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승문 전루, 적수담, 시하이습지공원, 곽수경기념관 등
왕징에서 북2환 도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두 개의 옛 건물에 눈길이 간다. 제일 먼저 지단공원 맞은편에 위치한 옹화궁의 만복각(万福阁) - 달라이 라마가 청나라 건륭제에게 선물했다는 26m의 단일목 불상을 품고 있어서 건물이 매우 높고 화려하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다보면 오른쪽에 우뚝 선 성문 건물이 나타난다. 철거되지 않고 살아남은 성문의 위엄 – 덕승문 전루가 그것이다.
내가 북경 와서 제일 처음 본 성문이 바로 이 덕승문이었다. 故 박완서 작가의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 “매일매일 가슴이 울렁거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라는 구절이 나온다. 가슴을 울렁거리게 만드는 것은 대단한 사건이나 화려한 풍경만은 아니다. 일상 속 작은 변화나 소소한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가짐이 울렁거림을 만들어내는게 아닐까 싶다. 울렁거림은 설레임이다. 마치 고속도로처럼 쌩쌩 달릴 수밖에 없는 북경 내부순환 2환 도로 상에서, 순간 내 눈에 포착된 풍경은 ‘꼭 방문해보고 싶다’는 설레임을 남겨주었다.
“덕승문(德胜门/더셩먼)은 원나라 때 건덕문(健德门)으로 불렸다. 과거 전쟁터로 나가는 출병의 문이었으며, 승리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得胜=’승리하다’와 같은 발음) 1915년 옹성(翁城)과 갑루(闸楼)가, 1921년 성루(城楼)가 철거되었다. 1980년 전루(箭楼)에 대한 전면적인 보수를 진행하여, 1982년 완공, 문화재로 지정 후 대외 개방하였다. 1993년 전루 내부에 고대화폐전람관을 설치하였으며, 2006년 전국중요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었다.’’
현재 북경에 남아있는 옛 성문은 모두 4개. 새로 복원한 영정문 성루(永定门 城楼)를 제외하면, 옛 모습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은 정양문 성루 & 전루(正阳门 城楼 & 箭楼)와 덕승문 전루(德胜门 箭楼) 뿐이다.
성문은 주요 건물인 성루(城楼)가 있고 그 앞에는 성루를 보호하는 전루(箭楼/화살타워)가 위치하며 전루에는 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화살을 쏘기 위한 수많은 창문이 있다.
코로나 이후에는 상황에 따라 덕승문 내부 개관과 폐관을 반복하고 있다. 운이 좋았던 어느 날, 성 내부로 들어가 볼 수 있었다.
화살타워인 전루에서 성 안 쪽을 바라본 풍경. 저 로타리 어딘가에 성루(城楼)가 위치하고 있었을테지...
과거 덕승문을 재현한 모형이 흥미롭다. 화살 창문이 많이 나 있는 방향이 바로 성 밖. 성입구를 나타내는 패루, 성을 보호하는 물길인 호성하 등도 보인다. 다른 성문들도 이와 동일한 구조였다고 한다.
덕승문 전루 뒷편, 당시 성 밖을 향하고 있는 82개의 화살 창문 바깥 쪽 방향으로 빙 돌아가보면 높다란 성벽 위 근엄한 모습의 전루와 더불어 초록색 버스들이 가득한 의외의 광경이 나타난다. 북경 외곽 주요 관광지인 명13릉과 팔달령으로 출발하는 시내버스들의 차고지가 바로 성벽 아래이다. 그래도 명색이 문화재인데… 이런 의외의 광경에 어이없었지만, 생각해보면 교통의 흐름 때문에 대부분의 성문을 다 철거한 역사적 배경 속에서 살아남은 덕승문이기에 이 정도는 감수해야하는 숙명이 아닐까 싶다.
사라진 내성 성문들이 모두 2호선 지하철 역이름으로 남아있는데, 하나의 예외가 있다. 바로 덕승문을 대신하는 역이름 적수담(积水潭/지쉐이탄)이 그것이다. 덕승문 전루 맞은편 후통 안에 지쉐이탄병원(积水潭医院)이 위치하고 있는데 북경에서 유명한 골절전문병원 중 하나이다.
덕승문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당당함과 실제로 올라가 볼 수 있다는 점이 나에게 큰 매력으로 다가온다. 게다가 바로 가까이에 계절마다 방문하고 싶은 아름다운 습지공원이 있어서 더욱 애정이 간다. 지인들에게만 살짝 소개해주고 싶은 북경 숨은 명소 및 산책 코스 중 하나이다.
