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6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

by 박종규

리양에 살던 여학생의 할아버지는 저장성의 유명한 서예가였다. 남산죽해 입구에 그의 필체로 쓴 돌로 된 비석에 새겨진 한자가 있었다. 서체에 대해 평가할 수준이 없는 나로서는 필체의 한 획마다 뭔가 강한 기운이 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대나무 숲은 대나무 바다라고 할 만큼 넓었고 다양한 종류의 대나무 수종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개방 이전의 중국을 서구인은 죽의 장막이라고 불렀다. 대나무는 고대 문명 중 유일하게 현대까지 지속되는 중국 문명의 강인하고도 유연한 생존력을 묘사하는데 가장 적합한 식물이다.

우리 집 북쪽에도 대나무 담장이 있다. 한 번씩 윗집에서 자기 정원을 관리할 때면 경계가 되는 대나무 담장에 솟아오른 조릿대들을 일정하게 잘라주지 않았다면 병약한 내가 나중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인하고 왕성한 번식력을 가지고 있었다. 대나무 담장은 찬 북풍을 막아주기도 하였고 저녁녘이면 때때론 대나무 사이를 스치면서 내려오는 바람들이 지쳐가는 나에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이 나무들을 봐라! 대나무의 새순이 솟아나듯 네 영혼도 다시 솟아나리라’

리양을 떠날 때 여학생의 할아버지는 나에게 같은 내용의 다섯 자로 된 문장을 2장의 큰 종이에 직접 써서 선물로 주었다. 그 한자 성어는 ‘도리만천하(桃李滿天下)‘란 문장으로 한국어로 풀이하면 ’복숭아와 오얏이 천하에 가득하다는‘ 의미인데, 주로 학자에게 우수한 문하생이 많기를 기원할 때 쓰는 고사성어라고 제자가 말해주었다. 어느 해부터 학교에는 중국인 유학생들이 입학하기 시작했고, 정원 외 입학은 유학생의 경우 제한이 없었기에 학과 교수로만은 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학생들이 매년 증가하였다.

나는 적어도 내 수업을 듣는 유학생 중 자원자만 모아서 일주에 한 번 연구실에서 한국어 능력시험지를 풀이하도록 도와주었다. 토요일이면 특별히 할 것이 없는 학생들을 집에 초대해서 저녁을 함께 먹고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문화를 배워나갔다. 이런 모임은 아프기 전 7년 동안 거의 매주 진행되었다. 낯선 나라에서 가족애가 필요한 학생들과 외동(外洞)인 딸아이가 만나서 새로운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졸업한 학생들 일부는 나의 조카가 고위 간부로 있는 한국 대기업의 중국법인 회사에 취직을 알선해주었는데, 그 결과 거의 이십 명 이상의 제자들이 중국 곳곳에서 자리를 잡고 내가 다시 방문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도리만천하’의 염원이 작게나마 이루어진 것이다.

장이 서서히 뚫리면서 죽을 먹기 시작했고, 그런 다음 무른 밥과 국을 먹으니 다시 몸이 어느 정도 활력을 찾아갔다. 아내와 나는 오전이면 인근의 산을 찾아 강아지를 데리고 매일 가벼운 등산을 하곤 했는데, 한국에 높이가 높지 않은 구릉과 같은 산들이 많다는 것은 회복 중인 환자인 나에게 좋은 치료의 장소가 되어 주었다. 산 중턱에 있는 지금 집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뒷산 낮은 봉우리에 30 여분 맨발로 걸을 수 있는 솔밭길이 나 있다. 무더운 여름이라도 솔밭으로 우거졌기에 더위를 모르고 천천히 걷다 보면 솔향 가득한 바람과 가끔 더덕 냄새도 군데군데에서 섞여 흘렀고, 장마철에는 이름 모를 버섯들이 여기저기에서 숲의 요정처럼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일본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만든 만화영화에서 나오는 것 같은 신비한 광경을 보여주었다.


버섯들은 관찰할수록 신기한 종류의 생명체이다. 전혀 흔적도 없이 숨어 있다가 어느 날 갑자기 수많은 종류의 버섯들이 봉우리들로 나타났다가 마치 작은 우산처럼 그것들을 펼친다. 그 시기에는 가끔 버섯 채취자를 만날 수 있는데 하루만 산을 돌아다녀도 가마니 포대 하나에 가득하게 식용버섯을 모은 것이 신기하게 보였다. 그들은 어떻게 식용버섯을 구별할 수 있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그냥 말로는 설명이 힘드니 무조건 구분을 잘하는 사람들을 먼저 따라다녀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사실 등산이나 여행에는 안내자나 정확한 정보가 가장 중요하다.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혈액 종양외과 주치의는 각별하게 치료 기간 중 어떤 민간요법도 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특히 버섯을 조심하라는 말에 힘을 주었다. 그것이 식용이든 약용이든 버섯에는 간이 감당해야만 하는 일종의 독성이 있다는 것이다. 상황버섯이든 영지버섯이든 아니면 어떤 약초이든 약이 되는 것은 독도 된다. 항암제는 일종의 약한 독극물이다. 그것은 암세포를 파괴하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세포도 파괴한다. 그나마 어느 세포가 살아남는가 하는 것이 환자의 생존과 직결된다. 치료 기간 중 문득 이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사랑도 일종의 독이 아닐까? 보통 사랑은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대부분의 사랑 즉 본능적 사랑은 상처도 남긴다. 사랑하지 않으면 마음에 남는 깊은 상처도 없다. 물론 말이 안 되는 것이지만

