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케(ボケ) 없이는 츳코미(ツッコミ)도 없는 법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화면 너머로 목소리들이 쏟아졌다. 열 명 가까운 지원자들이 저마다 말하려고 달려드는 가운데, 나는 끝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잠시라도 내 영상 테두리에 발언자임을 알리는 빛이 반짝이도록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치는 것이 한계였다.
내향적인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나 혼자 일본어가 모국어가 아니라서일까.
둘 다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썩 유쾌하진 않았다.
본 채용이 아니라 여름방학 인턴이었어서 다행이었지...
그나저나 앞으로 이런 그룹면접을 몇 번이나 계속해야 하는 걸까.
그날 이후로 나는 그룹 면접 공포증이 생겼다. 서류 심사를 통과해도 그다음 단계가 그룹 면접이면 참가일정을 넣지 않고 도망쳤다.
그렇게 여름과 가을이 지나 어느덧 대학교 4학년이 되는 해 3월 즈음이 되었다.
나는 한 기업의 채용 과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만 통과하면 최종 면접을 보러 갈 수 있는 타이밍에 이 그룹 면접과 또 맞닥뜨렸다.
무섭긴 했지만 아무래도 내정에 고픈 취활생이었다 보니, '다음이 최종면접'에 유혹당해 공포의 그룹면접에 또 참여하게 되었다.
온라인 회의실에 들어가니, 지난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생각보다 캐주얼하고 오손도손한 느낌. 내가 있었던 회차에는 학생이 총 10명이 채 안 되는 정도였고, 그룹으로 나누니 한 그룹엔 나를 포함해 세 명이 같은 그룹이었다.
그룹 면접에서는 '즐거운 회사를 만들기 위한 방법'이라는 주제로 각 그룹끼리 의논하고, 끝나고 나선 모두가 한 방에 모여 그룹 별로 생각한 내용을 발표했다.
그날의 면접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내가 기억을 미화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와 같은 그룹이 된 두 지원자 중 한 명은 자연스럽게 아이디어 정리를 위해 파워포인트를 켰고, 나머지 한 명은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했다. 나도 자연스럽게 스톱워치를 켜고 시간을 재기 시작했다. 미리 그런 역할을 정해뒀던 듯 움직였다. 이윽고 이런저런 아이디어가 하나둘씩 쌓이고, 그 안에서 적절한 아이디어를 선별하고 깎아내 발표를 구성해 나갔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고, 비록 서로의 얼굴을 화면 너머로 본 정도의 사이였지만 손발이 척척 맞았다. 면접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정말 좋은 사회인 전우가 되지 않았을까. 잘 지내니 전우들아...
그렇게 발표가 끝나고, 사원들의 피드백이 이어졌다.
우리 팀은 꽤나 좋은 평가를 받았다.
사원들은 그룹으로 나누어진 회의실을 돌아다니며 의논 과정도 봐왔다고 했었는데, 한 사원이 내가 했던 발언을 예로 들며 '실제로 사원들끼리 의논했을 때 나왔던 의견, 발언을 그대로 해서 놀랐다'라고 했다.
솔직히 그날 내가 한 발언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무튼 아이디어를 막 끄집어내는 단계에선 나는 20퍼센트도 발언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의 역할은 주로 끄집어낸 의견 중 발전시킬 수 있을 아이디어를 다듬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 말 중 하나가 사원의 인상에 남았나 보다.
일본에는 오와라이(お笑い), '만담'이라는 개그 포맷이 있다. '보케'를 담당하는 사람이 터무니없는 말을 늘어놓고, 이에 '츳코미'담당이 태클을 건다. 예를 들자면, 짱구가 "다녀오셨어요!" 하면 엄마가 "'다녀왔습니다'겠지!" 하고 받아치는 그 구도다.
보케 없이 츳코미는 존재할 수 없고, 츳코미 없이 '오와라이'는 완성되지 않는다.
내가 첫 그룹 면접에서 한마디도 못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내 성격 탓도 일본어 실력 탓도 아닌 것 같다.
그곳엔, 그저 내 자리가 없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리 혹은 역할이랄 것이 존재하지도 않았다. 모두가 나처럼 이제 막 취업활동을 시작한 취활생들이었고, 그들 나름대로 자기를 주장하려 필사적이었을 뿐이겠지.
두 번째 그룹 면접에서 나는 나에게 맞는 역할을 찾았고, 각자 다른 역할을 지니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해 주는 그룹원들을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기업의 최종 면접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결국 최종에서는 떨어졌지만)
사회에서 내 밥그릇 챙기려고 발버둥 치다 보면 나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약자로만 느껴진다. 뭐든 필사적으로 해야 할 것만 같고, 아무 말이든 해야 할 것 같다.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 모두가 자기 할 말만 했던 그날의 그룹면접처럼.
그런 조직과 사회를 겪으며 이리저리 도망치고 떠돌다 보면, 내가 나대로 있는 것이 나의 역할이며 그 역할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우리가 단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눈 적이 없더라도,
그저 모니터 너머로 얼굴을 마주했을 뿐인 사이였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