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Opinion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M Mar 13. 2024

어쩌다

4. 금곡할머니

할머니는 무섭게 생기셔서 잔뜩 겁을 먹었답니다.

할머니 첫 인상이 그랬어요. 조그마한 몸집에 고개 빳빳이 들고 들어오실 때 무서웠어요. 역시나 우리 반 넘버 투가 되셨지요? 가끔 1번 할머니에게 덤비기는 하셨지만 나이 때문에 져 주신 것으로 알게요.


할머니는 공부에 관심이 없으셨지요?

그냥 마실 나오신 것, 친구 만나 떠들고 싶어 버스 타고 내려 오신 다는 것 알아요. 그 골짜기에서 얼마나 적적하셨겠어요. 시도 때도 없이 지나가는 탱크 행렬 외에 볼 만한 것이 없잖아요. 역시나 수업 보다는 장난 하고 싶으셔서 주내 할머니 글씨 쓰시면 괜히 방해하시고.

언니야, 글씨를 왜 그렇게 못써? 인 주봐 내가 써 줄게. 놔 넌 니꺼 써. 왜 니 공책에 안하고 내 것 넘봐?

내가 뭘 넘봐? 이뿌게 써 준다니까. 히히히

     

주내 할머니가 더 이상 상대 안 해 주시면 이번에는 미순 할머니 쪽으로 돌아 앉으셨지요.

그러다 대장, 넘버 원의 호통에 입을 삐죽삐죽 하면서 하기 싫은 표정 잔뜩 지으면서 쓰는 건지 아닌 건지 연필 굴리다 보면 수업 끝!


          

에너지 빵빵 할머니가 갑자기 무게 잡고선, 선생님~ 내가 이야기 하나 해주까 하시더니.


너댓살 쯤 되었을 거라고, 동네 앞으로 지나가는 피란민 대열을 철길 옆 언덕에 앉아 보고 있는데, 언니가 안보였다고 하셨어요. 우리 동네였지만 낯선 사람이 웅성거리고, 언니까지 보이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건 우는 것 밖에. 어린 여자 아이가 울고 있는 것을 본 어떤 피란민이, 누가 아이들 놓고 갔나보다고, 얼마나 애타게 찾을까 하면서 마침 온 기차에 덥썩 앉혔고, 그렇게 달리고 달려 올라 온 곳이라고 하셨어요. 기억을 더듬어도 이름 하나 생각 나는 것 없어 그냥 그렇게 살다 보니 여기라고, 헤헤 웃으시며 꼭 남 이야기처럼 풀어 놓으셨네요. 한때는 아들과 함께 기차가 지나가는 마을을 돌아다녀도 봤지만, 팔도에 기차 지니는 동네 한 두 개냐고 물어 보셨지요? 

우리 반 에너지 대장 금곡 할머니, 지금도 콩 농사하시는지 궁금합니다.


     

4년 6개월 함께 해 주신, 남 할머니, 호 할머니, 진 할머니, 금곡 할머니, 멋쟁이 임 할머니, 흥이 많으신 김 할머니, 사물놀이 할 때 신나하신 현수 할머니, 결석 한 번 없으신 배 할머니, 재치있는 대화가 즐거운 미순 할머니, 필통, 공책, 학습장 준비가 완벽하신 윤 할머니, 회식 때 막걸리 한잔에 노래 절로 나오는 박 할머니, 정갈함이 몸에 배신 주내 할머니, 동생들 잘 챙겨주시는 왕언니 조 할머니... 감사합니다.


멀리서 안부 전합니다.


이미지 완행열차 – Daum 검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어쩌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