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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선기 Aug 01. 2022

연예인들이 매일매일 찾아오는 집을 짓다.

실패의 실력 #9 

『실패의 실력』 5 연예인들이 매일매일 찾아오는 집을 짓다.





애스크컬쳐의 한국문화 공유 플랫폼 사업이 완전히 실패로 끝이 났다.


겨울이 그렇게 지나갔다.

얼어있던 땅이 녹고 다시 조금씩 봄기운이 폭발하던 그 시기 


마음을 다시 잡은 나는 센터의 옆 사무실에 있던 대표에게 부탁했다.


"대표님, 인턴들 쓰고 있는 책상 하나만 빌려주세요."



그렇게 그 회사의 인턴들이 쓰고 있는 복도 한쪽 구석, 책상 하나를 빌렸다.


바로 옆에 있던 그 회사 인턴들이 "쟨 뭐야?" 하는 눈으로 흘깃거렸다.

불과 몇 개 월 만에 직원도, 사무실도 없이 그 지경까지 되어버렸지만 아직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모든 걸 포기하기에는 고작 만 서른 살인 나는 여전히 젊었다.



***



애스크컬쳐의 한국문화 공유 플랫폼 사업이 실패로 끝이 났다.

한 순간에 실업자가 되었다. 법인 명의의 대출도 수억 원이었다. 


어쩔 수 없이 새로운 사업을 찾아야 했다.

일단은 돈부터 다시 벌어야 했다.



긴 고심 끝에 오래되고 낡은 주택을 임대해 리모델링해서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쓰지 않는 통장에 아껴두고 아껴둔 마지막 자금 (결혼자금)이었다.



서울 서대문구 소재의 근린생활시설이었던 아버지 명의의 단독 주택을 임대하기로 했다.


1985년에 내가 태어난 집이었다.

그보다 더 이전인 1971년도에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께서 직접 지으신 집이기도 했다.



"서울의 한 평범한 집에서..."

(위 게시글의 집이다)



‘잠깐, 가족 간의 무슨 임대야? 이 XX 금수저네?’


이런 생각을 할지 모르겠어서 미리 말하지만,


보증금, 월세, 계약 조건, 계약서 등

일반적으로 세입자와 집주인 간의 임대차 계약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절차대로 진행했다.


심지어 딱히 ‘주변 인프라’라고 불릴 만한 시설이 아무것도 없는 동네 치고는 다소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기로 했다.

근처에 그 흔한 카페도 하나 없다.


이후로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매월 20일, 월세 내기로 한 날을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았다.


그러니까 가족의 건물(주택)을 활용해서 사업을 한다는 것에 대해

누군가로부터 “에이, 복 받았네”라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꽤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이 되곤 했다.



레프 톨스토이가  소설 『안나 카레니나』 서문에서 말했듯이

모든 집들은 저마다의 사연이 있을 뿐이다.


내 재산도 아니고, 추후에 물려받을 수도 없는 그런 곳이다. 그거 임차인이 아버지라는 것뿐.

(참고로 나는 20살 이후로 모든 대학교 학비와 생활비를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대출받아서 다녔으며,

이후 매번 사업을 할 때에도 부모님께 도움을 요청한 적도, 받은 적도 없다. 정확히는 그럴 형편도 안 되셨다.)


어쨌든 오래되고 낙후되어 그대로는 남한테 세조차 주지 못할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그 주택을 활용해 일단은 돈부터 다시 벌자고 생각했다.


소프트웨어는 낡았지만 하드웨어는 제법 괜찮았다.


우선, 지리적으로 교통의 이점이 있다.

4개의 지하철 노선이 있는 디지털 미디어시티 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였고,


서울 곳곳으로 향하는 버스들이 정차하는 대형 버스정류장과는

불과 150m도 채 되지 않는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작은 연못이 있는 넓은 정원을 ㄱ자 모양의 건물이 감싸고 있고

3층 옥상은 광활하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넓었다.






지은 지 50년이나 된, 그래서 모든 게 낡고 허름한 건물이었지만

구조가 꽤 독특해서 여러 방식으로 활용이 가능해 보였다.


