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긴 후통 동교민항, 열강들의 대사관 거리, 고건축군 도보 투어
중국은 청나라 말, 서양 열강들과 일본에 의해 거대한 대륙의 힘을 이곳저곳 빼앗기고 이빨 빠진 호랑이로 전락했다. 불평등조약을 기반으로 하여 외국 세력들이 임대하여 사용한 지역, 바로 조계지(租界地)라 불리는 곳은 중국 여러 곳 특히 항구 중심으로 한 도시 상해(上海/상하이), 천진(天津/톈진), 광주(广州/광저우), 하문(厦门/샤먼), 대련(大连/따롄)에 위치하였다. 상해는 1845년 11월부터 1943년까지 약 100년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홍콩, 마카오는 각각 1997년,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홍콩, 마카오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영국,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음식과 분위기를 주요 관광포인트로 삼는다. 상해 또한 와이탄, 신천지, 프랑스조계지 등에 있는 20세기 초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들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린다.
근대 중국사에 있어서 서양 열강의 반식민지 지배의 상처를 잘 보여 주었던 역사적인 지역들이지만, 이제 이 도시들은 과거 조계지가 남겨놓은 이국적인 매력들로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북경에도 이러한 역사의 잔해가 진하게 남아있는 지역이 있는데, 바로 숭문문 근처 동교민항 후통이다.
“숭문문(崇文门/총원먼)은 북경세문(北京稅门)으로서 수도에 필요한 담배·술·비단·천 등 모두 이 문에서 세금을 내고 입성하여 판매하였다. 청나라 때 북경 내 주점들은 '남로소주(南路燒酒)'라는 간판을 내걸었는데, 이는 남쪽의 숭문문을 지나서 납세한 술이라는 뜻으로 정품임을 밝히기 위한 것이었다. 원나라 때 문명문(文明门)이라 불렀으며, 명나라 시기 성문을 개축하면서 1439년에 숭문문으로 개명되었다. 숭문문이라는 이름은 문덕(文德)을 숭상하는 의미가 있다.”
- 스웨덴 미술사학자 스웨덴 미술사학자 Osvald Siren 촬영. 성문과 옹성(翁城) 안쪽에서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동교민항(东交民巷/동쟈오민샹)은 서쪽으로는 천안문 광장 모주석기념당 (毛主席纪念堂) 맞은편에서부터, 동쪽으로는 숭문문내대가(崇文门内大街)까지 이르는 1.6km 거리의 가장 긴 후통이다. 일반적인 후통과 다른 점이 많은 곳이다. 우선, 오래된 베이징런들의 소박하고 나즈막한 검은 기와집들이 없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고 좁은 골목이 아니라 넓찍하다. 건물들은 대부분 근대 서양식 건축들이라, 마치 상해에 와있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는 북경의 흔치 않은 지역이다.
동교민항고건축군 (东交民巷古建筑群)은 1900년 대 초 이곳에 가득했던 외국 대사관 거리의 근대 서양식 건축물들을 일컫는다.
동교민항의 역사는 외국 대사관보다 훨씬 이전인 13세기 말 마르코 폴로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남방의 곡식들은 경항대운하를 통해 북방으로 들어와 수도에 식량을 공급했는데, 동교민항은 이 남방의 양식들이 북경에 운송되어 도착하던 중요한 요지였다. 이곳에 모인 곡식이 다시 북경 성내로 공급되면서 자연스럽게 쌀시장이 형성되었고 북방사람들은 남방의 쌀을 강미(江米/강남미)라 불렀기 때문에 이 지역을 강미항(江米巷/쟝미샹)이라 불렀다.
1860년 제 2차 아편전쟁 이후 8개국 연합군이 이 지역에 공사관을 설치하고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1901년 맺은 신축조약(辛丑条约)에 의해 공식적으로 동교민항을 “공사관거리(使馆街/Legation Street)”로 이름 바꾸었다. 영국, 일본,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등으로 구성된 8개국 공사관과 그 외 벨기에, 인도 공사관 등이 생겨났으며, 그들을 위한 사저, 관사, 호텔, 식당, 은행, 우정국, 클럽 등이 입점하면서 서양 건축물 거리를 이루었다. 1949년 중국인민해방군이 입성하고, 1959년 각국 대사관이 싼리툰(三里屯)으로 옮겨간 이후 동교민항의 이름을 되찾았다.