저장성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은 닝보공대를 졸업하고 3학년으로 편입한 학생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항주에서 온주까지 가는 길에 각자의 고향을 방문하는 경로로 이루어졌다. 상해(상하이)에 도착한 우리는 저장성에서 상해로 마중 나온 제자들과 상해 중심 남경로에서 눈으로만 하는 쇼핑과 간단한 식사를 한 다음 황포강 야경의 하일라이트인 동방명주를 배경으로 함께 사진을 찍었다. 중국의 도시는 대개 낮보다 밤이 더 화려하다. 도시마다 특색있는 화려한 야경은 여행객을 꿈같은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그리고 매년 그 야경은 갈수록 더 정교해졌고, 중국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듯 더 규모가 커졌으며 통금제도가 있었던 당나라와 달리 통금이 없던 송나라에서 불야성이란 말이 나온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마 그 당시 송나라를 가본 고려인은 생전 처음 본 불야성에 압도되었을 것이다. 도시 야경의 화려함은 대낮의 섬세한 풍경과 달리 극적 효과를 연출한다. 내가 처음 중국을 방문한 것은 연변과기대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실 그것은 명분이었고 실제 목적은 학회가 끝나고 백두산 천지를 가는 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밟은 중국 땅은 요녕성(랴오닝성) 대련시였다. 1990년대 후반이었으니 개방이 이루어진 지 10년도 안 되었고, 대다수 건물은 호텔이나 역사적 건물 말고는 전부 오래된 허름한 아파트 단지였다. 그런데 밤이 되니 갑자기 도시의 모습이 확 달라졌다. 러시아인들이 지은 붉은 벽돌이나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 아래에 여러 색깔의 조명이 설치되어 도시 군데군데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마치 화려한 예술작품처럼 빛나게 하고 있었다. 나중에 영국 런던을 아내와 처음 갔을 때 버스를 타고 런던 브리지를 지나면서 템즈강 주변의 찬란한 야경을 보고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네. 이런 도시는 생전 처음이야, 동화 속에 그려진 나라 같네.”

당시 심한 감기에 걸렸던 아내는 일주일 분 감기약을 가져갔는데, 그 광경을 보고 감기가 떨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첫 키스의 달콤한 기분도 애정이 깊어 갈수록 그 촉감이 무디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보름 정도의 기간이 지나가니 아내는 처음에 느꼈던 유럽 도시의 미적 감흥이 점점 사라져간다고 하며 빨리 귀국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쾌감은 쉽게 내성이 생긴다. 그러나 통증은 그렇지 않다. 진통제는 내성이 생겨도, 통증은 원인이 제거되지 않는 한 지속된다. 만성 통증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나의 경험으로는 마음이나 감성의 근육을 회복시키는 훈련을 하거나 혹은 두뇌에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는 것 외에는 대책이 없는 것 같다.

과거 여행에서 느낀 좋은 감성이나 즐거움에 대한 세밀한 회상과 이야기 전달도 우리를 전쟁이나 중병으로 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게 한다. 미지의 것에 대한 충동과 호기심 그리고 잠재한 위험에 대한 긴장감과 새로운 것들을 접할 때의 기묘함이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몸에서 세로토닌, 옥시토신, 멜라토닌을 분비하게 하여, 마음에 편안한 느낌을 다시 찾게 한다. 예술가들이 혹은 창작자들이 잦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고통에 대처하는 노력 대신에 창작에 몰입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냅스를 형성하기 위함이다. 만약 당신이 트라우마로 인한 장애를 겪지 않아도 여행의 경험은 항상 개개인의 삶에 활력을 준다. 나는 젊은이들에게 ‘돌아올 곳이 있는 자는 언제든지 떠나라, 어디로든지 떠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거듭된 수술로 발생한 트라우마의 부작용 중 하나는 불면증이었다. 오랫동안 명상이나 참선 또는 호흡법을 익힌 나로서는 정신만큼은 약물치료에 의존하기 싫었다. 하지만 신경정신과 전문의 대부분은 이렇게 말했다. “환자분의 사례는 중병에 걸린 사람들이 겪는 전형적인 트라우마입니다. 이미 신경계가 훼손되었기에 당뇨약을 평생 먹는다는 생각으로 수면제를 복용하십시오. 요즘은 부작용이 거의 없는 검증된 약으로 증세가 바뀌면 약도 조금씩 바꿔가면 됩니다.” “어떤 사람은 등산이나 맨발 걷기 혹은 단전 호흡 등으로 치유가 되었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는 그것이 힘든가요?”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는 사람에겐 그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그러나 환자분의 경우는 이미 몸의 장기가 상당히 손상되었기에 그런 몸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나의 위장은 거의 절단되고 조금만 남아 있었으며, 담낭도 제거하였고 내장의 여러 군데는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을 이미 겪고 있었다. 약물치료에 의존한 이후 가장 불편한 것은 장기간의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이었다.