분명,


잘만 다듬으면 꽤 멋진 곳으로 탈바꿈하리라. 

이 원석을 잘 다듬어진 보석으로 만들어야겠다, 고 결정했다.



그동안 해외출장과 여행으로 세계 각지를 다니며 찍어두고 스크랩해둔 예쁜 집과 공간 사진을 프린트했다.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스크랩해둔 사진 파일만 수 만 장 가지고 있었다)






벤치마킹할 수 있는 부분들을 모두 긁어모아 어떻게 여기에 접목시킬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겨울 내 얼어있던 땅이 완전히 녹고 다시 희망이 엿보이던 그해 4월,


봄기운이 망설임 없이 폭발하던 그 계절에 본격적인 대공사를 시작했다.





건축을 전공하고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조언이자 경고에 따라

혹시 모를 안전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건축 사무실에 의뢰해 각 건물의 층과 층 사이사이를 보강하는 작업부터 했다.



공사는 난생처음이었다.


인테리어 회사 대표와 상의해 목수, 페인트, 수도설비, 전기설비 전문가들을 불러 모아

집 구조만 빼고 전부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건물 구조를 보강하느라 준비해뒀던 예산의 절반을 이미 써버렸다.

덕분에 공사비가 빠듯해졌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인부 중의 한 사람으로서 매일 새벽부터 작업자들과 함께 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 몸무게보다도 배는 나갈 것 같은 목재와 건축자재를 옮기는 일부터 청소와 잔심부름까지, 모든 허드렛일을 도맡았다.


지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순례길을 걷는 수행자처럼 매일 공사에 참여했다.


평소에 안 쓰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지만

그렇게 무언가에 열중하고 몸을 고되게 하는 일은 신기하게도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줬다.



























남는 자투리 목재들, 이걸(아카시아 원목이라 꽤 비쌈)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했다. 





요렇게 공간의 포인트로 만들어줬다.










인부 아주머님, 아저씨 분들과 (소주는 필수)

인부 아주머님, 아저씨 분들과 2 (소주는 필수)





의외의 난관이었던 '통유리 끼우기' 매우 무거웠다.












드디어 공사를 도와주러 온 어머니

(물론 가끔 시원한 음료수나 간식을 만들어주시기도 하셨다)



'10분' 일 도와주고 떡실신하신 울 오마니



“아들, 드디어 끝이 보이는구나. 고생 많았지?”


루프탑 가제보 위에 천을 얹히느라 옥상에 올라온 엄마가 도와주며 말했다.


“그러게, 엄마. 드디어 끝이 보이네. 휴.”


폐가 같았던 건물과 집이 삼청동이나 청담동에 있는 카페·레스토랑 건물처럼

예쁜 저택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지켜보는 건

제법 즐겁고 보람찬 일이었다.







공사는 노력을 들이는 만큼 그 성과가 확실하게 눈으로 보이는 매력적인 일이다.


성취감이 남달랐다.


물론 아끼고 아껴도 결과적으로 수억 원의 공사비가 들긴 했지만.




이제 정말로 밑천이 다 떨어졌다.


하지만 괜찮다. 돈은 또 벌면 된다. 중요한 건 희망이다.


내 안에서 약하게 꺼져가던 그 희망의 불씨가 다시 불타오르고 있었다.













꼬박 세 달이 지나고 계절이 완연한 여름으로 바뀌었다.


장마가 빨리 끝난 덕분에 공사는 예정된 날짜에 끝났다.


가능하다면 공사를 더 이어가고 싶었다.


땀 흘리는 게 좋았고, 흘린 땀만큼의 보람이 느껴져서 좋았다.

나를 스스럼없이 대해 주시는 인부 아주머님, 아저씨들도 좋았다.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그렇게 공사는 끝이 났다.



공사가 완공되자 내 롤모델이기도 한 ‘플리토(Flitto)’의 이00 대표 형을 비롯해서

몇몇 스타트업 대표들이 완성된 공간을 구경할 겸 격려 차 찾아왔다.


예전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초청으로 한국을 대표해 함께 사우디를 다녀왔던 멤버들이었다.


