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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genia Apr 20. 2022

옛 죄인 호송로, 선무문 宣武门

북경 첫 가톨릭 성당 남당, 성공회교회 개조한 모범서국 서점, 죄인처형장



영화 <마션 The Martian>의 원작 소설은 괴짜 과학자 앤디 위어가 2014년 출판한 책을, 2015년에 배우 맷 데이먼 주연으로 영화화되면서 우주에 대한 신선한 아이디어와 파격적인 스토리로 인기를 얻었다. 어릴 때부터 SF 소설을 좋아하던 나의 성향과도 잘 맞았지만, 그의 소설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유머’ 감각이었다. 우주라는 소재는 매력적인 만큼 인간에게 낯설고 예측 불가능한 요소가 가득하다. 주인공 마크 위트니는 극도로 위험한 상황을 헤쳐 나가는데 있어서 전문적인 지식과 운이라는 기본 요소를 장착하고 있었지만, 더불어 중요한 성공 요인으로서 유머 감각과 기록이 있었다. 화성 일지 기록을 통해 하루하루 자신의 상황을 돌아보고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구분해냈으며 한 발자국 씩 생존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힘을 키웠다. 그리고 기록 속에서 그의 유머 감각은 빛을 발하며, 절망과 두려움을 극복할 자기 최면으로서 역할을 하였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화성이라는 배경의 소설이지만, 타인의 기록을 엿보며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상황을 뛰어넘는 기록의 힘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성은 호시탐탐 나를 죽이려고 든다. / 어쨌든 하나씩 해결하자. / 삶에선 단순한 것들이 중요한 법이다. / 지구에 돌아가면 유명해지겠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 용감한 우주비행사가 아닌가. 틀림없이 여자들은 그런 남자를 좋아할 것이다. 살아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과거 선무문 (宣武门/솬우먼) 밖은 채시구 형장으로서, 죄인 호송차의 출입구로서 ‘죽음의 문(死门)’이라 불렸다. 옹성 위에서는 하루에 한 번 정오에 ‘선무오포(武午炮)’가 울렸는데, 바로 처형을 알리는 소리였다. 죄인은 선무문을 통과하여 나와서 채시구에서 참수당했다. 선무문 성문 천정에 후회하기에는 늦었다 라는 뜻의 세 글자 ‘후회지(后悔迟)"가 새겨져 있었다고 전해진다. 1920년 전에 선무문의 전루와 갑루가 철거되었으며, 옹성은 1930년 경, 문루와 성벽은 1965년 지하철 건설 시 철거되었고, 현재 선무문 사거리가 되었다.”


스웨덴 미술사학자 Osvald Siren 촬영. 옹성(翁城) 안쪽 광장 모습. 옹성은 성문 앞을 마치 ‘항아리’처럼 둘러싸며 보호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선무문역 지하철 입구에 세워져있는 선무문 옛터(宣武门旧地) 표시석. 선무문의 위치와 옛 모습 사진, 간단한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현재 지하철 2호선과 4호선이 만나는 선무문역. 지하철 입구에 새겨진 1965년 머릿돌




과거의 흔적이 말끔히 사라진 이 곳, 채시구(菜市口)


사거리에서 선무문외대가(宣武门外大街)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채시구(菜市口/차이스커우)라는 지역이 나온다. 과거 죄인을 처형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어떠한 흔적도 없고 평범하며 복잡한 도시의 모습만 남아있다.


1934년에 중국어를 배우기 위해 북경에 온 Frank Dorn은 1936년에 지도를 만들게 되었다. 일러스트로 가득한 지도이기 때문에 지리적 정보 외에 문화와 역사적인 내용도 풍부하다. 북경 서점이나 타오바오 온라인샵에서 이 고풍스러운 천으로 만든 지도를 판매하는데, 나도 몇 년 전 호기심으로 구매해보았다. 이 지도에서 선무문 근처 채시구 지역에 ‘처형장 (Old Execution Ground)’ 그림이 있다.

(좌) 1936년 북경풍속지도 北京风俗地图 by Frank Dorn  (우) 채시구 형장을 나타낸부분

죄인을 처형하는 형장 이전에, 실제 채시구는 북경의 번화가였다고 한다. 남방에서 북경으로 들어올 때, 노구교(卢沟桥)를 거쳐, 광안문(广安门)을 통과한 후, 북경 내성으로 들어가려면 이곳을 거쳐야 했다. 교통 요지였던 채시구에는 점차 야채 집산지가 형성되었다. 명나라 때 거리 이름을 "채시대가(菜市大街)" 즉 채소거리라 불렀으며, 청나라 건륭제 때 지금의 이름인 "채시구"로 바뀌었다.


