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결혼식에서 사물놀이를 연주해 달라고요?

비주류가 빛나는 법... 아니, 굳이 '빛나'야만 할까?

by 이음

케이팝 댄스 동아리가 부러웠다.

케이팝이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한, 저기는 사람이 부족해서 폐부가 될 걱정은 없겠지. 누가 일본 대학까지 와서 한국인도 잘 모르는 사물놀이를 하려고 하겠어. 케이팝 동아리에서 다른 멤버 구성으로 몇 곡씩 공연을 하고 있을 때, 내가 속한 사물놀이 동아리는 매년 한 공연에 필요한 최소인원 4명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케이팝이야 여러 번의 한류로 이미 유명했고, 요즘엔 '케데헌'의 인기에 힘입어 외국인들이 국립중앙박물관까지 오픈런을 하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사물놀이 같은 국악은 소개하려면 긴 설명이 필요했다. 일본인들에게는 '한국의 전통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이고요, 일본의 와다이코(和太鼓)랑 비슷한 거예요. '라는 고정 문구로 소개하는데 전달된 듯싶다가도 아닌 것 같기도 하고. 한국인조차 사물놀이와 풍물의 차이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일본인이 ‘결혼식 축가로 사물놀이’를 의뢰했을 때는 의문이 앞섰다.


도대체 왜….?

결혼하는 당사자분들은 사물놀이와 연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동아리 선배의 지인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살면서 몇 번 없는 자리에서 다른 나라의 전통 음악을 듣고 싶다니.


일본에서는 축가에 해당하는 단어가 余興(요쿄-), 한국 한자 음대로 쓰면 여흥이다.

한국에서는 축가는 말 그대로 '축하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이다 보니 메시지성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일본은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한다. 일본 결혼식은 다소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하는 본식과 캐주얼하고 파티 같은 분위기인 피로연으로 나누어지는데, 여흥은 보통 피로연의 콘텐츠 중 하나로 진행된다.

딱딱한 분위기였던 본식과, 캐주얼한 분위기인 피로연 사이에서 게스트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흥을 돋우는 목적으로 무대를 준비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물놀이나 풍물은 여흥에 꽤나 어울리는 음악인 것 같기도 하다.

사물놀이와 풍물은 관객과 함께하는 음악이다. 사물놀이는 퍼포먼스용, 무대용으로 현대에 들어 만든 음악이다 보니 이 특성이 좀 덜 하긴 하지만, 풍물의 경우에는 항상 마지막에 관객과 함께 연주하고 춤추는 부분이 있다. 악기를 다룰 줄 알든 모르든, 그저 다 함께 음악을 즐기며 화합하는 것이다.


사물놀이와 일본 결혼식. 처음 들으면 다소 이질적으로 보이는 조합이긴 하지만 목적을 두고 생각하면 사물놀이는 오히려 일본의 와다이코보다도 일본 결혼식에 어울리는 듯싶다. (와다이코는 사물놀이와 악기 구성이 비슷하지만 박력 있고 무게감 있는 느낌의 음악이다. 궁금하다면 유튜브에 '和太鼓'로 검색!)

실제로 참가자들의 반응도 좋았는지, 그 판을 벌려놓은(?) 선배가 전화기 너머에서 참가자들의 감상을 들려주던 들뜬 목소리가 생생하다.


호화로운 고급 호텔에서 울려 퍼지는 투박한 전통악기의 소리처럼, 겉보기엔 이질적이고 의외이지만 실제로 맞춰보니 딱 들어맞다 못해 좋은 시너지 효과를 부르는 조합도 있는 것이다.

비주류의 살 길은 우리가 빛날 수 있는 의외의 장소를 찾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물놀이는 그렇게 쉬운 취미는 아니긴 하다.

그냥 두드리면 되는 거 아니야? 싶은 북도 기초연습만 몇 개월이 걸리며 꽹과리는 악기를 잡는 데만 꽤나 오랜 시간을 들여서야 익숙해진다. 풀버전으로 약 30분에 달하는 연주를 하다 보면 손에 물집도 잡히고 양반다리를 한 다리는 저려온다. 그럼에도 왜 사물놀이를 하느냐.

스스로도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을 때, 극장에서 만나 '이거구나!'싶었던 대답이 있다.


우리가 진다고, 혹은 이긴다고 해서 그 누구도 죽지 않으며 살아나지도 않는다.
악이 세상을 지배하지도, 세상이 멸망하지도 않는다.
거대한 세상을 누비는 것도 아닌,
그저 9 ×18미터의 사각 안에서 공을 떨어트리지 않으려고 필사적일 뿐.


배구 애니메니션 <하이큐-!!>의 극장판 속 대사이다.

정작 배구에는 큰 열정을 보이지 않고 게임을 좋아하는 이 대사의 주인공(켄마)은, 지칠 대로 지친 경기의 막바지에 공을 기다리며 이렇게 독백한다. 그렇게 토스한 공은 손에 묻은 땀에 미끄러지고 팀은 패배. 그러나 마지막에는 개운한 듯 '즐거워...'라며 장면이 마무리된다. (이후로 이 캐릭터가 말한 '나에게 배구를 알려줘서 고마워'라는 대사에서 나는 흐르려던 눈물을 간신히 참았다. 참고로 내 최애는 그 배구를 알려준 친구이다.)


내가 사물놀이를 마스터한다고 해서 사물놀이가 케이팝처럼 유명해지는 일은 아마도 없다. 세계보다 한참 작은 규모인 대학교 안에서조차, 우리를 통해 전교생이 사물놀이를 알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긍정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내가 사물놀이에 몰두하고, 부족한 부원에 고민하며, 우리가 그 자리에 어울릴까 의심하면서 꽹과리를 들고 무대로 들어서던 그 순간들 동안, 아무튼 나는 필사적이었다. 그리고 즐거웠다. 그거면 된 거 아닌가 싶다.

모두가 알고 인정하는 존재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그 필사적임을 내가 알고 함께한 네가 알면 그만이다. 아니, 그걸로 충분하다.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면, 스스로라도 나라는 등장인물의 스핀오프를 찍는 마음으로 이 작품을 꾸려야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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