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4

고난과 회상 그리고 감각의 기억

by 박종규

남편이 아파도 가장 가까운 아내는 그 육체의 통증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는 없다. 단지 안타까움만 표현할 뿐이었다. 탈무드의 격언처럼 가장 큰 고통은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나는 회복기에도 내내 여러 가지 통증에 시달렸는데, 가장 괴로웠던 통증 중 하나가 체중감소로 인해 담석이 생겨서 담관이 막힘으로 인한 고통이었다. 이 통증은 ‘담도산통’ 즉 아기를 낳을 때 겪는 극심한 통증과도 비교할 만큼 아프다고 하는데, 하필 가장 심한 통증이 바로 병 휴직 일 년 후, 복직을 한 시기에 발생하였다.

그 해에 폭설은 유난히도 더 많이 소백산 주위에 내렸다. 학교 뒷산 너머에 호수가 있고, 그 호수 옆에 노부부가 운영하는 목조 펜션의 이층에 일주일마다 사흘간 방을 얻어서, 학교 당국의 용인 아래 강의를 사흘에 모아서 집중적으로 하고 다시 도시의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어느날 저녁 무렵 명치와 복부 오른쪽 하반부에 엄청난 통증이 시작되었다. 주인에게 병원의 구급차를 요청했으나 심한 폭설 때문에 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다. 폭설에 덥힌 산속 겨울 별장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리고 아침 햇살에 비친 지붕과 나무에 덥힌 희고 영롱한 백설의 빛남은?

한 시간 정도의 극심한 통증이 지나가자 아마 담석하나가 담도로 내려가 버려서 그런지 통증은 사라졌고, 신경안정제 두 알을 먹고 겨우 잠을 자고 일어났다. 차는 언덕을 올라갈 수 없었고 전화로 학부 사무실에 휴강을 알린 다음 천천히 학교의 연구실로 돌아왔다. 연구실에는 비상용으로 준비한 수지침이 있었다. 다행히 별장에서 죽을 먹은 뒤라서 약간의 기운이 남아 소파에 누워서 수지침으로 친구에게 배운 왼손의 혈 자리를 하나씩 찔렀다. 수지침 역시 찌를 때마다 창밖의 눈에 비친 햇살처럼 하나씩 반짝거렸다.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역설적으로 의술도 발달한다. 외과의의 최고 임상 장소는 바로 전쟁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통증을 통증으로 다스리는 법을 터득했다. 적어도 내가 경험하기론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새롭고 영광스러운 고난의 길을 택하는 방법밖에 없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부자는 고난의 길 대신에 마약을 먹고 즐기다 죽는다. 그러나 즐거움은 항상 잠깐이고 매 순간 우리는 고난 또는 고통의 바다에 산다.

석가 붓다는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으나, 마지막까지 육체의 고통을 피할 수 없었다. 그는 80세 이후 식중독에 걸려 심한 이질을 앓다가 마지막 말을 이렇게 남기고 죽었다. “쉬지 말고 수행하라.” 수행 역시 또 다른 고난의 길이 아닌가? 그의 마음은 고통을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그 역시 고난의 바다에서 고통으로 죽은 것이다. 사도 바울도 로마 감옥에 갇혀서 이렇게 편지를 썼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나는 위대해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누구도 위대해지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고난을 넘어서고 어떤 사람을 고난에 좌절한다. 위대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유전자 속에 이미 고난을 넘어선 정보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정보는 고난의 시기마다 순간마다 우리의 삶에 빛을 준다. 나는 지금도 손에 수지침을 찌를 때마다 순간의 통증에 주목하지 않고 그 침 끝의 찰나적 빛남을 본다. 적어도 사람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고난의 순간과 일치한다.

