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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펭귀니 Sep 19. 2024

대화의 힘

"한의사가 전도 부쳐요?"


부산에서 경기도 집으로 온 지도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만성 통증 환자에게 거주지의 이동은 곧 새로운 주치의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행히 좋은 한의사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일주일에 세 번씩 기분 좋게 치료받고 오는 요즈음이다.


오늘은 추석 연휴 바로 뒷날이라 예약을 했음에도 평소보다 대기가 길었다.


"추석 잘 보내셨죠?"


데스크 선생님의 안부 인사에 너스레를 떨었다.


"저는 아줌마라 명절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하."


그냥 관습적인 인사 일 수도 있지만 차마 잘 지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 펭귀니님. 들어오세요."


배드에 누웠다. 옆자리 여자 환자분과 한의사 선생님의 대화를 의도치 않게 엿들었다.


들으려고 한 것이 아니라 그냥 들리니 들었을 뿐.

나는 결백하다.


"이런 걸 화병이라고 해요. 몸 여기저기가 꽉 막히셨네요."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구나.'

시 생각에 잠겼다.


내 차례가 되었다.


추석 잘 보내셨냐는 주치의 선생님의 물음에 우리나라의 명절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는 내 생각을 당차게 전했다.


어쩔 줄 모르고 웃으시는 의사 선생님이 귀여워 보였다.


"저희 집도 대가족이어서 전 부치느라 힘들었어요."


"한의사가 전도 부쳐요?"


내 말에 한참을 웃으셨다.


"그러게요. 나름 고급 인재인데. 그렇죠?"


왠지 모를 충격에 빠졌다.


'나는 양반인 건가?'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폭염에 아기 데리고 산소 다녀오느라 힘들었지만

전은 부치지 않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모양의 고충을 안고 살아가나 보다.


어차피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라면 조금 힘을 빼고 지혜롭게 상황을 풀어나가는 것. 그건 다른 어떤 누군가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오래 아프다 보니 대화를 유쾌하게 이끌어갈 수 있는 것 또한 치료하는 이의 역량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자들의 절박한 마음을 안아줄 수 있는 의사 선생님과 좋은 병원을 만난 것은 내게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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