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2

위기의 순간

by 박종규

겨울 방학을 이용하려 해외여행을 다녀온 지 며칠 후 건강검진을 했던 병원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혈액 검사의 걀과 혈소판이 너무 감소해서 피가 정상인의 반 밖에 남지 않았으니 내시경을 하라는 통지였다. 사실 1년 전부터 약한 빈혈기가 있어서 자주 깨니 수면을 위해 혼자서 독방을 쓰고 있었다. 귀국 전 마지막 여행지는 중국의 서안이었는데 빈혈이 너무 심해져서 마지막날 저녁에 같이 갔던 후배에게 내가 다시 여기에 올 수 있을지는 확신이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마 몸의 신호가 그런 표현을 하게 했을 것이다.


사실 가족력이 있어서 의사인 처남이 방학때마다 위와 장 내시경 검사를 권유했지만 방학때마다 세미나나 학회와 해외 순회 일정이 잡혀있어서 번번히 건너뛴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특히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40대부터 아니면 50 초반에도 검사를 시작해야 한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그때까지 병원 한번 가지않던 건강한 몸을 유지했길레 60이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을걸로 과신했다. 그러아 인생의 골목 귀퉁이를 돌다보면 예상치못한 일이 발생하는 법이다.


내시경 진단 결과는 빨리 더 큰 병원에 가서 진단과 수술을 하라는 것이었다. 대학병원에서 받은 내시경과 PET-CT의 결과는 위암 3기말과 4기 초반이었고 생존 가능성은 당시의 의료 기술로는 수술을 해도 1-2년이었다. 급하게 지인을 통해 수술 날짜를 당겨서 사흘 만에 개복 후 위절제 수술을 받았다. 6시간이 넘는 수술 후에 입원실로 옮겨진 나의 코에는 산소호흡기가 넣어져 있었다. 인생은 정말 한 치 앞을 모른다는 말이 나에게 너무나 정확하게 적용되었다. 몇 년 전에 급성간염에 걸린 선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때 입관을 인도하던 한 성직자의 추모사가 갑자기 떠올랐다. “벌레보다, 세균보다 더 작은 존재에도 힘없이 생명을 빼앗기는 티끌 같은 인생을 쓰시고 거두어가시는 것도 은혜입니다.”

‘과연 나는 지금 죽는다해도, 여한이나 후회가 없을까? ‘ 이제 글로만 읽었던 절대절명의 순간 즉 ‘한계상황에서 실존“에 대한 물음이 매일 매 순간 송곳처럼 깊은 마음속 더 깊은 부분을 마구 찔렀다. 며칠이 지나 회복기에 들어서자, 아내에게 내가 사용하던 휴대폰을 받아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수술 이틀 전, 밤에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이던 순간 어떤 강력한 삶의 빛이 왔는데, 그 빛의 경험을 잊지 않으려고 올린 것이다. 그날 밤 나는 내 앞에 놓인 두 개의 문을 봤다. 하나의 문은 부정의 문이었고, 다른 문은 긍정의 문이었다. 주어진 것을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는 순전히 나의 몫이었다.


실존적 결단 이후 진행될 상황은 그때만큼은 너무 명백하게 보였다. 아마 내가 긍정의 문을 여는 순간 나의 모든 삶은 긍정의 순간들로 해석되고, 반대로 부정의 문을 여는 순간 삶은 부정의 순간들로 해석될 것이다. 삶의 부정은 태어난 날의 저주에서 살아온 삶의 후회를 거쳐 갑작스럽게 닥친 죽음을 억울하 게 생각할 것이다. 지금 회상하면 이 극명한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삶 전체를 어떻게 해석하는가는 전적으로 내가 그날 어느 문을 택하는가에서 달려 있었다. 그 결단의 순간에 긍정의 문에서 어떤 빛이 비쳐왔고, 부정의 문에는 깊은 암흑의 기운이 세어 나오고 있었다.