오래 전 미국 시카고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시카고 아키텍쳐 투어 (Chicago Architecture Tour) 였다. 시카고는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든 1871년의 대화재 이후, 복구와 재건을 통해 화려한 도시로 재탄생하였으며, 하늘로 치솟은 마천루들은 시카고의 상징이 되었다. 2000년 전 까지만 해도 전세계 가장 높은 건물들은 대부분 시카고에 있었다. 이제는 중국이나 두바이에 있지만.
1966년에 설립된 시카고 건축 재단이 운영하는 워킹 아키텍쳐 투어는,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시카고 건축물들을 걸으면서 가이드 설명 듣는 것으로서 시카고 여행자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나도 이 투어를 1995년에 처음 참여해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들에게도 건축이 가지는 역사적 의미를 직접 걸으며 보고 듣는 것이 그 도시를 이해하고 애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임을 느껴보았다.
과거 시간 여행을 위해, 숭문문 지하쳘역 바로 앞 동인의원에서부터 동교민항 동쪽에서 서쪽으로 걸어본다. 과거로 타임슬립한 거리로 들어설 수 있다.
东交民巷1号 - 동인의원(同仁医院/통런이웬)
1905년에 건립된 독일병원이 전신. 주변 중국인에게 안과가 유명한 병원을 물어보면 대부분 이 곳을 추천해준다.
동교민한 후통은 넓고 긴 거리에 나무가 울창할 뿐 아니라, 이국적인 건축물들로 인해서 아무데나 찍어도 멋진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평일에 가도 항상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东郊民巷甲13号 - 동교민항성당(东交民巷教堂)
성 미카엘 성당(圣弥额尔天主堂)이라고도 불리며 프랑스 신부에 의해 1904년에 건립된 고딕 성당이다. 한국인들이 일요일 2번 미사를 드릴 수 있었는데, 2020년 1월 코로나 이후 현재 금지되어 있다. 이후 북경 내 한인 천주교인들의 삶은 너무도 달라졌다. 매 주 가던 친숙한 장소가 이제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감이 커져가고 있다.
동서로 이어진 동교민항과 남북으로 이어진 대기창대가(台基厂大街)가 만나는 사거리에서, 잠시 북쪽으로 올라가보면 몇몇 흥미로운 장소들이 나타난다.
유명한 쑤저우(苏州) 식당 송학루(松鹤楼), 그리고 1955년에 설립된 동교민항초등학교(东郊民巷小学)
台基厂三条3号 - 프랑스병영 옛터 (法国兵营旧址)
들어갈 수가 없으니, 높은 담벼락 삐죽이 사진만 찍고 그 넓은 구역 주변을 걸어보았다.
台基厂头条3号 - 오스트리아대사관 옛터 (奥匈使馆旧址)
1871년에 건립. 현재 중국국제문제연구소(中国国际问题研究所)로 사용 중.
台基厂大街1号 - 이탈리아대사관 옛터 (意大利使馆旧址)
1869년 설립되었으며 1901년에 이탈리아 대사관으로 사용. 현재는 중국인민대외우호협회(中国人民对外友好协会)로 사용 중.
崇文门西大街9号 - 벨기에대사관 옛터 (比利时使馆旧地)
귀족 별장같이 크고 화려한 이 건물은 1866년에 지어졌다. 동교민항 건물 중에 가장 보존 상태가 좋고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현재 자금빈관(紫金宾馆) 호텔로 실제 영업 중이며, 최근 까페 AlmostCoffee1910도 운영 중이다. 동교민항성당 바로 맞은 편에 위치.
내부는 용무가 없으면 들어가기 어려워서 따종디엔핑 사진으로 대체했다. 북경 시내 이런 궁전 같은 건물이라니…매우 이국적이다.
벨기에대사관 옛터의 붉은 담벽따라 걷기 좋다. 할머니 두 분 처럼 꽃 아래 좋은 위치 자리잡고 휴식 취하시기도 좋고.
이 붉은 담벽에 붙은 동교민항후통 안내문을 보는 사람들. 그리고 간이의자에 앉아 풍경 스케치하는 거리의 화가 모습이 정겹고 평화로워 보였다.
东交民巷15号 - 프랑스대사관 옛터 (法国使馆旧地)
현재 베이징시 시정부기관대원(市政府机关大院). 대사관 정문은 파리 개선문을 모방하여 만들었으며, 문 앞에는 중국식 돌사자 한 쌍이 놓여 있다. 파리와 북경의 콜라보!!
