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리다는 [공산당선언]을 자신의 기억 속에서 멀어지게 만든 것은 자기 자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가 다시 읽은 [공산당선언]에서 가장 명백한 것은 바로 유령이며, 이것은 마치 햄릿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띤 강력하면서도 비실재적인 그러면서도 잠재적으로 더 현실적인 환각 또는 허상이라는 자기만의 독특한 유령론을 펼친다. 아마 데리다가 지젝처럼 라깡의 심리학을 더 깊이 받아들였다면 아마 유령론 대신 트라우마론을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데리다는 심리적인 차원보다는 역사적이고 윤리적인 층위를 파고든다.
그는 이 선언을 환원불가능한 역사성으로 본다면 마르크스의 몇몇 저작들(1888년 공산당선언의 재판에 첨가한 엥겔스의 신판 서문을 포함하여)은 철학 전통에 있어서 <오늘날 이 저작들보다 더 긴요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텍스트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아마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다른 어떤 사상가가 이 주제에 관해 그들만큼 명시적으로 주의를 촉구한 적이 있는가? 누가 자신의 테제들이 전환되어야 한다고 요청한 적이 있었는가?.... 전통의 어떤 텍스트도 정치의 세계화에 관하여, 가장 사고다운 사고 과정에서 기술적인 것과 매체의 환원불가능성에 관하여 [공산당선언]만큼 명시적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데리다가 보기에 콜로키엄이 개최된 당시에 마르크스를 다시 읽고 토론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학문적인 토론이나 독해를 넘어서 나아가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명백하게 지적한다. 왜 그런가? 마르크스를 이 시대에 읽고 토론하는 것은 이론적, 철학적, 정치적 책임을 동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교조적 장치와 '마르크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 장치들(국가, 당, 세포, 조합 및 다른 교리 생산의 장소들)이 소멸 과정에 있는 마당에, 우리는 더 이상 이러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아무런 변명거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이러한 책임 없이는 어떠한 장래도 없을 것이다. 마르크스 없이는 없다. 마르크스 없이는 어떤 장래도 없다. 마르크스의 기억, 마르크스의 유산 없이는 어떤 마르크스, 그의 천재/정령, 적어도 그의 정신들 중 하나에 대한 기억과 상속 없이는 어떠한 장래도 없다."
여기서 우리는 데리다와 프랑스 마르크스주의자 중 가장 대표적인 사상가인 루이 알튀세르와 그의 그룹 혹은 학파와의 관계를 먼저 살펴봄으로써 프랑스 철학계 내에서 일어난 현대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여러 사상의 층위들의 형성 과정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 교육 역사 상 가장 급진적인 전환은 1968년 5월 혁명이라고 불리는 학생 운동의 여파로 1970년에 파리대학교가 자율적 소규모 대학으로 분산된 사건이다.
기존의 파리대학교(Université de Paris)가 13개 대학으로 해체되었다. 예를 들면 Paris I (팡테옹-소르본느): 철학, 역사, 좌파 전통. Paris II (아사스): 법학, 보수. Paris III (소르본느 누벨):문학, 언어. Paris IV (파리-소르본느): 전통 인문학. Paris VII (파리 디드로): 푸코, 들뢰즈 계열 등 파리 13 대학으로 분할되었다. 파리대학교가 대중교육의 산실이 되면서 1794년 프랑스 혁명기에 공화국을 지탱할 엘리트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ENS(École normale supérieure, 고등사범학교)가 19세기에는 철학, 수학, 물리학, 문헌학 중심의 프랑스적 지성의 엘리트를 산출할 일종의 인큐베이터로 성장하였고, 철학 분야에는 베르그송, 사르트르, 알튀세르, 푸코, 데리다(비정규 경로), 바디우를 그리고 과학 분야에서는 파스퇴르, 퀴리 부부를 배출하였다.
그리고 소르본느(파리대학)는 일반 대학들로 해체되었으나 ENS는 오히려 급진적 지성 혹은 창조적 지성의 탄생지가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과 영국 그리고 미국의 철학계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전/후기 구조주의, 해체주의, 포스트모던주의, 신마르크스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사상이 나타나고, 그 전환점에 루이 알퀴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가 있다.
오늘날의 평가에 의하면 그는 한 명의 철학자라기보다 프랑스 교육의 상징인 ENS라는 장치를 작동시킨 인물, ENS를 ‘철학을 생산하는 기계’로 만든 사람으로 불린다. 그가 개최한 세미나의 특성은 참가자들이 마르크스, 스피노자, 프로이트, 구조언어학이 하나의 문제로 엮여서 “무엇을 읽느냐”보다, 주어진 텍스트들을 “어떻게 읽느냐”를 두고 답이 없는 담론을 통해 그 이후에 지성사에 영향을 끼친 여러 철학자들이 독자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기여하였다고 한다.
그는 분명히 마르크스주의의 시대적 재해석자로 불린다. 특별히 그의 책 [마르크스를 위하여]란 책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나 그 밖의 네오마르크스주의자들과 달리 마르크스가 강조했듯이 프랑스의 몽상적 공산주의와 다른 [자본]만의 과학적인 면을 다시 부각하려고 하였다. 그러므로 알튀세르 이후 ENS 출신 학자들 누구도 <알튀세르 효과>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직접 제자인 에티엔 발리바르, 피에르 마슈레, 자크 랑시에르(결별)나 간접적 영향을 받은 미셀 푸코, 알랭 바디우, 데리다 역시 과학적 마르크스주의에 동의를 하든 반발을 하든 모두 알튀세르를 경유하고 있다.
알튀세르 그룹(학파)에서 공동으로 저술한 [자본을 읽자]란 저서는 현대 마르크스주의 연구자라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과연 이런 공동저작에 단신으로 맞선 데리다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게 마르크스주의의 해체와 재건을 이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필자가 보기에 철학은 마르크스가 주장하듯이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변혁하는" 것을 목표로 헀어도, 과거의 모든 이론이 그랬듯이 이론은 항상 시대가 지나면서 다시 해석되고 수정되거나 폐기된다. 어쩌면 헤겔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이 깔릴 때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20세기 초반을 철학계에 던져진 화두는 <2000년 서양 철학사가 존재망각의 역사>이며, <존재의 물음이야말로 철학 고유의 영역>이라고 말한 독일의 마르틴 하이데거였고, 그 이후 프랑스의 질 들뢰즈는 이 물음을 <존재는 무엇인가?>가 아니라 <차이는 어떻게 생산되는가?>로 전이시켰다. 알튀세르가 사회나 이데올로기 안에 내재한 구조를 밝혀내는 데 주력했다면 들뢰즈는 인간이나 역사나 모든 존재자 안에 존재하는 흐름과 생성에 의한 차이성과 개체성을 부각하는데 주력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21세기에 하이데거나 들뢰즈가 던진 질문보다 시대적 현실은 서구 정신 혹은 유럽 정신이 인류사에 미친 역사적 부채에 대한 책임 윤리를 호출하는 것이 더 시급하게 되었다. 들뢰즈의 유령론은 대학이라는 상아탑에서 만들어진 이론이 아니라 마르크스와 마찬가지로 상아탑 지성의 변방에서 상아탑 지성들에게 던진 성찰일지도 모른다. 이 점을 명확하게 하고 다음 편으로 넘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