北京城是漂来的
북경은 모두 배로 운송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옛날에 경항대운하(京杭大运河)를 통해 남쪽 지역의 쌀과 비단, 찻잎, 과일이 운송되어 북경 백성들의 생활을 풍부하게 했으며, 자금성을 건설한 일급 벽돌, 목재들도 모두 대운하를 통해 북경으로 들어왔다. 대운하는 오랫동안 중국의 남북을 관통하면서 경제와 문화의 동맥으로 자리잡았다. (京은 북경, 杭은 항주를 의미)
시하이(西海)는 덕승문 서남쪽에 위치하며, 물이 모이는 연못이라는 뜻의 ‘적수담(积水潭, 지쉐이탄)’으로도 불린다. 적수담은 원나라 수도 대도(大都/당시 북경의 이름)의 조운을 강화하기 위해 지은 물길 통혜하(通惠河)에 의해 형성된 거대한 호수로, 남쪽 항주에서 시작된 경항대운하 최북단 종점이었다. 배가1,000척 가까이 정박하던 조운의 중심지였으며 황실 코끼리의 목욕탕이기도 했다. 적수담은 문학가 라오서(노사) 선생이 경산 앞 거리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던 북경 풍경이었다고 전해진다. 몇 년 전 북경 시내 유일한 천연 습지공원(西海湿地公园)으로 재개발되면서 산책과 휴식하기 좋은 장소가 되었다.
꽃샘추위가 유독 길어지는 올 해지만, 그래도 봄은 온다. 봄은 남쪽에서 시작되며 남쪽의 소식과 물자를 싣고 북경에 도달한 최종 부두였던 시하이에서 제일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꽃샘추위 속에서도 버드나무와 벚꽃으로 봄 내음 가득한 시하이.
8월 어느 날, 여름 새벽 공기 속 만개한 연꽃을 보러 왔을 때 고즈넉했고 우아한 시하이.
12월, 북방의 살벌한 겨울 칼바람 속에 온 몸으로 느껴보았던 시하이.
자전거와 운동, 수영과 같이 몸이 기억하는 경험은 선명하게 오래 남는다. 시하이를 처음 방문했을 때 온 몸으로 경험했던 시하이 산책이 유독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대운하의 목적은 북경까지의 물자 운반이었다. 그 조건에 가장 유리한 곳이 적수담(积水潭)이었기에 경항대운하의 최북단 총괄 조운부두가 되었다. 경항대운하를 완성한 위대한 과학자인 곽수경의 업적과 대운하의 이야기를 담은 곽수경기념관(郭守敬纪念馆)이 시하이습지공원 모퉁이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다. 이보다 더 알맞은 장소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곽수경(郭守敬/궈쇼우징, 1231~1361)은 원나라 과학자로서 천문, 수리, 측량, 역법 등에 종사하며 10여가지의 세계적 수준의 발명을 하였다. 무엇보다도 원대도 수리 시스템의 기획과 건설을 통해 역사에 큰 공헌을 하였다. 원나라 때 전국의 경제중심이 강남지역으로 옮겨지자, 당시 수도인 대도(현 북경)까지의 자원의 수송에 대해 고민하였다. 쿠빌라이는 곽수경에게 대운하를 보완, 수선하라고 명하였으며, 오랜 기간을 거쳐 경항대운하의 공정을 마쳤다.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천문학 분야, 중국 각지 등에 남아있는 명칭들이 그의 위대함을 오래도록 기억해주고 있다. 1970년 국제천문학회가 발견한 달 뒷면 곽수경크레이터(郭守敬环形山), 1964년 중국에서 발견한 2012호 곽수경소행성(郭守敬小行星), 2010년 개발한 LAMOST 곽수경천문망원경, 곽수경이 만든 별관측대로서 중국 내 오래된 관측대 중 하나인 허남성관상대(河南省登封市观星台), 그의 출생지인 허베이 싱타이 시내 주요 도로 중 하나인 곽수경대도(郭守敬大道), 시하이와 더불어 출생지에도 위치한 싱타이곽수경기념관(邢台市郭守敬纪念馆), 1962년 발행된 곽수경기념우표, 1989년 발행된 곽수경기념주화 등.
기념관이 위치한 언덕에서 내려다본 시하이. 곽수경 동상이 시하이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옛 대운하의 영광을 느끼고 있는 듯 하다.
언덕을 내려오면 또 새롭다. 뒷 편 언덕 위 기념관을 배경으로 곽수경의 동상을 바라보면, 시하이 습지공원의 계절을 이 곳에서 제일 먼저 느낄 수 있다. 봄의 벚꽃, 사시사철 버드나무, 그리고 여름의 연꽃.
과거와 역사의 흔적이 가득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게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지역. 좋은 사람들과 함께 덕승문 전루 방문했다가 시하이습지공원 산책하고 스차하이로 이동하여 밥과 커피 한 잔 하는 완벽한 하루를 슬며시 계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