우리는 3층 루프탑에서(그즈음부터 의식적으로 ‘옥상’이라는 단어 대신에 ‘루프탑’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다) 바비큐 파티를 했다.


여름 특유의 적당히 습한 바람이 불어왔고 밤공기가 유난히 맑은 날이었다. 루프탑에서 바비큐 파티하기 딱 좋은 저녁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여기를 어떻게 활용할 거라고?”

이00 대표 형이 물었다.


그는 “그래서” 혹은 “그러면”으로 시작하는 말투가 습관화된 사람이었다.


이후 계획과 비전의 중요성을 재차 확인하는 것처럼.



하긴, 예상했던 것보다 공사비 지출이 커져서 이제 빨리 돈을 벌어야 하긴 했다.


“우선 애스크컬쳐의 사무실로 쓰면서 한국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운영해보려고요.” 내가 답했다.


“그것도 좋긴 한데, 방송 촬영장으로 대관해주면 딱일 텐데. 생각해 본 적 있어?” 그가 물었다.


“에~이, 무슨 방송 촬영이에요. 이런 곳에.”


너스레를 떨며 답했지만 머릿속으로 그런 식의 활용을 상상해봤다. 방송 촬영이라… 가능할까?


“여기 건너편이 상암동이지? tvN에 친한 후배가 있는데, 내가 한 번 물어볼게.” 그가 말했다.



이00 대표는 추진력이나 행동이 (그게 최대 장점인) 나보다 더 빠른 사람이다.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00아. 너희 요즘도 야외 촬영하지?”


무심한 척했지만 나는 그 통화에 잔뜩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나 지금 상암동 근처거든, 북가좌동? 친한 동생이 꽤 큰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사무실로 오픈하려고 한다는데 여기 꽤 예쁘네. 너희 촬영장 필요하면 소개해주려고. 사진? 그래 보내줄게.”



그가 전화를 끊고는 나한테 연락처를 하나 넘기며 그쪽으로 찍어둔 사진이 있으면 보내보라고 했다.



그가 소개해준 사람은 CJ E&M의 오 00 PD였다. 코리아>의 PD였던

그는 사진을 보자마자 이틀 뒤에 촬영하러 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걸그룹 ‘티아라’ 편의 야외 촬영을 여기서 찍고 싶다는 말을 덧붙였다.




‘뭐? 걸그룹이 여길 온다고?’


신기함 반, 설렘 반으로 그들을 기다렸다.




이틀 뒤 수십 명의 제작진들과 함께 진짜로 티아라 멤버들이 도착했다.


지연, 함은정, 효민, 큐리와 함께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자인 탤런트 정상훈 씨가 왔다.





















촬영장 분위기는 맑은 여름 날씨만큼이나 화창하고 화기애애했다.


온전히 하루 내내 촬영장 구경을 하고 있던 나는, 티아라 멤버들의 친절함과 탤런트 정상훈 님의 따뜻함에

연예인에 대해 매우 호감을 갖게 됐다. 


>라는 자유분방한 프로그램의 특성 때문인지 스태프들이 모두 즐기면서 일을 하는 듯 보였다.


출연자들과 스태프들이 연신 “공간이 참 예쁘다”라고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옆에서 듣자니 내심 어깨가 들썩여졌다.


숱한 고민과 고심 끝에 디자인했고 하나하나 땀 흘려 만든 공간이었다.

좋은 목재를 고르기 위해 인천 목재 단지를 직접 찾았고, 전구 하나하나, 콘셉트 하나하나까지 심혈을 기울인 보람이 있었다.


내 눈에만 예쁜 게 아니었구나, 천만다행이었다.




그렇게 첫 촬영팀이 다녀간 뒤로 그 수십 명의 제작진이 뿔뿔이 흩어져


(촬영팀, 미술팀, 조명팀, 분장팀, 편집팀 등등) 방송가에 입소문을 내줬다.





며칠 지나지 않아 SBS <연예한밤>의 제작진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돌과 함께 루프탑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며 인터뷰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고 했다.


물론 감사히 예약을 받았다.





