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라는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여름휴가 시즌을 맞이하여 약 10일간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유럽에 사는 가장 큰 특권 중 하나는 유럽을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는 점이다.
벨기에는 유럽 중에서도 지리적으로 가운데에 위치해 있어, 그 이점이 더욱 크다.
이번 여름 여행에서의 목적지는 이탈리아 북부였고, 이탈리아 북부까지 가기 위해서 우리는 장차 12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한 번에 다 가기엔 생각만 해도 끔찍하고, 끊어서 이틀에 나누어 가기로 했다.
6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번째 목적지는 프랑스 동부 어딘가의 샤또.
정말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시골마을의 샤또였다. 프랑스 말로 샤또란 성이라는 뜻이다. '브리저튼'과 같은 중세 공주풍 콘텐츠를 좋아하는 내가 항상 꿈꾸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고성에서의 숙박이었는데 재미난 경험이었다. 하지만 저렴한 탓일까, 내부까지 완벽하게 관리되진 못한 숙소라 로망은 로망일 뿐, 공주가 되진 못했다.
다음날 6시간을 또다시 달려 도착한 곳은 밀라노 근처의 가족운영 호텔.
밀라노를 들러 구경을 하고 도착했던 터라,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저녁도 못 먹어 배가 고파 근처 식당을 물어보자, 호텔에서 운영하는 피자집이 바로 근처에 있다고 했다. 자기가 곧 체크인을 도와주고 갈 테니 기다리라고.. 피자집에는 그녀의 가족인듯한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 나누고 있었고, 이번 이태리 여행 중 정말 가장 맛있는 피자와 맥주를 먹은 날이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니 사실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는데, 또 많이 다니다 보면 거기서 거기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나는 뭔가 그 숙소만이 가진 매력을 찾는 걸 즐겨하는 듯하다. 특히 이번 여행은 다채로운 숙소들을 예약해서 가게 되었는데,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나에게는 숙소가 주는 느낌이 큰 것 같다.
세 번째는 베로나.
베로나는 이태리 북부의 한 도시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베네치아와 밀라노 사이쯤에 위치한 도시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도시. 그것만으로도 로맨틱한데, 이곳은 여름엔 오페라 페스티벌이 있어 아레나(로마의 콜로세움의 작은 축소판)에서 야외 오페라 공연이 진행된다. 아직도 그날의 공연을 생각하면 정말 머리까지 소름 돋았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네 번째는 요즘 핫한 이탈리아 알프스를 볼 수 있는 돌로미티.
정말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이 번쩍 뜨인다! 다들 돌로미티, 돌로미티 하길래. 대체 뭐가 있길래 저길 저렇게 말하나 싶어서 선택한 코스인데, 확실히 자연의 아름다움은 인간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이상의 아름다움이 있다.
잊고 싶지 않아서 간단히 정리했는데, 결국엔 이 아름다움과 소름을 맘껏 느끼고 집에 딱 들어오는 순간!
와... 우리 집이 이렇게 좋았나 싶다. 이곳, 저곳 숙소를 옮겨 다니면서 '여기는 정말 좋다~'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에 들어오니 이리 쾌적하고 좋을 수가!! 잊고 있었던 내 집의 소중함.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느끼는 집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은 아무래도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인 것 같다.
잊고 지냈던 내 집. 내 공간의 소중함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것. 그것이 여행이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사를 다닐 때는 정말 탈출구가 필요해서 일 년에 한두 번씩 열심히 월급을 모아서 숨통을 트이려고 다녔던 여행이, 이제 해외에 나와 살게 되니 모든 것들이 내 삶이 되었고, 여행이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일상이 소중해지는 경험. 그것이 여행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마무리해본다.
(왼쪽부터) 돌로미티, 베로나 아레나 오페라, 프랑스 고성 숙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