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 기술자

1.공동 정범

by 재학

3년 가뭄엔 살아도 사흘 장마에는 못산다던가. 며칠째 퍼붓던 비가 아침 먹을 때쯤 잦아들더니 10시를 넘어서니 완전히 그쳤다. 겨우 며칠 장마에

‘지겹게 퍼붓는군’

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는데.

3층 테라스에서 내려다보이는 도로가 가로수가 산뜻하다. 오늘은 토요일, 모처럼 부리는 게으름이 달콤하다. 이불 속에서 꼼지락거리며 모로 누워 바라보던 TV 소리가 귀찮아질 때까지 뒹굴뒹굴하다 일어났다. 아이들 엄마는 회사 행사가 있어 나가고, 아빠 옆에 누워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둘째도 제 형이 이발하러 가자고 부르자 냉큼 따라나선다. 30여 분을 더 그 자세로 있다 일어났다.

‘아점을 어떻게 할까?’

식탁 위에 무언가 차려져 있다. 아내가 출근하면서 준비해 놓고 간 김치찌개가 다 식었다. 냉장고를 여니 어제 사다 넣어 둔 돼지갈비가 보인다. 굽자. 식빵도 있다. 달걀부침 하나 얹어 먹을까. 이것저것 차리다 보니 식탁이 가득 찼다. 양식, 한식을 차렸다. 차려진 것에 맞추어 이발하러 나간 두 녀석이 들어온다. 머리가 산뜻하다. 젊음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배고프다고 엄살이다. 20대, 뭘 먹어도 소화할 나이, 한식 먼저 먹고 양식으로 달려든다. 과일까지 먹어 치운다. 완벽한 식사다.

칫솔을 입에 물고 어제저녁에 대충 챙겨 놓은 짐을 꾸렸다. 오늘은 1박 2일 피정하러 간다. 오십 중반, 언제부터인가 밀려오는 공허함을 술로 달래는 습관을 벗어나려 신청했더니 오늘이다. 집에서 20여 ㎞ 거리에 있는 수녀원이란다. 인근 몇 개 성당이 함께 하는데, 시내 한 성당에 모여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큰아들이 시내 볼일이 있다고 가는 길에 태워다 준단다. 잘 됐다. 가는 길에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신도시 아파트 현장을 둘러보고 (큰아들이 살고 싶다고 노래를 하는 곳이라서 둘러보는 거다) 성당에 도착하니 시간이 남았다. 여느 성당처럼 크지도 작지도 않아서 좋은, 그래서 퇴근길이면 일부러 이쪽 길로 들어서 지나쳐가곤 하는 성당이다. 들어와 보기는 처음이다.

생각대로 아담했다. 성당은 어디나 비슷한 느낌을 줘서 좋다. 회백색 벽돌로 지은 건물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대성전과 성물방, 여기저기를 들러보니 시간이 되었다. 마당에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랐다. 운전대에 기대어 바라보는 운전사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며 탔다. 내부가 뜻밖이다. 울긋불긋한 커튼과 붉은색 조명이 켜져 있다. 시끄러운 음악만 있다면 딱 나이트클럽이다. 지금도 이런 버스가 있다니 놀랍다. 드문드문 자리가 비어 있다. 자매들은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것에 비하여 남자들은 여기저기 혼자 앉았다. 운전석 쪽 세 번째 뒤가 온전히 비어 있다. 딱 좋다. 통로 쪽에 가방을 놓고 창가에 앉았다. 빈자리가 많은데 기어코 옆자리 가방을 치우면서까지 여기 앉을 사람이 없기를 바라며 눈을 감았다. 고맙게도 졸음이 밀려왔다. 차에서는 자는 것이 최고다.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는 아니어도 성당에서 하는 활동이나 행사는 가능하면 참여한다. 그러나 피정은 처음이다. 피정은 바쁘지 않거나, 고민이 있는 사람들이 가는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저렇게까지 하면서 무언가를 떨쳐버리고 싶은 무엇이 있을까 하는 것 말이다. 10여 년 전 템플스테이를 그런 마음으로 갔었다. 4박 5일이었을 것이다. 그때 삶이 힘들었다. 수입에 비하여 지출이 많았다. 매달 대출금을 갚아 가느라 허덕였다. 경제적 어려움은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기진맥진 탈진한 몸과 마음을 추슬러야 했다. 마침 절 체험이 유행했던 것도 한몫했다. 사찰 앞에 걸린 현수막 문구에 꽂혀 바로 신청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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