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축선과 천안문광장
우리가 인생에 간절히 필요로 하는 모든 요소를 한 사람이 가지고 있을 확률은 아주 낮지 않을까요?
–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중
북경 내성 9개 각자의 매력이 참 다채롭다. 9개 성문마다 다른 이야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곳이 더 유명하다 아니다를 판단하기 어렵다. 매력이란 관광객들의 후기나 관광책자에서 차지하는 분량이 아닌, 내가 보고 느끼는 시선과 느낌의 크기일 뿐이다.
북경 내성 투어 마지막은 정양문(正阳门)이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고 했던가. 조양문(朝阳门)부터 시작했던 북경 내성 9개문 탐방기는, 가장 볼거리와 할 이야기가 많은 지역인 정양문을 종착점으로 마무리된다. 북경의 대표 관광지 중 한 곳이기에 너무 잘 알려져서 오히려 글쓰기가 어려운 지역, 그러나 나의 성문 탐방은 관광 가이드북이 아니기에, 북경살이 6년 동안 내 발걸음이 닿았고 내 눈길이 머물렀던 관점에서 쓴다.
정양문 중심으로 성 안팎으로 나누어서 세 부분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1부) 중축선과 천안문광장
(2부) 전문 밖 4대상업거리 - 서하연, 대책란
(3부) 전문 밖 4대상업거리 – 선어구, 서타마창가
"정양문(正阳门/정양먼)은 과거 황제가 지나다니던 문이었으며, 전문(前门/치엔먼)으로도 불린다. 정양문의 정문은 황제가 천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농경하고, 순시를 나갈 때 열렸다. 평소에 백성들은 동서 갑문을 이용해서만 통과할 수 있었다. 북경성을 남북으로 가르는 중축선(中轴线)상의 중심이 되는 문이며, 천안문광장의 최남단에 위치한다. 명나라 영락17년 (1419년)에 처음 건설되었으며, 완벽한 방어 건축체계를 갖추었다."
1915년에 북경 교통을 위하여 독일인에게 위임하여 개조공사가 되었고 그 후 옹성 월벽과 동서 갑문은 철거되었다고 한다.
북경 성문 중 현재 성루와 전루가 모두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유일한 문이다. 천안문광장 끝에 서있는 두 건물의 자태가 웅장하다.
성루(城楼) 안쪽은 천안문광장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간단한 검문만 통과하면 광장 안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사전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정양문 성루 문 아래 통로에서 저 앞에 보이는 전루(화살타워). 이 곳 성루 문 아래 中国公路零公里点 (Zero point of highways, China)라는 바닥 표식 앞에 사람들이 몰려서 사진을 찍고 있다. 동서남북 청룡 백호 주작 현무와 더불어 장식된 표식은, 중국 교통의 거리 시작 기준을 이곳으로 세웠다는 뜻. 그야말로 정양문 한가운데 문 아래 서있다는 것은 북경의 한 가운데 배꼽에 있는 것이다.
성루에서 전루 앞쪽으로 빙 돌아나와 지하철역 쪽에서 바라본 전루(箭楼/화살타워)의 모습.
중축선(中轴线)은 북쪽 종루와 고루(钟楼/鼓楼)부터 남쪽 영정문(永定门)까지 북경 중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직선거리 약 7.8km의 선이다. 이 가상의 직선 상에 북경의 주요 역사적 건축물들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정양문이 있다. 세상의 중심, 중국의 중심, 북경의 중심에는 황제가 드나들던 정양문이 있다.
천안문광장(天安门广场)은 북경 중심부에 위치한 동서 500m, 남북 880m, 총 면적 44만m의 세계 최대 광장이다. 1919년 54운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선포, 문화대혁명, 두 차례의 천안문 사태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이 벌어진 중국 근현대사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광장 중앙에는 인민영웅기념비, 남쪽에는 모주석기념당, 동쪽에는 국가박물관, 서쪽에는 인민대회당이 있다.
천안문광장 부근은 외국인 여행객들보다 중국 각지에서 온 내국인 여행자들이 훨씬 많다. 워낙 땅덩어리가 큰 중국이다보니, 수도인 북경에 와서 자금성을 관람하고 국기게양식을 보고 모주석기념당에서 참배하는 것이 일생일대의 과업인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2021년 12월부터는 천안문광장 위챗 미니프로그램 (天安门广场预约参观)을 통해 사전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 원래도 검문검색이 심했던 곳인데 접근이 더 어려워졌다.