청나라 순치제가 북경에 입성하면서, 공식 형장을 명나라 때 서사(西四) 패루에서 이 곳 채시구로 옮겼다. 그 이전에 채시구는 임시 형장이었는데, 일찍이 남송 애국 충신 문천상(文天祥), 그리고 명나라 유명 대신 우겸(于謙)과 명장 원숭환(袁崇煥)도 이 곳 채시구에서 처형되었다고 한다. 공식 형장을 채시구로 옮긴 이유는 사람이 붐비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즉 채시구는 형장이라서 사람이 붐볐던 게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번화가였기 때문에 형장이 된 것이었다. 오락거리가 부족했던 옛날에는 사람을 처형하는 장면을 보는 것 자체가 오락거리였을 터.


청나라 때 채시구에서 처형된 유명인으로는 청나라의 종실인 숙순(肅順)이 있는데, 자희태후(서태후)는 자신을 반대한 숙순을 채시구에서 공개적으로 참수형에 처했으며, 이는 북경성을 뒤흔드는 큰 사건이 되었다. 또한 광서 24년 개혁운동인 무술변법(戊戌變法)이 일어난 후 자희태후가 6명의 변법 인사를 이곳에서 처형하면서 채시구가 또 다시 사람들의 화제거리가 되었다.

청나라 때 처형 장면들 (출처 : 베이징관광국)

채시구의 형장 역사는 1914년에 끝났다. 지금의 채시구는 상가와 빌딩이 즐비한 번화거리로 변모했고 옛날 골목과 역사적인 표징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백 여년 전까지 일어났던 참수의 현장을 전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 선무문


과거 죄인 호송로였으며 근처에 참수 형장이 존재했던 선무문은, 북경 최초의 가톨릭성당인 선무문성당(남당)이 위치한 지역으로 현재 더 알려져 있다.


성당이 1605년에 건립되었고, 형장이 1914년까지 존재했다고 하니 꽤 오랫동안 두 장소가 함께 공존했던 것이다. 생명과 구원을 위한 장소와, 죄와 죽음을 위한 장소가 공존 했다고하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사다.


당시의 풍경은 이러했을까? 성문을 통과하여 처형될 죄인이 운반되는 모습과 성문에서 울리는 처형의 포 소리와 함께, 성문 바로 옆 성당에서 울리는 성스러운 종소리라는 상반된 장소들의 부조화였을까? 어쩌면 생명과 죽음, 죄와 구원은 상반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 속에서 같은 페이지, 같은 맥락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조화로운 모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송되는 죄인을 위한 기도일 수도 있고, 죄인을 바라보며 자신을 반성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죄인은 성당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최후의 용서를 구했을 지도 모르겠다. 지나치게 감상적인 생각일지도 모르겠으나 성당과 형장이라는 부조화 또는 조화의 공간이 나에게는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다.



북경 최초의 가톨릭 성당 - 선무문성당(남당)


선무문성당 혹은 남당(宣武门教堂/南堂)은 성모무염원죄성당(圣母无染原罪堂)이자 주교좌성당(主教座堂)으로도 불린다. 1605년 이탈리아 선교사 마테오 리치가 명나라 신종에게 선무문의 땅을 하사 받아 세운 북경 최초의 가톨릭 성당이다. 1650년 독일 예수회 아담 샬 신부에 의해 북경 최대의 성당으로 증축되었다. 탕약망(湯若望)이라는 중국 이름을 가진 아담 샬 신부는 중국에 수 십년 동안 살면서 청 정부에서 중요한 직무를 담임하기도 했다. 그래서 청 순치제는 늘 성당을 찾아 아담 샬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아담 샬 신부가 세상을 뜬 후 새로운 선교사들이 성당 신부직을 이어받았고 순치제의 뒤를 이은 청나라의 황제들인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도광제 등도 모두 성당을 중히 여겨 성당의 복구가 필요할 때마다 자금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2019년 1월 첫 방문. 정문은 중국식 기와 지붕인데 정문 앞 양측으로 동상이 있다.

