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걷기 대회
“바쁜 건 좋은 거야.”
바쁜 것을 자랑으로 여기던 시대가 있었다. 그래야 돈을 벌고, 열심히 사는 것으로 알았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휴일도 업무로 때워야 했다.
“아빠는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가족을 위해서!”
이제는 그런 아빠 모범이 아니다. 그런 아빠들 가족들에게 왕따 당하기 쉽다. 변해야 한다.
그래서 준비했다.
“아빠들, 가족을 위한 것은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오른손 왼손 가족 손 잡고, 휴일을 함께 보내며,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 주는 것 (아빠가 말하면 안 됨!), 그렇게 하는 것이 가족을 위하는 겁니다. 그런 시간을 만들었어요. 참석해 주세요.”
가족 걷기를 했다. 12가족. 50명.
먼저 가족이 걸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맸다.
접근성이 좋아야 하고, 그러면서 맨날(?) 가지 않은 곳. 손자 손녀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이여야 했다. 휴일이면 집에 가지 않고 답사했다. 한 달 준비했다. (나도 바쁘게 사는 아빠다.)
안성맞춤까지는 아니어도 조건에 거의 맞는 곳을 찾았다.
백족산.
해발 402.2M로 정상에 서면 사방 조망이 좋다. 6부 능선을 따라 임도가 잘 조성되어 있고, 임도만 걷는 것이 심심하다면 두 번의 우회전 길이 있다. 약수터에서 한 번, 정자에서 한번. 그러면 정상으로 안내한다.
정상에 오르면 표지판 하나가 보인다.
지네 굴.
다리가 백 개인 지네가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 지는데, 자료에 따라 일백백(百), 흰 백(白)이 섞여 있다. 전설은 전설대로 좋다. 산 아래 청미천은 예전에 마포에서 젓갈 싣고 온 배가 쌀을 실어 나르던 물길이었다고 한다.
답사를 다닐 때가 봄이었다.
복사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여기를 보고 말해야 한다. 온 천지가 꽃밭이다. 그 꽃이 복숭아가 되었다. 꽃향기가 과일 향이 되어 올라왔다. 첫물 수확이 끝나고 두번 째 수확하는 손길이 바쁜 과수원 옆을 따라 올라갔다.
가족은 시련을 함께 헤쳐 나가며 단합을 배운다. 적당한 과업을 부여 하자.
코스마다 과제를 만들었다.
미션1. 가족사진 대회
우리 가족이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어울리는 사진을 찍어 단체 대화방에 올리는 거다. 손가락 하트를 찍은 가족, 아들 무동 태우고 엄마는 딸 업고 찍은 가족, 할머니를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찍은 가족. (역시 주도권 엄마에게 있다!) 덤으로 폴라로이드도 몇 장씩 찍어 주었다. 행사 끝나고 ‘좋아요. 많이 받은 네 가족을 선정하여 치킨 쿠폰 쐈다.
미션2. 보물찾기
보물 미리 숨기느라 힘들었다. ㅠㅠ
숨기기 좋은 환경을 찾는 것부터 미션이다. 보물은 힘들게 찾아야 한다. 돌멩이 들추면 나와야 하고, 나뭇잎 뒤에, 가지에 잎처럼 매달려야 한다. 보물이 우수수 쏟아지는 곳이 있어야 하고, 꽝만 나오는 곳도 필요하다. 치약, 주방 장갑, 뽀송뽀송 물티슈, 실내화, 휴대용 약품 상자, 지퍼백, 수세미 세트…. 보물 종류다.
미션3. 이거 고심을 좀 했다.
걷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어야 하나? 그 의미를 강화해야 하나?
그래 조금 더 나가자. 배부르면 좋은 말 나온다. 마침 간식 먹는 시간이다.
“오늘 어땠나요?”
“좋았어요.”
“여러 가족이 함께 걸으니 그것도 좋네요.”
“지금이 아침 먹고 TV 보다 낮잠 잘 시간인데…. 이런 나들이 자주 해야겠습니다.”
“몇 년 동안 여기 산 아래 길을 지나 출퇴근하는데, 이렇게 좋은 곳인 줄 몰랐습니다.”
역시나 아빠들은 말이 짧다.
짧다고 내용 없는 것 아니다.
진솔한 반성과 계획 들어 있다.
여러 사람 앞에서 (휴일 가족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약속이 막 나온다.
오늘 행사를 위해 꼬박 하루를 상품 포장하고, 휴일을 반납하고, 산길 오르내리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무리하게 해 주신 우리 동료들 고맙습니다.
투입 대비 산출 효과가 이만하면 성공이지요?
갑시다. 삼겹살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