국기게양대 (国旗升旗处)
하루 두 차례 오성홍기 국기게양식과 강하식이 치러진다. 매일 동 틀 무렵과 해 질 녘에는 이 의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인민영웅기념비 (人民英雄纪念碑)
중국 근현대의 혁명열사를 추모하기 위해 1958년 5월 설립. 기념비 정면에는 모택동(毛泽东/마오쩌둥)이 쓴 "인민영웅영수불후(人民英雄永垂不朽/인민영웅은 영원불멸이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후면에는 모택동이 기초하고 주은래(周恩来/저우언라이)가 쓴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대리석 받침대 네 면에는 근대 약 100년간의 혁명 역사를 조각한 8개의 거대한 부조가 있다. 각각의 내용은 1840년 아편전쟁 중 아편의 소각 장면, 1851년 태평천국 운동 당시 진텐마을(金田村)의 봉기, 1911년 우창봉기, 1919년 5.4운동, 1925년 5.30운동, 1927년 난창봉기, 1931~1945년 항일유격전쟁, 1949년 홍군의 양쯔강 도하 성공 등으로 혁명과정의 기념비적인 사실들이 조각되어 있다.
모주석기념당 (毛主席纪念堂)
중화인민공화국의 창시자이자 중국 공산당 최고 지도자였던 모택동(毛泽东/마오쩌둥)의 묘소. 모택동은 화장을 원했으나 국가주석이던 화궈펑의 주도로 사후 9개월 후 1977년 5월 기념당이 지어져 시신이 보관되었다. 기념당 건설에는 중국 전역에 걸친 노력이 동원되었다. 쓰촨 지방의 화강암, 광동 지방의 자기, 산시 지방의 얀옌 산 소나무, 쿤룬 산의 석영, 난징의 조약돌, 에베레스트 산의 바위 등 전국에서 가져온 자재들이 사용되었으며, 대만에 대한 지배력을 상징하기 위해 대만해협의 물과 모래도 동원되었다. 자치지구를 포함해 전국에서 온 70만 명의 인부들이 자발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기도 했다. 기념관에 있는 13그루의 소나무는 혁명의 성지인 산시성에서 옮겨온 것으로, 13번의 사계절을 보내면서 투쟁한 혁명의 역사를 상징한다고 한다.
인민대회당 (人民大会堂)
인민대회당은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계획한 10대 도시 개발 프로젝트 중 하나이다. 자원 노동자들에 의해 지어졌으며, 중국공산당 회의, 행사 등이 열리는 주요 장소이다. 중국 100위안 지폐의 뒷면 그림이다.
전문대가(前门大街/치엔먼따지에)는 북경의 중축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는 정양문부터 남쪽으로는 천교(天桥南大街)까지 이르는 길이다. 황제가 자금성 밖을 나서서 제사를 드리러 천단으로 향할 때 지나던 길이었다. 전체길이 1,660m에 폭 20m이며, 명청시기부터 민국시기까지 정양문대가(正阳门大街)로 불렸다. 1965년에 정식으로 전문대가로 명명되었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북경 상권의 중심지가 십찰해 (什刹海/스차하이)에서 서서히 전문 쪽으로 옮겨지기 시작했으며, 청대에 들어서는 이 지역이 북경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지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1940년대 전차를 재현해 놓은 추억의 이 전차는 당당차(铛铛车). 당당당~ 종소리를 내며 다녀서 그렇단다. 전문대가 끝에서 끝까지 왕복 또는 편도 운행한다. 재미 삼아 타보면 타임머신 여행한 듯 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선 중국, 중국 대륙의 수도 북경, 그리고 북경의 중심지로서 가장 붐비고 활기차던 정양문 근처인 천안문광장과 전문대가의 모습을 다시 찾기를 희망한다. 곧 그렇게 되길 바라며, 이 지역을 잘 알고 여러 번 방문했던 우리들과, 이 글로 인해 북경에 흥미를 느끼고 코로나 장벽이 허물어질 그 언젠가 방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될 그들을 위해 기록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