(좌) 마테오 리치 동상  (우) 예수회 자비에르 신부 동상


2021년 7월 두 번째 방문.

코로나 기간이라서 그런지 실내가 아닌 야외에서 미사 드리는 중국인 신자들


2022년 4월 세 번째 방문. 선무문 사거리에서 가장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서양식 건물이다.


선무문성당을 몇 차례 방문했으나 때론 공사로, 때론 코로나로, 성당 내부는 들어가볼 기회가 없었다. 성당 내부는 천 여 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고 하며 대표적인 바로크 양식으로 화려하고 장엄하다고 한다. 실제 내부를 볼 수 없었던 아쉬움을 인터넷 상의 사진으로 대체해본다.

(출저 : 따종디엔핑)
왕천 王晨 <펜으로 그린 베이징> 중 선무문성당 모습




서점으로 변신한 교회 – 모범서국 시공간


선무문성당에서 800m 정도 떨어진 곳에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또 다른 종교시설이 있다.모범서국 시공간(模范书局 诗空间/모판슈쥐)은 성공회교회 옛터 (中华圣公会教堂旧址) 건물을 활용하여 운영되는 서점이다. 이 건물은 청나라 광서제 33년인 1907년에 건립된, 중국 화북지역 최초 & 최대 성공회 교회였다.

외관이 정말 멋스럽다! 이런 서점은 언제든 환영!!


내부는 더욱 매력적이다. 높은 천정의 나무 서까래와 양 옆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성당 내부를 은은한 빛으로 감싼다. 꽃이 핀 듯한 천정. 그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빛이 너무나 매력적이라서 목이 아플 정도로 한참 바라보았다. 이 곳은 현재 종교시설이 아니라 서점이기 때문에 코로나 기간에도 편하게 방문할 수 있다.


모범서국 서점은 2014년 양매죽사가(杨梅竹斜街) 후통에 민국시대 건물을 이용한 1호점 오픈한 후에, 이 교회를 개조하여 네 번째 지점을 오픈하였다. 과거의 높은 천장과 기둥, 낡은 바닥과 스테인드글라스 창은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현재의 서점과 까페를 잘 조화시켜 놓은 인테리어 덕에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서와 역사를 특별히 사랑하는 모범서국의 창업자 지앙슌(姜寻)은 시인이자 출판업자이며 고서애호가, 더불어 중국출판예술위원회 위원으로 유명 인사라고 한다. 이 곳에는 창업자 부부가 소장하던 옛 인쇄판 및 옛 인쇄기계 등도 전시되어 있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더해준다.


편하게 앉아서 책을 읽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공간들. 내부는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편안하다. 지금은 종교시설이 아니지만, 과거 예배를 드리던 공간이자 현재 서점이라는 사실은 관광객들에게도 목소리를 한 톤 낮추게 하고 발소리를 죽이게 하는 무언의 압력을 준다.


과거 예배 드리던 제단으로 사용된 중앙 공간은 현재 커피와 차를 판매하고 있다. 책으로 장식된 벽면과 고풍스러운 소품들 때문에 사람들 모두 사진 찍기 바쁘다.


이런 공간에 와서 그냥 구경만하고 사진만 찍고 갈 수는 없다. 차 한 잔 하며 인생선배들에게 듣는 이야기는 이 공간을 몸으로, 마음으로 흠뻑 느끼게 해주었다.

가격이 좀 비싼게 흠. 그러나 마음껏 즐기면 그것이 바로 가성비 갑!


종교활동이 자유롭게 허용되지 않은 중국에서, 이렇게 교회를 개조한 서점은 매우 희귀하며 색다르다. 중국어 중에 打卡 [dǎkǎ/따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핫 플레이스를 다녀왔다는 증거, 즉 출첵!의 의미로 sns에서 많이 사용되는 표현이다. 이 곳 서점이야 말로 ‘打卡’를 외칠 수 있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
그렇다면 시간은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 박완서 <모래알만  진실이라도> 중에서



과거 선무문이 위치했던 곳에서 시간의 흐름과 변화를 느껴본다. 300년 간 처형장과 공존했고 이후 100년 이상 이어져오는 성당, 그리고 100년 후 서점으로 탈바꿈 한 교회. 지금 현재 모습이 어떠한가와 별개로서, 역사는 그 당시, 그 순간의 존재 이유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지금 우리에겐 과거의 아름다운 유산으로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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