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틀라스의 조각상 밑에는 정의의 신이 죽음의 신과 형벌의 신 사이에서 한 손에 황금의 칼을 잡고 다른 손에 저울을 들고 상인들의 신이라고 할 탐욕의 신과 시기의 신을 두 발로 밟고 서있다.-282p
그는 "지혜와 꾀에 의존했던 이 작은 나라의 외교 노선은 철저한 평화정책이었다."라며 네덜란드의 개척정신과 진취성을 칭찬했다. 그런데 그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네덜란드 역시 제국주의를 추구했고 다른 나라를 식민지화시켜 억압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동인도 회사는 영국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에도 있었다. 그들이 다른 강대국들보다 탁월했다고 말할 수 있는 점은 무절제한 이윤의 추구는 국가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위험요인이라는 점을 일찍부터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경제의 파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들 역시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파멸의 길에 들어섰다.
개척정신과 진취성은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고자 하는 과학적 탐구의 욕망, 미지 세계와 그곳의 동식물을 보고 싶어 하는 호기심, 그리고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다른 세계에 대한 열정과 함께 시작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역사 속에서 개척정신과 진취성으로 무장한 이들이 자신들 이외의 존재를 깡그리 무시함으로 전례 없는 성취를 이루어 낸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칼 세이건이 우주 개발과 개척정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주장하는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체적인 맥락을 살피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부분만 끌어와서 합리화시키는 경향이 짙다. 그러면서도 378p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 사회에서 편히 살던 인물이었다. 그들은 노예 제도의 부당성에 괴로워하기보다 오히려 억압하는 논지를 폈으며, 전제 독재 군주를 섬겼고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쳤다."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게 따지자면 이런 반박이 가능하다. 당신은 미국에서 편히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개척정신과 진취성이 강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모르는 것인가? 당신의 논리 역시 육체와 정신의 분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동안의 개척과 개발은 지구를 파괴하고 생태계에 불균형을 가지고 왔다. 또 다른 식민지를 개척하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이용하는 것만큼 지금까지의 과오들을 바로 잡는데 과학과 기술이 집중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위헌스는 "우리가 그 행성들을 단지 거대한 사막과 같이 아무런 생물이 살지 않는 그러한 곳으로 간주한다면, 그것은 지구라는 행성에게 모종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 생명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행성은 지구밖에 없다는 점에서 지구는 특별한 지위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생명의 시작은 하나의 정액 세포에서 발생한다. 우주도 그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지구는 빛 에너지를 받고 있는 행성들 중에서 생명을 잉태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궁으로써 선택을 받은 곳이라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를 생명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지구만큼이나 사람들이 잘 살 수 있고, 잘 꾸며진 세계가 한둘이 아니라 여러 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에덴동산을 경시하고 그곳에서 점점 멀어지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