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매 순간 빛난다 1

뉴질랜드 남섬

by 박종규

“나는 하늘을 찢고 흘러가는 강물에 맡겨진 배, 인간의 손에서 풀려나 바다로 내던져졌다. 나는 폭풍 속에서 춤추는 파도와 함께 은하수처럼 흩어지는 밤을보았다. 나는 더 이상 인간의 눈에 닿지 않는, 햇빛보다도 푸른 하늘과 눈부신 바다를 보았다.거기서 나는 꽃들이 피어나는 바다를 건넜고, 황홀한 빛의 환영 속에서 나는 자유로웠다.”—랭보의 시 ‘취한 배‘ 중에서


우리 마을은 겨울이 다가오면 저녁도 빨리 다가온다. 남쪽에 산봉우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후 4시경이면 산의 그림자가 마을을 덮고 집들의 창에는 등이 하나둘씩 켜진다. 그 시각 이후에 집으로 돌아갈 때면 차의 전조등을 자동이나 수동으로 키고 마을 입구로 들어가야 한다. 산 중턱에 있는 마을로 겨울이 다가오는 길을 운전하다 보면 유달리 다른 계절과 달리 더 많은 주검을 본다. 주로 야생 고양이들이나 때론 유기견이나 심지어 어린 고라니가 차에 부딪혀 죽은 사체들이다. 겨울이 오면 그것들을 피해 좀 더 천천히 운전해야 한다.


인생에도 가을 혹은 겨울이 오면 점점 더 주검들을 마주치게 된다. 지난해에는 어머니의 요양원에 병문안을 가끔 오시던 의사였던 사촌 형님이 70이 안된 나이에 전립선 수술 중에 돌아가셨다. 얼마 전 오랜 기간 연락이 없던 미국으로 이민 간 옛 친구가 SNS로 나를 어렵게 찾아 연락을 전해왔다. 그가 전한 여러 소식 중에는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 서로 절친이라고 여겼던 농민운동가 친구가 몇 해 전에 후두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정원 한편에 있는 은행나무에 붙은 노란 은행 이파리 몇 개는 아직은 가지에 매달려 씩씩하게 버티고 있고, 그 옆에 단풍나무 이파리 몇 잎도 아침이면 햇 빛을 받아 노란빛과 붉은빛을 교대로 반사하며, 아직 살아 있다고 소리치고 있다. 정원에 심은 케일도 여전히 얼지 않고 푸른빛을 발한다. 나에게도 아직 푸른빛이 남아 있을까? 빛도 소멸할까? 태양보다 더 큰 질량을 가진 별도 수명이 다하면 블랙홀이 된다 고 한다. 블랙홀은 빛도 질량도 다 삼켜버리고 어떤 빛, 에너지, 질량도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성질의 구멍이다. 죽음도 그런 것일까?


기억의 잔상들이 희미해지다가 어느 날 죽음과 더불어 모든 기억이 사라지는 것처럼 과연 빛과 같은 광자나 전자 혹은 양자와 같은 존재들도 그 안에서 모두 사라지는 것일까? 적어도 나는 호킹의 이론을 믿지 않는다. 그는 철저히 무신론자였기에 빛마저 사라진다고 예측했다. 하지만 그 반대의 이론도 있다. 죽음은 빛의 소멸이 아니다. 단지 빛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마치 밤이 한낮의 빛을 고요하게 감추고 있듯이 어느 날 새로운 별이 탄생하면 다시 찬란하게 흩어질 것이다.


젊은 시절 아내와 함께 뉴질랜드의 남섬에 자유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는 남섬에 대한 가장 강렬한 기억은 테카포 호수 위 남반부 밤하늘에 수놓인 은하수의 빛무리였다. 저녁을 먹고 방을 나서자 나타난 짙은 하늘은 마치 방의 천장처럼 손을 대면 만져질 듯한 거리에 수많은 빛 무리의 자수가 비단폭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나중에 중국의 삼청산 입구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우리가 만든 빛들이 잠잘 때 하늘은 자신만의 찬란한 빛깔을 드러낸다.

테카포에서 퀸스타운을 거쳐 바로 남섬의 끝인 테아나우로 간 이유는 내가 그 당시 즐겨하던 운동이 트래킹이었기에, 세계 유명 트래킹 코스들 중의 하나인 밀포드 사운드(Milord Sound) 트랙을 잠시나마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사운드란 말은 원래 빙하의 침식으로 만들어진 영어 유(U) 자 형태의 계곡에 바 닷물이 들어와 형성된 길고 좁은 만을 의미하는 피요르드(tjord)란 노르웨이어의 영어 번역이다. 밀포드는 지역 이름이니, 우리식으로 쉽게 말하면 남극 바다와 이어진 밀포드 협곡 주위를 말한다.


