 한 말이었다.


죽음에 직면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은 <남은 자들의 슬픔>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나 불안은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병 휴직 이후 일 년을 더 근무한 다음 다시 연구년을 얻어 원하던 해외 연구로 사용하지 못하고 회복에만 전념하고 있을 때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수학 교수 누구 아시죠?" "네 잘 알죠, 교양학부에 나보다 일 년 늦게 임용이 되었고 아주 좋은 사람이죠. 그런데 왜요?"“그분이 폐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병을 발견한 지 그렇게 오래전도 아닌데.”

그는 얼마 못 살고 결국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었다. 동료 교수가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마지막 그 병동으로 옮기면서 그런 운명을 받아들였고, 평온하게죽었다고 한다. 그는 평생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좋은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아내가 운영하던 학원 차의 운전사가 교체되던 시기마다, 출근 전에 그 차를 직접 운전할 정도로 성실하게 살았던 수학 교수였다. 인생의 골목길을 돌다 보면 갑자기 닥쳐오는 운명이 있게 마련이다. 그 어떤 길을 가든지 상관없이 항상 죽음은 우리 안과 밖에 도사리고 있다. 아무런 예고 없이 깜박거림도 없이 꺼지는 전등도 많다.


때론 남은 자들의 슬픔을 걱정한 나머지 그 이유만으로 힘든 고난이나 병을 오히려 극복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외과 의사였던 후배가 관찰한 사례가 나에게 전해졌다. 6개월 시한부 말기 암으로 진단된 한 여성이 몇 년 후에도 거리를 걸어 다니는 광경을 본 이 의사는 그녀에게 다가가 이렇게 물었다. "어떻게 그 병을 고치셨나요? 제가 진단할 때는 별로 시간이 남지 않았는데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아직 어린 새끼들이 셋이나 되는데 그런 내가 어떻게 죽을 수 있겠어요. 그놈들 클 때까지 어쨌든 버티며, 살아야겠다고 생 각하고 무조건 살았어요.”

염세주의자였던 쇼펜하우어는 ‘생에의 맹목적 의지‘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설파했다. 맹목적 의지가 고결한 의무로 바뀌면 그 삶은 다른 차원으로 이동한다. 그는 삶의 본성 중에 반쪽만 보았다. 어미의 사랑은 맹목적이기 보다는 숭고한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단순히 종족 보존을 위해 죽음이라도 감수할 있는 생명체의 본능을 넘어서, 오직 인간 어미나 아비의 사랑은 신의 사랑인 아가페에 비견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바로 죽음에 직면해서이다. 내가 살아남기로 결심을 한 이유에는 이 아가페적 사랑 이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아직 어린 자식이나 나를 믿고 신뢰하는 공동체를 두고 빨리 죽을 수는 없었다. 생존의 본능을 넘어서 숭고한 사명이나 고결한 목적은 인간에게 죽음을 초월하는 힘과 용기를 부여한다.

진화하거나 멸종하거나, 살아남거나 죽거나, 마지막에는 결국 이 물음만 남는다. 그런데 살아남에 숭고함이란 언어를 붙일 수 있는 종은 인간밖에 없다. 맹목을 고결로 바꾸면 삶은 더 진지해진다. 진지함은 엄숙함으로 나아가고, 엄숙함이든 고결함이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 인간의 특권이다. 나는 남은 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인이 되는 쪽을 택했다. 매 순간 우리는 내 삶의 시를 쓸 수 있다. 이 말은 매 순간 우리의 삶에 고결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제 대학 시절 읽었던 월터 휘트먼 <나의 노래>란 시가 나의 시가 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우연적 필연이었다.


“난 나 자신을 찬미하고, 나 자신을 노래하네, 내가 받아들이는 것을, 당신도 받아들이리라, 내게 속하는 모든 원자가 또한 당신을 이루고 있으니. 난 한가 롭게 내 영혼을 불러내어, 편히 기대어 여름 풀잎의 새싹을 바라보네. 내 혀와 내 피의 모든 원자가 이 흙, 이 공기에서 생겨났고, 여기서 태어난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그 부모는 똑같이 그 부모의 부모에게서 태어났네. 이제 37세의 더 할 나위 없이 건강한 나는 시작하네,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길 바라며. 이념적 교의와 학파들은 보류해 두라, 현재의 상태를 충분히 알고 잠시 물러나되, 결 코 잊지 말기를, 나는 좋든 나쁘든 품을 것이며, 나는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말하리라, 원초적 힘을 가진 거침없는 자연을."

더니든에서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가는 길은 해변을 낀 도로였다. 남섬의 렌트카 회사에서 차를 대여하고, 운전하는 첫날 너무 힘들었던 이유는 뉴질랜드는 한국과 달리 차선이 오른쪽 주행선을 달리게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운전석도 오른쪽에 있었기에, 우측으로 가야 한다는 암시를 마음속으로 수백 번 되새기면서 운전해야만 했다. 무심코 좌편으로 가면 바로 역주행이 되니 정말 이것은 생사가 달린 문제였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 삶의 방식을 완전히 반대로 바꾸어야 할 시기도 있다는 사실을 실감한 것이다.


이틀 정도 지나 오른쪽 노선의 운행이 익숙해졌지만, 열흘 동안의 너무 강한 자기암시 때문에 한국에 도착해서 거의 보름 동안 나도 모르게 신호등의 교차로에서 바로 우측으로 진입하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휘트먼이 "이념적 교의와 학파들은 보류해 두라", 이렇게 쓴 이유는 분명하다. 사람의 사고는 오랫동안 관습과 인습에 의해서 그것이 마치 정해진 노선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갑자기 다른 행동 양식이 제시되면 마치 일제가 내린 단발령에 혼란스러웠던 조선 말기의 백성처럼 갈팡질팡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고 그와 자신의 근린 관계에 따라 애석해하기도 혹은 잠시 자기 죽음을 함께 생각하다가 이내 무의식 속으로 밀어 넣고 말 것이다. 그러나 직접 자기 죽음에 직면하면 이제 삶의 방식은 그가 원하지 않던 정반대의 노선으로 변화한다. 사실 인간은 먼 미래에 대하여 그렇게 걱정하지도 우려하지도 않는다. 지구의 종말에 대해 진심으로 자기 일처럼 고민하고 걱정하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만약 내일 내가 죽는다면, 과연 스피노자의 말처럼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을 수 있을까?

남극에 가까운 겨울 해변은 잠시 멈출 때마다 차가운 바람과 높은 파도로 일렁이었다. 뉴질랜드 남섬의 특징 중 하나는 몇 시간을 달려도 사람이 사는 곳 이 드물다는 것이다. 가끔 표지판에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농장의 문구가 달려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외로운 목장주 부부가 여행객에게 무료로 숙박을 제공하며 하루라도 사람들과 뭔가 교류해서 소통의 힘을 얻기 위함이었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와 소통한다는 것이다. 이 소통이 끊어지면 삶도 끝나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은 누구나가 다 소통의 부재를 경험한 데서 비롯된 것 같다. 삶은 정신이든 육체이든 타자 혹은 다른 존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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