크라이스트처치로 돌아온 다음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핸머 스프링스(Hanmer Springs)란 야외온천으로 갔다. 지상낙원으로 불리는 뉴질랜드에도 실제로 가보니 현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남극권 위에 형성된 오존층의 일부 붕괴로 말미암은 태양 자외선의 유입이 증가했다는 것이다. 즉 태양에 노출되면 다른 지역보다 자외선이나 다른 유해 방사선에 피폭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과 더불어 뉴질랜드는 ‘불의 고리’라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위치하기에 지진이나 화산 활동이 불시에 닥친다는 위험도 존재한다.


이렇게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지구 위 어디인들 안전할까? “이제 몸도 마음도 지쳐가네요, 마지막으로 핸머 스프링스에 가서 온천이나 하고 쉬다가 가는 계획은 정말 잘 짰어요.” “내가 짠 게 아니라 그냥 추천하는 코스대로 간 것이지. 다우트플 사운드 말고는 다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곳이라네.” 실제로 처음 가는 여행지에는 검증된 코스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물론 그 코스 틈 사이에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숨은 보석 같은 곳도 너무 많다. 우리가 대부분 자유 여행을 택한 이유도 그런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기 위함이다.

남반부의 계절과 북반부의 계절은 반대이다. 뜨거운 여름 인천 공항에서 출발한 비행기는 쌀쌀한 겨울 크라이스트처치 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겨울날 야외온천을 해본 경험이 있었던 우리에게 핸머 스프링스의 온천은 그런 경험과 유사하리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핸머 스피링스에는 야외온천탕이 아니라 아주 큰 야외온천 수영장이 있었다. 밖에는 흰 눈이 덮인 수풀이 있었고,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세 개나 되는 넓은 수영장에서 마음껏 수영도 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온천의 물은 더운 풀과 따뜻한 풀 그리고 미지근한 풀로 구분하여, 원하는 곳에서 누구나 온천욕과 수영을 병행할 수 있게 만들었다.


우리가 숙박한 곳은 단층으로 숙박 시설이 나란히 배치된 모텔이었다. 그곳은 영어 억양으로 보면 뉴질랜드 토박이라기보다 오히려 영국 출생으로 보이는 아주 친절한 노부부가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아직도 그들과 만나는 순간에서 헤어지는 순간까지 친절함과 배려심 그리고 다정한 말투가 내내 뇌리에 인상 깊게 남았다. 그리고 그들의 진솔한 환대는 런던의 빅토리아역에서 케임브리지행 기차를 안내하던 여승무원의 친절함과 더불어 피카달리 서커스에서 약간 술에 취했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환영의 말을 던진 금발 청년들의 미소와 함께 마치 기억의 황금 줄에 박힌 보석같이 아직도 빛나고 있다.

병을 발견하기 몇 해 전에 친구의 권유로 들어놓은 보험 덕분에 수술 후 특실에서 회복하는 경제적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사람의 손길이 그렇게 고맙고 필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것은 밤새 통증이 찾아올 때마다 벨을 누르면 재빨리 찾아와서 진통제를 놓거나 다른 빠른 조치를 한 당직 간호사들의 신속함 때문이었다. 대개 야간 당직이 어려워서 종합병원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는데, 정말 삼 교대로 진행되는 간호사의 근무는 곁에서 보기에도 안타까울 정도로 힘들었다. 중환자실에 근무할 경우는 더 어려움이 클 것이다. 우리가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낯선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것은 참으로 인간의 존재가 빛이 나는 순간이다.

“당신도 고생이 많지만, 정말 종합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보통이 아니네. 우리야 회복해서 퇴원하면 되지만 일 년 내내 이런 사람들을 상대하고 평상심과 친절함을 유지한다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아.” “맞아, 나도 당신도 힘들지만, 누군가 옆에서 우리를 보살펴준다는 것은 사람에겐 반드시 사람이 필요하다는 귀한 경험을 한 것 같아.” 아내도 나와 같은 심정이었다. 환자에게는 병원을 가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 그러나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나 간호사들의 섬세한 치료와 친절한 대화는 죽어가는 사람에게도 희망의 의지를 준다. 다행스럽게 그 이후에도 많은 의료계 종사자들이 내게는 항상 좋은 인상을 주었다. 혹시 내가 너무 절실히 그들을 필요로 했기에,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면, 사람은 누구나 저절로 그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게 된다. 배려는 교육된 습관일 수도 있고, 반대로 상대방의 태도에 달렸을 수도 있다.

