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이라도 전할걸 그랬어...

#초속5cm, #신카이마코토, #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

by 비루투스


책과 영화를 찾아보기보다, 우연히 겹쳐지는 이미지들이 새로운 장면을 만들어낼 때 더 큰 기쁨을 느낀다. 영화 〈초속 5cm〉는 나에게 그런 경험을 주었다. 신카이 마코토의 원작이라 하지만, 나는 리메이크된 영화를 먼저 접했고, 때마침 읽었던 김애란의 단편 〈안녕이라 그랬어〉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소설 속 ‘안녕’은 관계의 끝을 알리는 작별 인사이자, 상대의 평안을 기원하는 따뜻한 말이다. 영화를 보며 그 뉘앙스를 시로 담아내고 싶었고, 새벽 출근길에 홀린 듯 시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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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키는 어린 시절 전학생 아카리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는 그녀에게서 자신과 같은 외로움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빛을 본다. 두 사람은 ‘천문’에 대한 관심을 공유하며 같은 하늘을 바라본다. 아카리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이고, 타카키는 그 빛을 반사하는 달과 같다. 그녀의 부재는 곧 그를 어둠 속에 머물게 한다.


“1991년 3월 4일, 벚꽃을 피우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었다.” 구체적인 날짜로 고정된 약속은 결국 지켜지지 않을 것임을 암시한다. 아직 피어나지 못한 벚꽃은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과 미완의 약속을 상징한다.


타카키는 약속의 장소에서 아카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 말들은 이미 바람에 흩날려버린 벚꽃처럼 잡히지 않는다. 벚꽃잎이 떨어지는 속도, 초속 5cm는 사람 사이의 거리와 마음이 멀어지는 속도를 은유한다. 같은 나무에서 함께 피어났던 두 사람은 결국 바람에 날려 서로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멀어진다.


영화 후반부에서 타카키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꿈과 이상을 잃고 현실에 매몰된다. 시는 그 상실의 감정을 직접 드러내며 성장의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사랑은 숭고하지만, 짊어지는 것이 늘어날수록 퇴색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언제든지 누군가에게 날아들어 꽃을 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서로 스쳐 지나가며 인사를 하지 못한 장면은 밤하늘의 유성우와 겹쳐진다. 이는 바람에 흩날린 벚꽃의 이미지가 변주된 것이다.


‘골든 디스크’는 NASA가 보이저 탐사선에 실어 보낸 ‘골든 레코드’를 모티프로 삼았다. 인류의 메시지가 먼 미래나 다른 존재에게 닿을 수 있다는 가능성은, 타카키와 아카리의 관계가 끝내 이어지지 못했음에도 그 기억과 감정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음을 은유한다.

시는 그 순간을 별빛에 의탁하며 인간적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감정으로 승화시킨다. 이제 ‘안녕’은 잘 가라는 인사에서 잘 지내라는 기원의 의미로 바뀐다. 하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아쉬움은 그들이 함께했던 사랑의 징표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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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이라도 전할걸 그랬어... >


그때,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지.

외로움이 내게 데려온 것이었을까,
같은 하늘을 찾던 눈빛 속에서 너를 만났어.

1991년 3월 4일,
벚꽃을 피우기엔 아직 이른 계절이었지.

그날의 너는 말했어—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해도
함께 이곳에서 맞이하자고.

아니라도, 괜찮은 어른이 되어
다시 이 자리에서 만나자고.

시간은 약속 위에 덧입혀져
오지 않을 것 같던 오늘이 다가왔어
벚꽃은 내 앞을 환하게 비추어 주었고
바람은 꽃잎을 눈처럼 흩뿌리고 있었지.

너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은
바람에 섞여 흩날리고 있어.

나무에서 멀어진 꽃잎은 바람에 흩어지는데,
희미해져만 가는 기억은 여전히 기념이 될까.

어른이 된다는 건… 참으로 슬픈 일이야.

어쩌면,
우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을지도 몰라.

그래도—
나무는 다시 싹을 틔우고,
그 위에서 또다시 꽃은 피어나겠지.

“안녕.”

밤하늘, 우주에는
수만 개의 단어가
유성우처럼 쏟아진다지만…

너를 만나기 위해 묵혀 두었던,
그 어떤 말보다도—
끝내 건네지 못한 인사를
저 별빛에 띄워 보내고 싶어.

그리고…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