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석탄 운송로, 부성문 阜成门

루쉰 박물관과 옛집, 묘응사 백탑과 주변 까페들, 역대제왕묘박물관 등

by eugenia


찾았다, 그림 속 그 장면!


두쿠(渎库/DUKU) 출판사에서 판매하는 책 중에 “만년필화 후통(钢笔画胡同)”이라는 다이어리가 있다. 갈색 천으로 감싸진 심플한 갈색 다이어리 내부는 우진셩(武金生)과 지아이판(贾一凡)이 공동으로 그린 세밀한 만년필화의 북경 골목 풍경 일러스트가 담겨져 있다. 소박한 골목과 사람들을 담은 찰나의 풍경이 상당한 만족감을 주기에, 본래 목적인 다이어리보다는 그림 감상으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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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필로 이런 그림을! 북경을 떠나는 지인들에게 종종 선물한다.


한 컷의 그림이나 사진을 보고 '저 곳을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일러스트 중에 부성문 근처 백탑이 바라보이는 골목, 첸차오쇼후통 (前抄手胡同)이 있는데, 아이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주머니의 뒷모습과 백탑의 풍경이 참 정감있다. 첸차오쇼후통을 걸으며 만녀필화와 똑 같은 이 장면 찾아가 보았는데, 대단한 일은 아니었지만 흐뭇한 미소가 나오는 나만의 성취감이 있었다.

P20220315_092316176_06E41F56-DA0B-4C69-A3F4-0A4C666D4959.JPG 西城区前抄手胡同, 78X36cm, 2014년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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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위치, 같은 장면 찾아보느라 요리조리 핸드폰 위치를 옮겨보았다.




“부성문(阜成门/푸청먼)은 원나라 때 평칙문(平则门)이라 불렸으며 명나라 때 개명했다. 성 내에서 사용되는 석탄은 서쪽 먼터거우(门头沟)에서 생산되며 북경으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부성문을 통해서 운반되었다. 성문 위에는 매화(梅花)가 그려져 있었는데 매(梅,매화)와 매(煤,석탄)의 발음이 동음이의어임을 이용하여 석탄 실은 차가 지나가는 문을 나타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모두 철거되고 지하철 2호선 역과 금융거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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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미술학자 Osvald Siren가 촬영한 부성문 옛 모습




벚꽃이 막 피기 시작한 봄날, 부성문 사거리를 다시 방문해보았다.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 가장 많이 방문해본 지역 중 하나이지만, 계절에 흐름에 따라 또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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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문 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쪽은 거대한 금융가(金融大街)를 형성하고 있어서 대표적인 현대적 풍경이고, 반대편은 옛 골목 후통의 정취가 많이 남아있는 과거의 풍경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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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의 향기가 깃든 골목, 궁먼커우(宫门口条)


중국 근현대 대표 문학가이자 혁명가인 루쉰(鲁迅/노신. 1881-1936)은 황주의 고장인 절강성 소흥(绍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주수인(周树人)이며 <아Q정전>, <광인일기>, <술집에서>, <쿵이지> 등이 대표작이다.


대륙의 칼바람이 부는 겨울철 베이징에선 과일이 매우 귀했다. 서민들은 과일 대신 무를 즐겨 먹었다. 밤이면 무 장수들이 "무가 배를 이겨요~ (무가 배보다 맛있어요) 무 사요~"라고 외치고 다녔다... 자매는 무를 베어 물고 "무를 많이 먹으면 선생님처럼 글을 잘 쓰나요?"라고 물었고, 루쉰은 빙그레 웃었다.

- 이창구 <베이징 후통의 중국사> p185 중


따뜻한 남쪽 지방 소흥에서 온 위대한 문학가가 북방의 살벌한 겨울 추위 속에 이웃 자매들과 나눈 대화를 읽고, 겨울밤, 무, 그리고 정감있는 대화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 골목을 상상해본다.


북경에서 루쉰이 거주했던 곳은 세 지역인데, 그 중 북경을 떠나기 전까지 머물렀던 궁먼커우 골목에 옛집이 보존되어 있으며 박물관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외국인에게는 조금 낯설지만 그래도 학창시절 문학과 역사 시간에 잠시나마 들어본 문학가의 이름에 이끌려서 두어 번 방문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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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은 중국 내 여러 도시에서 거주하였는데, 북경에는 1912~1926년 동안 거주하였으며 <아Q정전> <광인일기> 등 대표작을 이 시기에 집필하였다. 상해는 1936년 10월 임종하기 전까지 머무른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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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이 살았던 여러 도시들, 그리고 대표작 <아Q정전> 삽화


현재 박물관 옆 옛집은 1924년 5월 ~ 1926년 8월까지 어머니, 아내와 같이 거주했는데, 이 집은 루쉰이 직접 설계를 해서 지은 집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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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5일. 루쉰이 직접 심었다는 라일락丁香 두 그루


마음이 꽉 채워지는 듯 볼거리가 많은 박물관과 옛집이지만, 박물관 내 루쉰서점(鲁迅书店)과 까페에서 느껴보는 그 시대 인테리어와 문학가의 정서 또한 추천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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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 작품들과 테마 기념품 판매, 그리고 커피 한 잔의 모던한 공간