수술 후 깨어나 보니 코에는 산소 튜브가 달려있었고, 링거대에는 흰 액체가 든 비닐 주머니와 진통제로 보이는 작은 병과 함께 수액 링거에서 나오는 선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오른팔 혈관으로 그 액체들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다. 나중에 안 것이지만 흰 수액은 일명 ‘TPN(total parenteral nutrition: 인체에 필요한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 전해질 심지어 비타민까지 다 들어있는 영양제)’으로 식사를 할 수 없는 환자에게 충분한 영양을 공급하는 액체였다. 그 액 덕분인지 사흘 동안 금식 기간에도 전혀 허기를 느끼지 않았다. 사흘 후 처음 제공되는 식사는 흰 미음이었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대개 마지막 순간 며칠 전에 환자들은 곡기를 끊는다고 한다. 식욕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것이다.


흰 미음을 하루 정도 먹은 후에 간단한 조식이 나왔다. 가장 익숙한 음식은 흰밥과 계란찜이었다. 조식 즉 사람에게 모든 종류의 아침 식사는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게 한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브런치를 먹는다고 하지만 간단한 세면 후의 조식은 마치 녹색 풀잎이 아침 햇빛과 탄소와 물로 광합성을 하여 포도당을 만들 듯이 같은 원리로 인체에 새로운 에너지를 공급하는 것이다. 여자들은 남자보다 나이가 들수록 여행을 좋아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먹고, 청소하고, 잠자리를 준비하는 등의 모든 가사 노동에서 해방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기에 나는 아픈 이후에도 방학이 오면 몇 차례나 아내와 딸만을 위하여 몇 주씩 세계 여행의 기회를 주었다. 내가 없어도 사진 속의 그녀들은 세계의 여러 장소에서 아름답게 빛났다.

보통 자유 여행을 하더라도 여행객들은 예약할 때, 조식이 제공되는 호텔이나 펜션 또는 모텔을 이용하게 된다.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조식 역시 핸머 스프링스에서 그 친절한 할머니가 자신의 부엌에서 투숙객들에게 제공하는 식단이었다. 대개의 조식은 우유와 커피, 오렌지 주스 등에 시리얼과 달걀, 베이컨, 토스트, 치즈나 버터와 과일 몇 조각이었는데, 할머니의 조식은 그런 것들에다가 직접 만든 수제 요구르트와 쿠키 그리고 여러 종류의 과일들이 정성스럽게 배열되어 있었고, 따뜻한 커피 역시 다른 곳과 다른 독특한 향기를 품고 있었다. 그날 투숙객은 우리를 포함하여 5명 정도였다. 그러나 뷔페식 식탁 위에는 10명이 먹어도 풍성한 음식이 정성스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우리가 80세를 산다고 가정하면 젖을 떼고 먹는 조식은 대략 28,470번 정도 될 것이다. 아무리 소박한 아침 식사라 하더라도, 아침 식탁은 아침 햇살만큼이나 반갑다. 다이어트 때문에 조식을 거르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의사들은 말한다. 아침을 과하게 먹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술 후 거의 일 년 동안 아침마다 나는 아무런 식욕을 느끼지 못했다. 지금도 식욕이 거의 없다. 나의 얼굴과 몸은 말라만 갔고, 어떨 때는 뼈만 남아서 공항의 엑스레이를 통과하는 사람들의 모습처럼 그렇게 보이기도 했다. 가끔 식탁 앞에서 이런 말도 했다. “맑은 공기나 음식의 냄새만으로도 기운을 얻는다는 신선처럼 살 수 없을까?” 그러자 아내의 핀잔이 곧 나왔다. “살기 위해 그냥 먹어요. 식욕이 없더라도 기계가 전원으로 전기를 얻듯이 속으로 부드러운 음식을 넣고 오랫동안 씹고 또 씹어요. 그러면 단물이 생기니까.” 아내는 단호했다.


