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에 관한 에세이

<우리의 인생이 겨울을 지날 때>

by 비루투스

*‘윈터링’이란 추운 계절을 살아낸다는 의미다.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발전하는 데 실패하는 혹은 아웃사이더가 된 듯한 감정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누구나 한 번쯤 이러한 인생의 겨울을 맞이한다. 어떤 이들은 겪고 또 겪는다. 이런 시기를 인생의 휴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은 갖가지 모습으로 시작한다.



불면증


모두 곤히 잠든 세상에 나 혼자 덩그러이 깨어나 날카로운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이다.

내게 살면서 가장 힘들고 괴로웠던 경험을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불면증과 관련된 스트레스나 그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많은 일을 그르쳤던 것들을 말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그 고질병은 일이 수월하게 풀리지 않을 때마다 함께 했다.

수면 장애로 겪는 고통은 단순히 잠이 들지 못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 소리와 사소한 감정에도 예민해지고, 신경증과 강박증은 물론 소화와 배변 활동에 문제를 일으키며, 심한 경우 우울증과 소외감을 유발한다. 그것까지는 참고 견딜 수 있다. 불면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내일에 대한 불안과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밤마다 시달리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면 누구라도 부정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행복하기 싫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니고, 사랑하기 싫어서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의지로 강하게 노력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은 결단코 존재한다. 그러한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것, 그것은 폭력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프로포폴’ 같은 마약을 복용하다 적발되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밖에 없다.



독서


"겨울에는 등불 아래서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다. 그리고 영적인 독서, 영혼의 재정비, 겨울은 도서관을 위한 시간이다."

불면증을 고치기 위하여 여러 방면으로 치료를 받아보고 이리저리 노력도 해봤지만,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들고 크게 효과를 보지 못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불상사가 반복되는 것일까?

누구에게도, 어떤 곳에서도 명쾌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기에 내게 가장 익숙한 취미인 독서를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불면증 때문에 철학적인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부처처럼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니체처럼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도 해 봤다. 물론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 이유는 구체적인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 없이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은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날마다 자신을 부여잡지 않는다면 처음의 상태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질료는 형상을 배반하고 다시 되돌아가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엔 인문학 열풍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철학의 경우 다른 장르와 비교해봤을 때 친절보다는 냉정한 영역에 속한다는 것이다. 서사와 내러티브가 전제된 여타 장르들과는 달리, 철학은 자신과 주변의 환경에서 단서를 찾아 스스로 서사와 내러티브를 찾아가도록 하고 그것을 다시 개념화시킨 학문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질료에서 형상으로, 다시 형상에서 질료로 환원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형상은 거친 질료는 처음의 질료와는 완전히 다른 물질이다. 왜냐면 그 과정에서 의미가 새롭게 부여되기 때문이다. 이것에 가장 적절한 비유로는 탄소가 열과 압력을 받는 과정을 거쳐 ‘다이아몬드’라는 새로운 물질로 거듭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는 연금술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고대의 철학자들은 동시에 과학자이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인간의 삶에도 유추 적용할 수가 있는데, 그러한 형상의 과정은 수월한 것이 절대 아니다. 그 이유는 자기 객관화만큼 혹독한 과정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철학에서의 ‘웰빙’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의미와 거리가 멀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철학자와 예술가들에게 스트레스와 불면증은 기본 옵션이었고 그들은 그것을 회피하기보다 그대로 받아들이며, 작품과 사상이라는 자신만의 다이아몬드를 만들어내었다. 나는 그들의 보석들을 보면서 적잖은 위로를 받고 있다.


그들도 나와 같이 고통과 좌절에 불안해하는 약한 '인간'이었다.



용기


"나는 혼자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스트레스에 압도당했다는 무력감에 사로잡히느니, 차라리 맞서 싸워야 할 통증이 있다는 사실에 속으로 기뻐하고 있다. 어쨌거나 훨씬 구체적이니까."

