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일기 9
웃음을 읽고. (베르나르 베르베르 장편소설. 이세욱 옮김. 열린 책들.
웃음을 읽고(베르나르베르베르 장편소설. 이세욱 옮김. 열린책들. 2011)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필요했다. 그녀는 상대에게 가장 알맞은 열쇠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뒤졌다. 올림피아의 소방안전요원에게 사용했던 열쇠는 통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뭔가 다른 것을 찾아내야 했다. 그녀는 문득 지난 번 이지도르와 함께 뇌의 비밀에 관한 조사를 벌일 때 작성했던 동기들의 목록을 떠올렸다.
인간을 어떤 행동으로 이끄는 계기는 무엇인가?
1) 고통, 2)공포, 3)물질적인 안락함, 4)성적인 욕구. p.p82
1.오늘도 동경이 점심 먹는 속도가 느리다.
내 식판을 훔쳐 보며 천천히 먹는다. 왜 그러는지, 나에게 맞추려 그러는 것 안다. 내가 퇴식구로 가면 동경이도 그제야 다 먹었다는 듯 서둘러 일어선다. 그리고 어느 새 저만큼, 내 눈에 띄고, ‘동경이 점심 맛있게 먹었니?’라고 물어줄 거리 만큼에서 날 기다린다. 사실 조금 귀찮을 때도 있다. 이 시간이 김, 유, 또 다른 김과 사적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무 그늘 따라 산책하며 풍경도 즐기는 시간인데...
언젠가부터 동경이에게 빼앗겼다.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따돌림 당한다.) 동경인, 나를 찾아온다.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
난 동경이의 마음을 열었다. 많은 대화를 해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바라봤다. 열 발자국 떨어져 맴도는 동경이, 다섯 발자국 안으로, 세 발자국 안으로, 드디어 바로 옆에 서기까지 그냥 기다려줬다.
동경인 많은 이야기를 해 줬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선생님 친구들 게임과 솔미(동경이네 개 이름).
저 많은 이야기 하고 싶어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경이 마음의 문을 연 열쇠는 ‘기다림’ 이다.
2.말로 설득하고, 이해시켰으면 좋겠다.
누군들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러나? 하지만 내가 믿는 진리(?) 중 하나, 말로 여자를 이길 수 없다. (성적 편견이 절대 아님!) 어떻게 그렇게 기억력이 좋은지, 세 개, 네 개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다. 말문이 막힌다.
어어어~응, 응, 아니?, 응.
내 잘못만 남는다. 그럴 때는?
입 닫는 것이 최상이다.
그렇게 닫힌 입, 굳게 닫힌 입이 열릴 때까지는 나도, 그녀도 시간이 필요하다.
보통 ‘삐지는’ 경우는 단순하다. 왜 내 맘을 몰라줘. 물론 의사 표현을 잘했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그냥 텔레파시로 알아주길 바랐을 뿐이다. 관심법을 터득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 수 있어?
하지만 그녀는 내 마음을 연다.
혹시 ○○ 때문에 그런 거야?
응.
맞다. ○○ 때문에 그런 거다.
그녀가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는 나를 인정하는 거다. 인정!
3.내 마음의 열쇠는 사색이다.
인적 드문 산길을 걷을 때, 물새 먹이 찾는 냇가 둑길 걸을 때 마음이 열린다. 답답했던 마음, 소란스러웠던 마음이 열린다. ‘위대한’ 인간이 열려 애쓸수록 더더욱 닫히던 문이 열린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나 보다. 그래서 산책을 발로 하는 철학이라 하나 보다. 한 가지 생각으로만 치닫던 마음이 어느 순간 멈춘다. 열 가지 스무 가지 방법이 왜 안 보였을까? 절대라는 말은 절대 하지 말자면서 절대 안 한다 하고 있다. 왜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을 부끄러워하지 못했을까?
때로는 맞는 열쇠가 없을 수도 있다.
어거지로 다가가다 더 굳게 닫힌 문 만날 수도 있다.
「엄마, 내가 새로 사귄 여자 친구를 곧 소개해 드릴게요. 그런데 그 친구를 다른 여자애들 여섯 명과 함께 데려올까해요. 그중에서 누가 내 여자 친구인지 알아맞혀 보세요. 엄마의 능력을 한번 보겠어요.」
어머니는 일곱 아가씨를 집으로 초대해서 갓 구운 과자를 대접한다.
손님들이 떠난 뒤에 아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묻는다.
「어때요. 엄마가 보기엔 누가 내 여자 친구 같아요?」
「빨간 드레스 입었던 애」
「와, 우리 엄마 족집게네! 맞아요. 바로 그애예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 맞힌 거예요?」
「내 맘에 안 드는 애가 그 애뿐이었거든.」
다리우스 워즈니악의 스탠드업 코미디
〈성들의 전쟁, 그 생생한 현장〉중에서. p.p306
열쇠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