가끔 나의 꿈속에서는 예전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식사 장면들이 기억의 창고에서 흘러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 가운데 많이 재생되는 필름은 역시 중국인 제자들이 초대했던 산동성 곡부(취푸)에서 그들의 아버지와 삼촌이 사준 저녁과 그다음 날 점심 식사였다. 대개 한국인들이 중국으로 여행을 가서 직접 먹는 현지 중국 요리는 입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첫째 이유는 중국 특유의 향신료 냄새 때문이고, 다음은 여행사가 예약한 식당은 거의 싸구려 메뉴가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제공하는 아들의 선생에 대한 배려는 중국 문화에서 보면 가장 특별한 손님을 위한 특별한 음식의 대접으로 연결된다. 그날 먹었던 요리는 15 접시에 달하는 종류의 진기한 음식이었는데, 같이 간 일행들도 한결같이 맛없는 요리가 하나도 없었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지막 디저트는 호두로 만든 큰 산의 형상 위에 꿀을 부은 것이었다.

사람은 먼저 먹고 마시고 일하고 그런 다음 노래하거나 기도하고 사랑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주아리가 쓴 『엘불리의 철학자』란 책을 사게 된 동기도 부질없는 짓인 줄 알았지만, 이제는 실제로 식욕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으로나마 최고의 요리를 음미해 보려는 나의 애타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물론 결과는 무감각으로 끝났다. 아무리 천재적인 요리사의 창작 요리를 철학적으로 해석해도, 그림이나 글의 떡은 그림이나 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항암을 거친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제한되어 있다. 의사는 다음의 원칙을 내게 이야기했다. “짠 것, 탄 것, 훈제한 것은 거의 먹지 않는 것이 재발 방지에 좋습니다.” “뒤에 두 음식은 지킬 수도 있겠지만 간을 뺀 음식을 어떻게 먹습니까?” 내가 즉시 이렇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짠 것은 아주 짠 것, 예를 들어 젓갈 같은 것을 말하죠. 이후에 정상 판정이 나와도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미국의 연구진들이 오랫동안 임상 결과로 발견한 원칙이니.”라고 말했다.


사실 거의 7년 동안 방학이면 중국을 제자들의 고향으로 혹은 다른 지역에 다른 이유로 여행하였는데 초라한 시골의 식탁에서부터 대도시의 최고급 호텔의 식탁에 올라온 요리 중 하나도 맛없는 요리는 하나도 없었다. 나는 음식에 있어서 만큼은 거의 중국 사람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중국 요리들만 먹어도 세상의 요리를 다 먹어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중에 누군가 하나만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어린 송아지찜을 추천할 것이다. 하나를 더 말하라고 한다면,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먹었던 어린 연어 스테이크 요리이다. 몇 날 동안 점심마다 먹을 정도로 싱싱한 어린 연어로 만든 부드러운 스테이크는 아직도 미각에 남아 있다. 유대인들도 최고의 음식으로 어린 양고기와 백포도주라고 이야기한다. 사자나 표범도 주로 어린 가젤이나 송아지를 사냥한다. 잡기에 쉽기도 하지만 그 살이 연하고 부드러워 맛이 있기 때문이다.

마음에 들어온 감각과 기호 중 가장 깊이 새겨지는것은, 아마도 신체의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 생긴 인상들일 것이다. 고흐는 밖의 사물을 그리지 않고 자기 마음에 새겨진 인상을 그렸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란 그림에서 빛나는 별은 창밖에서 보이는 밤하늘 광경이 아니라 자기 마음속 인상에 나타난 별들이다. 글이나 개념들은 희미해져도 감각이나 인상은 오랫동안 남아 있다. 트라우마는 그런 강력한 인상 때문에 발생한다. 너무 강한 자극은 일종의 경고처럼 두뇌에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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