东交民巷21号 맞은 편 - 독일대사관 옛터
1862년 건립. 현재 베이징 캐피탈호텔(首都宾馆)로 사용 중.
东交民巷20号 - 프랑스우정국 옛터 (法国邮政局旧地)
청수벽돌(清水砖墙)을 사용해 푸른색 빛이 도는 회색 건물이라 외관이 매력적이다. 언제 가든지 웨딩촬영하는 커플을 볼 수가 있을 정도로 동교민항후통의 주요 포토 스팟 중 하나이다.
东交民巷甲23号 – 스페인대사관 옛터 (西班牙使馆旧地)
현재 동교민항호텔(东交民巷饭店)로 사용 중.
东交民巷21, 23号 – 일본대사관 옛터 (日本公使馆旧地)
1874년에 건립되어 청 왕실의 관리를 받다가 2차 아편전쟁 이후 일본 공사관이 되었다.
东交民巷丙23号 – 일본정금은행 옛터 (日本正金银行旧地)
개혁개방 후에 이 건물에서 중국 최초의 민자은행인 민생은행이 탄생하였으며, 현재는 중국법원박물관(中国法院博物馆)으로 이용되고 있다. 정금은행은 1883년 상하이에 이어 1910년 베이징에 세워졌다.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의 석재 외벽, 그리고 다홍색 반원형 돔에 깃대가 꽂혀 있어서 마치 성과 같다. 동교민항 또 하나의 유명한 포토 스팟.
东交民巷27-35号 - 최고인민법원 (最高人民法院)
구 러시아 병영지역으로 추정. 굉장히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있으며 ‘최고인민법원’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웅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건물이다. 정문 앞 칼각 잡히 경비병들의 포즈와 눈빛이 너무 강렬하고 엄숙해서 정면 사진은 찍기가 어려웠다.
东交民巷 36号 - 씨티은행 옛터 (花旗银行旧地)
1914년에 건립. 현재 경찰박물관(北京警察博物馆)으로 사용 중. 사전 예약 후 견학 가능.
前门23号 – 미국대사관 옛터 (美国使馆旧地)
1903년 건설. 동교민항 후통 서쪽 끝 부분 치엔먼23호(前门23号) 구역이 있는데, 이 넓은 초록 정원 안에 옛 미국대사관이 위치해 있다.
예전에는 이 곳에 Lost Heaven이라는 분위기 좋은 운남식당이 있었는데 현재는 운영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유명한 재즈바 Blue Note는 여전히 운영 중이라 언젠가 꼭 와보고 싶다.
청나라 말, 황실은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온갖 내우외환에 시달렸다. 1901년 열강들과 체결한 굴육적인 신축조약(辛丑条约)으로 인해, 동교민항의 대사관들은 별도의 경계를 가지고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독자적으로 관리하였다. 중국인들은 모두 쫓겨났고 이 지역에 있던 황실 친척들의 거주지인 왕부(王府/왕푸)들은 모두 열강들이 점령하여 관저로 사용하였다.
동교민항 고건축군 도보 투어는 시카고 아키텍쳐 투어와 달리 다크 투어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아름답고,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분위기 이면의 아픈 역사가 깃든 장소이다. 열강의 침공, 불공정 조약.. 이 모두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를 연상케 하므로, 외국인이지만 한국인이기에 공감하며 이해할 수 있는 후통이다.
숭문문 근처는 동교민항 후통과 명성벽유적지 (내성 동남각루)가 제일 유명하지만, 더불어서 또 하나 재미있는 장소가 있다.
숭문문사거리에 위치한 숭문문호텔(崇文门饭店/총원먼판디엔)은 1978년에 개업하였는데, 이 곳에는 북경 최초의 프랑스 식당이 위치해있다. 사교성이 뛰어났던 이탈리아 디자이너 피에르 가르뎅은 헤밍웨이, 코코샤넬, 입생로랑, 스콧 피츠제럴드 등이 즐겨 찾던 120년 전통의 레스토랑 맥심을 1981년 인수하여, 1983년 '맥심 드 파리'라는 브랜드를 론칭하였으며, 특히 초콜릿으로 유명하다. 북경 숭문문호텔 내 맥심 드 파리(马克西姆餐厅) 레스토랑은 그 지점 중 하나이며 1983년 오픈한 북경 최초의 프랑스 식당이다. 1층에 빵집 北京1983面包坊도 함께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