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에 혼자 남겨진 유학생의 고독분투
입국제한이 시작되는 2020년 3월 9일의 전날. 나는 서울에서 후쿠오카로 향하는 마지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일본에 입국했다. 아아, 내 겨울방학을 돌려내, 코로나 녀석.
수업도 없고 친구도 없는 시골 마을 벳푸에서, 뒹굴뒹굴 흘려보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나는 혼자가 고통스럽지 않다. 분명 그랬는데-.
일본 출판사 K사의 채용과정 중 작문시험에서 내가 쓴 글의 첫 문단이다.
주제는 <코로나19 속에서 깨달은 나의 일그러짐>, 제시된 세 단어를 넣어 1시간 만에 800자 분량의 에세이를 완성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이 시험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면 다소 딴 길로 새게 되니 생략하겠다.)
대학교 3학년이 되던 2020년, 코로나로 인해 하늘길이 막히고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겨울방학 동안 한국에 들어와 있던 나는 한국에서 일단 버텨볼지, 일본으로 돌아갈지 고민하던 끝에 결국 일본행을 택했다. 전년도 동아리 대표였기에 혹시나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면 내가 현지에 있어야 뭐든 하겠지, 하는 일종의 사명감 때문이었다.
그 선택의 결과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독이었다.
학교 생활은 마주 보고 있는 노트북 화면으로 듣는 수업이 전부. 학교가 있던 작은 시골 마을에 남아있는 친구는 0명. 겨우 찾은 아르바이트로부터는 해고통보를 받았으며 여행도 할 수 없었다. 일본행의 이유였던 동아리 활동도 금지당해 학교시설을 사용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다.
당시 스물둘이었던 나는 고독이라는 감정이 아직 낯설었나 보다. 가끔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찾으면, 그 기회에 친구와 둘이 살던 자취방에서 홀로 소리 없이 울었다. 어느 날은 본가에 있는 강아지가 보고 싶다며 울었고, 어느 날은 멀리 도쿄에 사는 선배가 보내준 마스크 몇 박스에 감동했다며 울었다.
그렇게 고독에 휩쓸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혐오스러워져, 뭐든 생산적인 일을 찾다가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던 블로그에 들어가 봤다. 당시 나의 블로그는 대학교 합격 발표 후 쓴 합격수기와 입학식날에 쓴 글을 마지막으로 멈춰있었다. 중학교도 고등학교도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해 '합격'에 목말라있던 터라 결과 발표 후 신나서 쓴 것으로 기억한다. 문단 구분도 없이 두서없이 써 내려간 대학 합격수기글에는 여러 댓글들이 몰려와있었다. 혼자 준비하느라 막막했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있는가 하면, 어디 물어볼 곳이 없다며 늘어놓은 질문도 있었다.
그런 댓글들을 읽으니, 그리고 답댓글을 생각하고 있으니 내가 그 질문들을 안고 있던 시절이 떠올랐다.
반에서 홀로 유학을 준비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학년이 올라가면 담임선생님에게 내가 가고자 하는 대학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이런 대학에 가고 싶은데 이런저런 성적과 대비가 필요하다. 그러니 이런 공부를 하고 있겠다. 같은 반 친구들이 모의고사를 대비해 자습하는 동안, 나는 홀로 교실 밖에 서서 영어 면접을 준비했었다. 댓글들을 읽고 있자니 그 복도의 서늘함이 기억을 거슬러왔다.
그렇게 지금 그 서늘한 고독 속에서 분투하고 있을 후배들을 위해 넘치던 시간을 쓰기로 했다. 뒹굴뒹굴 흘려보내는 나날들을 고쳐 앉아, 핸드폰 카메라를 앞에 두고 말하기 시작했다.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서툴게 편집한 영상을 올려나갔다.
영상들을 올리던 유튜브 채널은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하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를 시작한 덕분에 입시생 시절부터 즐겨보던 구독자 몇만 명을 보유한 선배의 유튜브에 출연하고, 대학의 한국사무소에서 주최하는 입시설명회에 재학생으로서 참여할 기회를 얻었으며, 이 경험은 (비록 최종 합격은 못했지만) 소비자로서 콘텐츠를 즐기던 출판사의 채용시험에 쓸 글감이 되어주었다. 일본인을 제치고 일본어로 쓴 작문시험에서 합격했다는 무용담을 얻었고, 그 글을 쓰면서 느낀 쾌감과 재미가 오늘날 내가 이 글을 쓰고 있게 한다.
그날의 고독이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
나의 작문은 이렇게 끝이 난다.
그것은 완전히 나와 분리된 ‘괴리’가 아닌, 나 자신과 연결되어 있지만 때때로 조금씩 굽어진, 부드러운 일그러짐이었다. 어차피 일그러짐뿐인 인생이라면, 내가 만들어낸 일그러짐 속에서 살아가면 되는 거야.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일그러짐이라면 뭐든 어때.
그런 일그러짐 속에서, 세계적으로 전쟁과도 같았던 2020년은, 나에게 있어선 최고의 1년이 되었다.
고독은 나와 분리된 부(不)의 감정이 아닌 나의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나와 분명히 이어지는, 잠시 다른 모양을 띄고 있는 일그러짐.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런 나의 일그러짐을 스스로 매만져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