상해서 만난 제자들과 함께 남경으로 갔다. 상해 기차역은 1일 평균 승차 인원이 약 30만 명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의 역이다. 인산인해(人山人海)란 말을 경험하려면 상해 기차역에 가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는 파리의 지하철 정거장에서 나오는 군중을 보고 이렇게 명확한 이미지로 시를 썼다. “군중 속에서 유령처럼 나타나는 얼굴들, 까맣게 젖은 나뭇가지 위의 꽃잎들” 사실 내가 방문한 파리의 지하철은 온갖 인종의 오줌 냄새로 가득한 침침한 터널로 연결된 기묘한 장소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테러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파리시 당국은 지하철역에 화장실 시설이 없게 만들었다고 어느 파리 시민이 말해주었다. 맥주나 와인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다가 생리현상을 참지 못하면 어떤 남자들은 정거장 밖으로 나가기 전, 어두운 터널 벽에 갈기고 가기에 그런 냄새가 많다는 것이다. “침침한 지하터널의 지린내를 품은 파리, 센강에 흐르는 오염된 상업주의의 강물 주위에 관광객의 환상을 유도하는 고건축물들” 솔직히 나에게 파리의 인상은 그런 곳이었다.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 깨끗한 무료 공공화장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유럽이나 중국도 유료 화장실이 많다. 이유야 어쨌든 적어도 나에게 90년대 이후 상해 기차역을 가득 메운 인파는 에즈라 파운드가 묘사한 그런 유령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내 눈에 비친 상해역의 군중은 “대나무밭에서 솟아난 많은 죽순 혹은 재스민꽃밭에 피어난 작은 꽃의 무리”와 같았다. 적어도 병들어가는 자본주의의 획일화된 군중의 이미지를 본 에즈라 파운드와 달리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중국의 대도시로 몰려드는 각양각색의 군상들은 저마다 죽순이나 재스민꽃과 같은 차이나 드림을 가지고 대도시로 진입하였다. 실제로 그들은 대개 끼니마다 죽순 요리와 재스민차를 함께 먹었다. 중국인들은 지극히 현세적이고 탄력적인 사람들이다. 심지어 현대의 반체제적인 어떤 중국 시인도 보들레르나 에즈라 파운드의 복잡한 두뇌를 가지지 않았다.

1980년대 이후 중국의 개방주의자들은 홍콩과 광동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지역과 상해와 남경, 소주와 항주를 연결하는 지역 그리고 북경에서 천진을 연결한 지역을 경제 개발의 삼대 추진력으로 정하였다. 세 마리 말이 이끄는 마차에 비유하여 인근의 인구를 이 지역들에 집중시켰다. 내가 방문한 당시에도 상해에서 소주와 항주에 이르는 경제 벨트의 인구만 1억에 가까웠다. 나는 비록 서구의 학문을 전공했지만, 개방된 중국을 오랫동안 여행하면서 서구인에 대하여 가졌던 막연한 콤플렉스에서 점차 벗어나게 되었다. 사실 서구에 가보면 외모만으로도 동양인들은 차별의식을 느낀다. 런던의 지하철에서 우연히 아내와 서로 마주 보며 앉은 적이 있었다. 공교롭게 아내 좌우에는 코카서스 계 백인과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아주 검은 피부를 가진 흑인이 함께 앉아 있게 되었다.


일반 한국인치고는 얼굴이 비교적 작은 아내의 얼굴도 그들의 얼굴과 비교하니 정말 찐빵이나 호빵처럼 보였다.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을 여행할 때 비교적 큰 소리로 한국어 대화하지 않는 한 누구도 우리를 주시하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한국말을 해도 다른 성에서 온 여행객처럼 흘려듣는다. 대부분의 중국 23개 성(省) 주민들은 다른 성의 방언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 외모가 비슷하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곳에는 은폐의 자유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인간은 외모에서 큰 차이가 나면 오만과 편견이라는 악마에게서 벗어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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