지구의 물은 어떻게든 다 연결되어 있다. 바다 위의 구름에서 내리는 빗방울로 그리고 산등성이에 얼어붙은 눈과 얼음에서 빙하가 녹아서 호수가 되고 어떤 호수는 다시 바다로 흘러간다. 존재하는 것들은 그것이 물질이든 신체이든 아니면 거기에 수반된 영혼이든 간에 빗방울처럼 떨어졌다가 바다로 들어간다. 운 좋은 빗방울은 아내와 아이가 가본 스위스 마터호른의 봉우리처럼 오랫동안 찬란한 빛을 반사한다. 그 봉우리 밑에서 아내와 아이는 그 산의 하얀 영광 과 함께 빛났다. 비록 내가 아파서 못 갈 형편이라도 아이에게 그 빛남을 선사하고 싶었다.


과거의 빛남을 회상하는 것이, 현재의 빛남을 누림에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으로 늙는다는 것은 마치 촛불이 꺼져가는 것 같다고 시인들은 표현했 지만 실제로 우리는 여전히 매 순간의 빛남을 누릴 수 있다. 겨울이 가까워지고 뒷산 봉우리 위로 해는 일찍 넘어가지만, 여전히 내 영혼은 타오르고 있다.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은 일찍부터 겨울의 어둠과 한기에 대항하기 위해 산속 여기저기에서 많은 화목을 창고에 모아놓았다. 이 마을에 집을 지으면서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담은 사진들을 모아서 큰 액자들을 걸어 하나씩 핀으로 촘촘히 박았다. 어느 액자부터 내 모습은 사라지고,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이와 아이 친구들 모 습이 진열되었다. 나는 가난한 농부처럼 빛남의 순간들을 화목처럼 모았던 것 일까? 때론 본능적으로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층 방에서 빛나는 산들과 평지 그리고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수목의 용기를 바라본다. 아직도 여전히 삶은 아름답다.

가끔 남섬 여행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사진마다 빛났던 내 인생의 순간들이 담겨있다. 특별히 테아나우는 언젠가 일년 동안 머물면서 주위의 트레킹 코스를 전부 다 돌고 싶을 정도로 신비한 호수와 계곡 그리고 이끼가 가득 낀 숲 속 풍경을 지니고 있었다. 나중에 이 숲과 이끼 그리고 나무는 영화 반지의 제 왕의 무대가 되었다고 한다. 테아나우는 참으로 고요한 도시였다.


그곳에서 며칠을 지내면서 몇 년 후 연구년이 되면 이곳으로 와서 골프도 실컷 치고, 트레킹도 마음껏 하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바램은 이루어지지 못했지 만, 여전히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테아나우 호수의 고요함과 빛남이 들어있 다. 그리고 다우트풀 사운드에서 10분간 맛본 태고의 고요함과 차가운 호수 안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돌고래들의 솟아오르는 생명의 도약들이 내 심장에 간직되어 있다. 육체의 심장이 멎는 순간까지 이 도약은 계속될 것이다.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 이층에 방을 빌린 우리는 호숫가에 있는 여행 안내소에서 밀포드 사운드와 다른 사운드 여행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 었다. 그곳에서는 당시 여행객들에겐 잘 알려지지 않는 다우트풀 사운드 (Doubtful Sound)로 가는 인원을 예약하는 중이었다. 나는 아내와 상의 없이 주저하지 않고 그곳으로 가는 티켓 두 장을 예매했다. 아내는 뉴질랜드 영어에 아직 힘들어했고, 나는 하루 정도 지나자 금방 그들의 엑센트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다우트플 사운드(의심스러운 후미: 이곳을 처음으로 탐험한 영국인 제임스 쿡 선장이 붙인 이름)로 가는 하루 여행 코스는 다음과 같았다. 먼저 예약된 인원 이 소형버스를 타고 안내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벽옥 빛을 띤 마나포우리 호 수(Lake Manapouri)에 도착한 다음, 준비된 배를 타고 그 호수를 건너 호수 끝의 선착장에 내리고, 다시 사운드로 가는 작고 가파른 언덕을 넘어가는 여정으로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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