일주일 뒤 코리아> 촬영팀 못지않은 대규모의 SBS 제작진이 찾아왔다.


그리고 ‘아이돌’이라는 친구들이 도착했다.







<프로듀스 101>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 막 결성된 ‘워너원(Wanna One)’이었다.


강다니엘, 박지훈, 황민현 이렇게 세 멤버가 왔다.


그들은 루프탑에서 리포터와 함께 바비큐 파티를 하고 대표곡인 <나야 나>와 신곡 <에너제틱>을 부르면서 춤을 췄다.


내가 땀 흘리며 수개월간 직접 만든 루프탑을 배경으로.














TV나 스마트폰으로만 보던 연예인들이 내 공간에 찾아온다.


모든 게 신기하고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프로그램 제작진의 허락을 받아 한밤 ‘워너원’ 촬영장 후기>라는 글을

워너원의 팬 입장에서 애틋하고 위트 있게 작성해 블로그에 올렸다.



이 후기는 수십 만의 조회 수를 기록하며 온라인 상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송가에도 더 빠르게 공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한 순간에 ‘촬영 맛집’이 된 것이다.

























‘루프탑 00하루’

방송가에서 계속 집 주소로만 불리는 게 부담스러워 이름도 지어줬다.



‘하루’는 우리 집 반려동물인 골든 레트리버의 이름인 하루에서 따왔다.

그냥 ‘루프탑 하루’라고 하면 어감이 영 안 좋다는 친구들의 의견 따라 ‘00’를 붙이게 되었다.



루프탑 00하루. 뭔가 입에 착 붙는 이름이었다. 역시 네이밍 센스가 남다른 친구들이다.


나에게 ‘프로실패러’라 별명 지어준 바로 그 녀석들이었다.

















이후로 유재석, 김용만, 송은이, 김숙, 정형돈, 민경훈, GOD, 박민영, 성시경, 에이핑크, 비,

맛있는 녀석들, 스트레이 키즈, 뉴이스트, 나문희, 인순이, 이광수, 김종민 등등.


대한민국의 유명한 배우, MC, 방송인, 희극인, 가수 등이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이 찾아왔다.


연예인뿐만 아니라 소설가, 시인, 정치인, 예술인, 스포츠 스타 등

각계 각 분야의 셀럽들도 각종 영상이나 인터뷰 촬영을 위해 찾아왔다.






영화, TV 드라마, 웹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유튜브 콘텐츠, 광고 등 많은 콘텐츠들이 ‘루프탑 00하루’에서 촬영됐다.


넷플릭스의 한국 첫 자체 제작 프로그램이었던 <범인은 바로 너>라는 프로그램도 촬영을 왔다.




한국문화 공유 플랫폼을 끝내 포기하지 못하고,

그걸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자 사무실로 만든 '루프탑 00하루'는


생뚱맞게도 ‘촬영 스튜디오’에 매우 제격이었던 것이다.


따로 홍보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었다. 한번 방송가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자 여러 제작진에게 계속 대관 요청이 들어왔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장사가 잘 되고 있는 셈이었다.


오픈한 이래로 이후 3년간 큰 탈 없이 꾸준히 영업이 잘 됐다.


그렇게 ‘루프탑 00하루’는 방송에 단골로 나오는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집이 되었다.


어느새 30대 중반이 된 나는, 그 달콤한 성공에 취해 허공 위에 붕 뜬 것 같이 살았다.

그렇게 3년이 지나갔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업의 성공은 또다시 실패를 맞이해야 했다.



그리고 2020년이 찾아왔다.


한 순간에 모든 게 물거품처럼 사라진 그 해에, 


우리는 '코로나 펜데믹'이라는 도저히 21세기 현실에서 일어날 일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최악의 악재를 맞았고,


이후 2년 간 '사회적 거리두기', '모임 인원 제한' 등으로 인해 제대로 사업을 영위할 수 없었던 나는

그간 벌었던 모든 돈을 다 까먹어가면서 간신히 버티고 또 버텨야 했다.


도무지 이 사업에서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모르겠는 그런 실패였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 잘못이 가장 컸던 실패였다.




『실패의 실력』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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