남극물개들은 남극까지 떠밀려 오면서 긍정의 자세로 진화하였을 것이다. 새들도 마찬가지이다. 바다는 차갑고 땅은 메말라도 물개는 피부를 두껍게 하고 남극의 새는 날개를 좌우로 길게 뻗었다. 어차피 생은 유한하다. 유한한 삶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존재의 용기’이다. 나중에 안 것이었지만 이미 어떤 신학자가 이 제목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아마 그가 그 책을 쓰지 않았다면 내가 그런 주제로 책을 썼을지도 모르겠다.


회복기에 들어선 나는 아내와 함께 병동을 벗어나 병원의 언덕에 있는 작은 길로 조금씩 걷기 시작했는데, 언덕에는 이 병원을 설립한 미국인 선교사의 자택이 기념관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자택 입구에 들어서면 선교사의 사진과 그 가 도착하여 이곳까지 오게 된 경로를 지도로 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 태평양을 넘어서 이분이 이렇게 먼 곳, 한반도의 내륙까지 온 이유는 오늘의 당신 같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네요." "그렇게 보이네, 이분의 발걸음이 단순한 선교 이상의 것이 되도록 앞으로 내가 살아야 할 것 같아."

그날 이후로 퇴원할 때까지 매일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나는 힘을 찾아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힘든 항암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시꺼먼 비닐로 싸인 항암제가 들어 있는 링거병을 서너 시간 맞고 나서 예상했던 고통이 오지 않는 반응에 놀랐 다. 약에 취해서 약간 몽롱했으나 집까지 스스로 운전하기로 했다. 중간에 더 어지러워지자, 운전석을 바꿔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 후 6개월간 서서히 몸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신체의 고난은 정신의 쇠락을 가져온다.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특별한 소수를 제외하고는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서서히 무너지게 된다.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사람들도 평생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일반인과 같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남극물개들은 더 힘든 고난의 바다로 와도 뇌세포는 더 강력해졌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뇌는 너무 복잡해졌다. 물개는 두꺼운 피부와 날카로운 이빨 그리고 추위를 이길 수 있는 생명력을 가졌지만 아마 뇌는 더 단순하게 진화되었을 것이다.

생각이 단순해지면 몸은 아픈 부분에 더 많은 에너지를 보낼 수 있다. 우리가 섭취하는 에너지의 20 프로 이상을 신체의 2 프로를 차지하는 뇌가 쓴다고 한 다. 그러나 신경계를 공격하는 물질을 대항하는데 뇌의 에너지를 빌려와도 그렇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뇌 역시 신경세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지러움과 구토는 더욱 심해졌고, 방사선 요법으로넘어가자, 마음속 긍정의 문도 닫히기 시작했다.


남극에서 생존하는 펭귄처럼 방어벽을 함께 칠 무리가 없다는 것이 인간 각자의 실존에 주어진 운명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고 하지만 사람에게 주어진 고난은 각자의 몫이다. 국가가 전쟁을 당해도 사회가 파괴되어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도 각자가 겪는 고난은 다르다. 왜 인간에게만 실존이라는 존재 방식이 나타난 것일까? 레밍들은 아무 고민 없이 무리를 따르다가 집단으로 자살한다. 왜? 왜? 하는 의문을 던지면서 죽어가는 생명체는 인간이 유일하다.

그러기에 죽는 순간 답을 찾은 사람은 빛이 난다. 과연 나는 그런 빛을 내며 죽어갈 수 있을까? 그날 이후로 퇴원할 때까지 매일 언덕 위에 있는 그 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나는 힘을 찾아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장 힘든 항암의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시꺼먼 비닐로 싸인 항암제가 들어 있는 링거병을 서너 시간 맞고 나서 예상했던 고통이 오지 않는 반응에 놀랐다. 약에 취해서 약간 몽롱했으나 집까지 스스로 운전하기로 했다. 중간에 더 어지러워지자, 운전석을 바꿔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 후 6개월간 서서히 몸은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고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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