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키타무라가 아닌데

그럼에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이들이 있기에

by 이음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내가 건넨 인사가 상대방에게 도착하기에 앞서 상대방의 시선이 나의 신분증에 적힌 이름에 먼저 닿으면, 대부분의 경우 나는 그에게 '일본어가 서툴러 도움이 필요한 외국인'이 된다. 내가 아무리 회사에서 일본어로 자료를 몇백 장씩 작성하고, 1년 차 신입사원의 일본어를 첨삭하고 있어도 말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잠시 긴장한 얼굴을 띠다가 내가 일본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안심한 듯 대화를 이어간다.


일본에 사는 사람이라면 공감하겠지만, 정확한 본명이 필요하지 않은 순간에는 대충 가명으로 둘러대며 이름을 대곤 한다. 정말 가끔 있는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받는 차별을 피하기 위함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일본인들이 아는 범위 안에 있는 이름을 대는 것이 의사소통하기 편하다. 내가 즐겨 쓰던 이름은 '키타무라(北村/キタムラ)'이다. 본명인 '키무'와 가까우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일행에 일본인이 있는 날의 식당 예약의 경우에는 그분의 이름을 빌리기도 한다.


외국인의 이름은 그 모양에서부터 눈에 띈다. 신분증에는 영문으로 이름이 적혀있으며, 아르바이트하면서 가슴팍에 다는 명찰에는 일본인이 보통 한자를 쓰는 것과는 다르게 가타카나(カタカナ)로 적는다. 가타카나는 일본의 표음문자 중 하나로, 일반적으로 쓰는 히라가나(ひらがな)와 다르게 주로 외래어나 의성어/의태어를 쓸 때 사용한다. 그렇게 배워왔기에, 일본어에선 외래어에 해당하는 나의 이름도 자연스럽게 가타카나로 변환하며 써왔다. 회사에 입사한 지 반년 정도 지난 어느 날까지는.


어느 날 회의록에 익숙하지만 낯선 문자의 조합이 적혀있었다. 평소라면 ヒョン(현)이라고 가타카나로 적혀있을 내 이름이 ひょん이라고 히라가나로 적혀있었다. ('현'은 내 본명의 일부라 별명 느낌으로 이름대신 쓰였다)


"そっちのヒョンなんだ.笑 (그 '현'으로 쓴다고?ㅋㅋㅋ)"

같은 자리에 있던 사수가 마침 내가 생각한 그대로를 입으로 뱉어주었다. 그 '현'을 쓴 장본인은 "변환하기 귀찮잖아요ㅋㅋㅋ"라며 웃어넘겼다. 그 이후로는 원래부터 그랬던 듯 내 이름을 써야 하는 곳에서 ヒョン이 아닌 ひょん이 쓰이는 경우가 많아졌다. 히라가나 ひょん의 모양이 썩 맘에 들지 않았던 나도 어느샌가부터 ひょん이라고 쓰고 있었다.


현짱 오늘 회사 있어?
현 대응 고마워!


일상적으로는 이름에서 비롯된 경험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보니, 그리고 스스로도 의식해서 내 이름을 가타카나로 변환을 하고 있었다 보니 동료들이 내 이름을 굳이 변환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ひょん이라고 써주는 것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나를 구분 지어야 하는 외국인이 아닌 그냥 나 자신으로서 인식해 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정작 본인들은 별생각 없이 쓰고 있을 수도 있지만!)


언어에는 그 나라의 문화가 드러난다고 하듯, 나는 히라가나와 가타카나의 구별이 있는 것이 일본의 것과 외래의 것을 확연히 선을 긋고 구분하는 성격/습관이 조금이라도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혹은 그 순서가 반대이거나.

하지만 ヒョン이 ひょん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니, 언어는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한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쓰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먼저이고, 말투나 언어에는 그 마음이 묻어 나올 뿐. 간혹 논쟁거리로 보이는 '일본인은 외국인에게 반말을 쓴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반말을 해도 말하는 사람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가지고 있다면 친근한 표현으로 들리고, 그렇지 않다면 불쾌하게 들리기 나름이다.


그나저나 이런 구분이 있어 ヒョン이 아닌 ひょん으로 불리는 특별함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도 아이러니하긴 하다. 여하튼 언어가 범상치 않은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소통의 수단으로써 사용되는 것과 동시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까.

(숨은 ひょん찾기)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