생각만 하고 망설였었던 신경정신과의 문을 두드리는 데에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다. 왜냐면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비슷한 처지에 놓여봤던 사람이라면 그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의사에게 상담받고 수면제를 처방받은 날부터는 이전보다 수월하게 잠을 잘 수 있었다. 물론 수면제도 내성이 있으므로 약에만 의존하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그간 습득된 불면증에 관한 지식은 의사에게도 인정받을 정도였고, 나름 몸 관리에 신경 쓰는 편이어서 처방 후 어느 정도는 정상적인 패턴을 유지할 수 있었지만 한번 게을러질 때마다 약도 통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그럴 때마다 그 병이 도지는 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지럽고 복잡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은 비정상적이기보다 자신에게 좀 더 솔직한 사람이기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파견


"나는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고 내 눈으로 직접 지켜보았다."

업무 때문에 목포에 파견근무를 가야 했는데, 마침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다 떨어져서 출장소 근처에 있는 병원을 방문하였다. 불면증에 관해서는 이골이 날 정도였고, 다른 병원에서 새로 진찰을 받는다고 해도 크게 처방이 달라질 것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전과 같은 약으로 처방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때 그는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약에 관한 부작용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고, 나는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느 정도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는 아까와 같은 표정으로 다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의사마다 중요시하는 영역이 다르기 때문에 내가 뭐라 판단할만한 권한은 없지만, 적어도 그 약을 장기간 복용하게 된다면 기억이 감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생님께 내가 돈 벌자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 같습니까? 어차피 이곳에 오래 계실 분이 아니지 않습니까? 요즘엔 ‘구글’에 처방전에 쓰이는 약들을 검색하면 부작용에 대해 나오니까, 한번 찾아보시고 다시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선생님이 약을 조금씩 줄이시는 쪽으로 권장드립니다. 그래도 안 된다면 병원에 다시 찾아오십시오. 일단 약은 저번과 비슷한 것으로 처방했고, 이왕 목포에 오셨으니까 오신 김에 맛있는 거라도 많이 드시고 돌아가십시오.”

지금까지 처방받아왔던 약들은 수면제, 신경안정제, 복부팽만을 완화하는 소화제로 구성되어 있었고 처방전에 나온 이름을 하나씩 검색해보니, 의사가 지적했던 것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나는 충격에 빠졌었고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멍하니 모니터를 쳐다보면서 마우스를 클릭했다.

이전의 병원에서는 약을 처방전 대로만 복용하면 건강에 크게 무리 없이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하다고 말했었고 나처럼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의 기억이 감퇴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밤이 되어 목구멍으로 약을 넘겼을 때는 마치 독약을 마시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 사라질 수 있다니, 그것은 불면증보다 더 큰 공포로 내게 다가왔다.


마주함


"상황은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것이다. 더 암울하고, 더 메마르고, 더 외롭게, 나는 강한 타격이 왔을 때 완충제가 되어줄 지푸라기 더미를 내 밑에 깔아 두고 싶다. 모든 것에 대비하고 싶다. 추위가 시작되기 전부터 모든 걸 준비해두어야 하거든. 추워진 다음에는 아무 데나 마음대로 갈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

기억이란 어떠한 자극을 감지하고 이것을 머릿속에 새겨두었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도 소환할 수 있는 정신기능을 말한다. 그것은 또한 정신과 신체를 연결하는 매개체 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도 말해지며, 기억의 이러한 특성을 ‘연상’ 작용으로 부르기도 한다. 따라서 어떤 경험이 뚜렷하게 떠오르지 않더라도 관계된 것을 토대로 기억을 재구성할 수도 있고, 그것은 특정 기억과 별개로 다른 기억의 중요한 맥락을 이루기도 한다.


기억이 사라지게 된다면 나는 나의 삶을 무엇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까? 페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에 나오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문장이 갑자기 생각났다.

기억상실이나 치매에 걸려 의식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보다는 암에 걸려 고통 속에 있는 것이 인간의 존엄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나를 기억할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그리고 뭔가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간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강박관념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변화, 그것은 지금까지 가장 안정적으로 받아들였던 패턴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다. 나는 수면제 복용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였다. 그냥 버티면서 내게 일어나는 불안의 요소들을 찬찬히 바라보기로 했다. 당연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고, 찌뿌둥한 상태로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렇게 3일이 지났고, 4일이 되던 밤, 잠을 자기 위해 또다시 누웠다. 어차피 불면의 밤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데, 평소처럼 약을 먹고 맘 편하게 자버릴까 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아무 생각과 감정 없이 자는 단잠보다 악몽이라도 꿀 수 있는 하루를 택하기로 했다.