가끔 혼자 하면 좋은 일, 후통 걷기와 혼밥


내 나름대로 정한 기준이 있다. 공부와 운동은 혼자 해야만 목표대로 이룰 수 있고, 영화와 전시 관람은 혼자 하면 내용에 더 집중할 수 있다. 골목 걷기와 혼밥은 ‘보지 못 했던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기’에 가끔 혼자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도 누군가와 함께 하며 경험과 느낌을 공유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 혼자 걷다가 좋은 것을 마주치면 지인들 데리고 다시 또 오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루쉰박물관 바로 앞 골목인 宫门口头条49号에 위치한 북유럽스타일 하얀 건물의 호남(湖南)지역 음식점 위푸난(渔芙南)을 방문했을 때 딱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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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식 건물 안에 뚫린 네모 창문들로 보이는 후통 골목 풍경, 그리고 중국 요리


호남 음식(湖南菜/후난차이)은 샹차이(湘菜)라고도 불린다. ‘湘(샹)’은 후난지방의 별칭. 호남은 중국인들이 사랑하는 모택동 주석의 고향이기도 하다. 또한 사천(四川/쓰촨) 지방과 더불어서 “不怕辣, 怕不辣 (매운 것은 겁 안 나지만, 안 매울까봐 겁난다)”는 맵부심을 자랑하며 맛있는 음식으로 유명한 지방이기도 하다.

P20220316_110842639_F53ECFBA-ACE1-4556-9B3F-FA8F3A8467A0.JPG 나의 선택은 루펀(卤粉) - 삶은 쌀국수에 고기, 땅콩, 파, 마늘, 고추기름 등을 넣고 비벼먹는 음식




백탑과 함께 산책을, 백탑과 함께 커피를.


부성문 부근 랜드마크 중 하나는 묘응사에 위치한 백탑이다. 주변 어느 골목에서도 삐죽이 솟아난 이 하얀 탑이 보인다. 원 나라 시기 통치자들이 라마교를 선호하면서 많은 라마교 건축들이 생겨났으며, 묘응사(妙应寺) 백탑(白塔)도 이 시기인 1721년에 네팔 건축가인 아니코(Aniko)의 감독 하에 건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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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벽, 검은 기와와 대비되는 이국적인 모양의 하얀 탑


이 하얀 탑을 바라보며 주변을 빙 둘러 산책하는 코스가 꽤 괜찮다. 또한 백탑을 바라보며 커피를 즐길 수 있는 후통 내 까페들도 꽤 많이 생겼다.



연커피 莲COFFEE&T (白塔之光호스텔 루프탑)

묘응사 바로 옆에 위치하였으며 백탑 바라보는 까페로 가장 일찍 알려진 곳이다. 나즈막한검은 기와의 후통 집들과 그 위로 우뚝 솟은 백탑 풍경 바라보며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너무 좋아서 몇 번 방문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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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커피 LOOP COFFEE (赵登禹路429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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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0220316_113911811_D6AB9A40-6DF7-4570-B9F4-6ADDC3855652.JPG 후통 걷는 내내 이정표가 되어주는 백탑



폴로니오 polonio (宫门口东岔81号)

홍차오시장 옆 유명한 호주식 까페 카보(Cabo) 사장이 최근 부성문 근처에 오픈한 까페이다. 히피들의 도시 우루과이의 카보 폴로니오 Cabo Polonio를 본따 지은 작명이 멋스럽다. 지친 다리를 쉬어가기 위해 요즘 제일 핫한 까페 중 하나인 이 곳은 굿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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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좌석도 아늑하지만, 대부분 2층 옥상에서 백탑 풍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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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시그니처 음료인 플랫화이트(奥白) 한 잔과 함께 !



什么是路?
就是从没路的地方践踏出来的, 从只有荆棘的地方开辟出来的。


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길이 없는 곳을 밟아서 생긴 것이며, 가시덤불만 있는 곳을 개발해내어 생긴 곳이다.

by 루쉰


나는 백탑 주위 한 바퀴 도는 까페 탐방 길을 개발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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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성문 주변의 매력


백탑 근처를 벗어나서 더 오른쪽으로 걷다 보면 역대제왕묘박물관 (历代帝王庙博物馆)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명청 시기에 역대 제왕과 각 민족의 유명한 공신 및 명장들이 모셔져 있고 제사를 지내던 장소로서, 태묘(太庙)와 공묘(孔庙)와 더불어 북경 3대 황실 사원이라 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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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官员人等至此下马" = 관원 등은 말에서 내려 예를 갖추라. 고궁, 명13릉, 국자감&공묘에도 있는 하마비(下马碑)가 이 곳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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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언어로 쓰여있는 하마비


부성문 왼편에는 북경 벚꽃 성지 옥연담공원(玉渊潭公园)TV타워.

외국 국빈들이 방중 시 머무르는 곳이며 가을에 담벼락 은행나무길이 유명한 조어대국빈관(钓鱼台国宾馆).

조어대국빈관 근처이며 2017년 문재인 대통령 방중 시 아침식사 장소로 유명해진 조식싱당 용허셴장(永和鲜浆).

황제가 추분에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낸 월단공원(月坛公园).

지도만 파는 재미난 곳 지도테마서점(地图主题书店).


역대제왕묘박물관에서 더 오른쪽으로 가면 가장 오래된 후통인 좐타후통(砖塔胡同)과 고풍스러운 서점 정양서국(正阳书局).

청나라 성조 때 완공한 북경의 세 번째 성당이자 1900년 의화단사건 때 외국 선교사들과 농민봉기단이 대치한 장소인 시스쿠성당(西什库天主堂).

요나라부터 시작되어 900년 역사를 지닌 황가 궁전 정원인 거대한 북해공원(北海公园).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지만,

알면 북경 생활이 더 재미있어지는 그런 이야기.


코로나 이후 모든 순간이 유의미하고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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