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류의 고독에 대하여
2025년 6월 기준으로,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은 영주권자를 포함해 약 365만 명이다.
규모의 짐작을 위해 덧붙이자면, 한국의 부산광역시의 인구(약 324만~333만 명) 보다 많으며 내가 살던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의 인구(약 377만 명)와 비슷한 정도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닌 듯싶다.
하지만 일본에서 살다 보면 이 나라의 시스템이 '너는 결국 외국인이잖아, 가이진(外人)이잖아'라고 외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외국인 차별이나 배외주의 운운은 일단 무시하더라도 그냥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시스템 자체가 그렇다. 일본인이라면 어플에서 3분 만에 끝난다(고 광고하)는 계좌 개설이 외국인은 무조건 창구에 앉아 90분을 넘게 기다려야 하고, 퇴사 후 받는 연금의 탈퇴 일시금도 해외로 전출한 사람을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해외계좌로는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일본에서 월세를 구해 본 사람이라면 '외국 국적은 입주가 불가합니다'라는 답변을 받아본 적이 있을 것이다. 꼭 맘에 드는 집이 있어 문의를 하면 그런 메일이 돌아온다!
(사회에서 일하다 보면 이 예외적인 시스템을 만드는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알기에 그러려니 해지긴 한다. 그렇게라도 합리화해야 내 정신건강에 좋더라.)
나의 존재와 나의 행동이, 이 사회에 전제되어있지 않은 '예외'에 속할 때 느껴지는 고독.
혹은 존재가 인지됨과 동시에 거부당할 때의 고독.
위와 같은 이런저런 불평불만을 나누며 공감받을 곳이 없는 고독.
문득, 나는 한국인으로서 일본에서 이를 느꼈지만, 한국에서 사는 외국인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떠오르는 사람들의 속성을 확장해나가다 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혼자만의 고민을 안으며 '비주류의 고독'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부터 내가 써나갈 글들은 8년간의 일본 생활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느낀 고독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고독들이 나를 구원하고, 나를 현재로 이끌어주는 이야기이다.
일본어에 '아토오시(後押し)'라는 단어가 있다.
직역하면 '뒤에서 밈'이라는 뜻인데, 주저하고 있는 등을 밀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양을 상상하면 되겠다.
나의 고독이 그대들의 모든 고독을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대의 고독으로 더러 그대를 이끌 수 있도록 하는 '아토오시'가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