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아침에
언젠가 신문을 보다 깜짝 놀랐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을 묻는 질문을 한다. 서방 국가 대부분이 ‘가족’을 꼽았는데 우리나라는 첫째가 ‘물질적 풍요’였다. ‘인생에서 친구나 공동체적 유대가 지니는 중요성’을 묻는 질문에 겨우 3%만이 응답했고 세계 최하위였다. (고미숙의 명심 탐구 경향신문. 2024. 6. 24 월)
부자가 되겠다. 10년 안에 몇억을 벌겠다. 꿈이 건물주다. 이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이게 정상인가? 그런 꿈을 꾸지 않(못하)는 나는 시대에 뒤떨어지는 사람인가도 싶다. 그렇다고 내가 경제적 풍요가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1만 원짜리 한 장에 동동거린다.
돈은 많은 것을 해결해 준다. 지지난해 갔던 대만 여행이 참 좋았었다. 화련 계곡을 다니면서 원주민의 생활을 상상하는 것도 좋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곡 길을 따라 가면 어디가 나올까? 예전 이 산속에 살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원주민을 만날 수 있을까? 저 산 어디만큼이 어느 부족의 영역이었을까? 다투던 두 부족의 총각, 처녀가 물을 찾아 내려온 계곡에서 만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뒤돌아 바라보는 태평양 바다는 얼마만큼 가야 섬에 닿을까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펴곤 했다. 무엇보다 음식이 좋았다. 시장 음식이 더 맛있었다. 일정에 쫓겨 박물관을 뛰어다니듯 보고 온 것도 아쉽고, 모양이 각기 다른 주택 단지를 걸어보지 못한 것도 아쉽다. 호젓한 이 동네에서 한달살이를 한다면 어떨까? 무슨 말이냐면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다면 좋겠다는 뜻이다. 만 원짜리 한 장에 동동거리면서…그래서 꿈을 꾼다. 돈이 많았으면 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가족보다 우선해서 꾸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 어느 분야의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은 욕망이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장단기 목표를 세우고 실천 계획을 세운다. 계획은 구체적일수록 실천 가능성이 크다. 올해 안에 세 권의 책을 발간하는 계획을 세웠다. 여름에 한 권이 나왔다. 가을에 또 한 권, 겨울에 한 권 하면 목표 달성이다. 그런데… 멈춰있다. 가을에 멈춰있다. 예상치 못한 다른 건이 끼어들어 가을을 돌아볼 여유를 잃어버렸다. 잠시 방황했다. 책이 먼저야? 그 건이 먼저야? 둘 다 놓칠 수는 없다. 둘 다 안고 갈 수 있다면, 그럴 능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우리는 종종 생각의 결과들이 맞는다는 착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 착각을 적절한 시기에 바꾸지 못하면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놓치고, 과거의 잘못이 반복된다. 이때 필요한 자질이 자신을 돌아보는 것,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다. 잠시 시선을 놓쳤다. 착각했다. 마음먹은 대로 될 거라 착각했다. 시선을 딴 데 두었다. 그래 놓고서 자책하고 있다. 요즘.
불현듯 깨달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떨어지는 낙엽을 보며 깨달았다. 찬바람에 웅크리고 걷는데 어제 없던 낙엽이 쌓여 있다. 어디서 왔을까? 아~ 저 나무였구나. 어제만 해도 무성했던 나무가 하룻밤 새 앙상하게 변했다. 난 지난 두 달 무엇을 했지? 우왕좌왕하지는 않았는지. 책 한 권 냈다고 휴식기를 가지려 한 것은 아닌지.
낙엽은 가을은 참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