기억


"겨울에 우리는 바로 그런 것을 배운다. 과거가 있으면 현재 그리고 미래도 있다는 것 어떤 일을 겪은 후에는 또 다른 시간이 온다는 것, 우리가 과거의 것으로 제쳐둔 일이 다시 되돌아오는 경우가 흔히 있듯이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일이 언젠가는 지나간 역사가 된다. 그 순환을 견뎌낼 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진다."

뜬구름 같은 상념들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했고 불편했던 부분까지 같이 생각나서 힘들었다. 그것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한 과정이 반복되어 그나마 나를 지탱하고 있었던 다른 삶들이 한꺼번에 무너져버리는 것에 대한 또 다른 불안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신과 육체는 각각의 입장에서 대립하고 갈등하고 있었다.

내 인생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좋았던 적이 더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점은 안 좋았던 것들은 생각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생각나는 데 반해, 좋은 것들은 억지로 기억을 소환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억이 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내 삶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그저 ‘이방인’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억일지라도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난 후로부터는 잃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지우려 하기보다 하나라도 떠올리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것이 바로 지금까지 내가 찾고 있었던 보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형장에서 죽음을 앞둔 ‘뫼르소’의 심정이 그때서야 이해되기 시작했다.

기억 들을 하나씩 떠올려 보니 그때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그러한 이유는 그 일들은 이미 지나버린 과거가 되어버렸고 그것은 더 이상 나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불면증이 없었다면 내 삶은 수월하게 흘러갔을까? 별로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다른 어려움으로 힘들어하고 있지 않았을까?

어느새 나는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시끄러운 알람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깊은 단잠을 잤다. 그날 이후, 불면증은 믿지 못할 만큼 완화되었고 나는 그것이 갑자기 사라진 이유가 궁금했다. 여러 이론과 가설들을 생각해봤지만, 가장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것은 칼 융의 ‘자기’ 이론이었다.


‘자기’란 의식과 무의식을 포함하는 정신영역의 전체적인 영역으로서 인간이 태어났을 때부터 존재하는 핵심 원형을 말한다. ‘자아’가 의식의 영역만을 볼 수 있는 것에 반해, ‘자기’는 ‘자아’를 포함하여 무의식적 영역까지 포괄하기 때문에, ‘자아’와 구별되면서도 그것의 특성까지도 그대로 가지고 있다.


아마도 지금까지 의식적으로 병증을 피하려고 또는 억제하려 했던 노력은 내 무의식적인 영역에 압박과 스트레스를 유발했을 것이고, 약은 억지로 그것을 눌렀을 뿐이었다, 따라서 그로 인한 부작용은 내 인지능력에 어느 정도 부작용을 일으켰을 것으로 추론할 수 있다. 의사의 충고는 그동안의 시도 자체에 대한 회의를 가지게 만들었고, 그것은 의식을 넘어 무의식적인 영역에도 커다란 파장을 주었다.

‘자기’ 상실이라는 공포가 불면증이라는 불안을 덮어버리면서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접점이 생긴 것이 아닐까? 그것이 아니라면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설명할 수 있는 길이 없다.



흔적


"문제는 당신을 고치는 게 아닙니다. 그는 말했다. 당신의 기준에서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게 중요한 겁니다."


아직도 여전한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사람들은 이전의 것들을 그리워하고 있고, 그것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기를 소망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을 되새겨보면 항상 좋았던 것만 떠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피하거나 잊고 싶었던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다. 과거가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그저 시간의 기점이 멀리 있어서 좋아 보이는 것일 뿐이다. 과거에도 현실은 항상 아픈 기억을 선사했다.

상처가 아물면 새 살이 돋을 것이고, 그 흉터는 지워지지는 않겠지만 언젠가는 훈장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 것이며 그것은 그저 입장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뿐이다.

기억은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 필립은 스스로에 대해 참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그는 삶의 형태에 대해 품었던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그가 겪은 불행은 결국 섬세하고 아름다운 장식품의 일부에 불과했다. 흥분도, 권태도, 쾌락도, 고통도, 모두 밝은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애써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 모든 것이야말로 한데 모여서 형태의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의식적으로 미를 추구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인간의 굴레, 서머싯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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