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메뉴

6장. 김치찌개의 비밀

by 윤슬

두 번째 주 수요일. 민희는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났다. 오늘 메뉴는 김치찌개였다.

가장 평범하지만 가장 까다로운 음식이기도 했다.

김치의 상태, 고기의 양, 국물의 농도, 모든 것이 미묘하게 맛을 좌우했다.


주방에 도착하니 정희 씨가 이미 와 있었다.


"오늘은 제가 김치찌개 끓여볼까요?" 민희가 말했다.


"그러세요. 이제 거주인들 입맛도 많이 파악하셨을 텐데."


민희는 냉장고에서 김치를 꺼냈다. 민수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였다. 신맛이 적당히 올라와서 찌개용으로 딱 좋았다.


김치를 썰고, 돼지고기를 준비하고, 양파와 두부를 자르기 시작했다. 손에 익은 동작이었다.


"그런데 선생님." 정희 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준호 김치찌개는 따로 해주셔야 해요."


"아, 맞다. 준호 씨는 돼지고기 식감을 싫어하시죠."


"네, 그리고 한 가지 더... 준호는 김치찌개 국물도 너무 빨갛지 않게 해주셔야 해요."


"빨갛지 않게요?"


"네, 색깔에 민감하거든요. 너무 빨간 음식은 거부해요."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하나 배웠다. 준호에게는 시각도 중요한 요소였다.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김치를 먼저 볶고, 물을 붓고, 돼지고기를 넣었다. 구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냄새 좋다!"


민수가 어김없이 나타났다.


"민수야, 오늘은 김치찌개야."


"와! 저 김치찌개 엄청 좋아해요! 우리 엄마 김치로 만든 거죠?"


"응, 맞아. 네 엄마가 담가주신 김치로 만들었어."


민수의 얼굴이 더욱 환해졌다.


"우리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어요!"


그때 거실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우리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지!"


혜진이었다. 혜진도 주방 쪽으로 왔다.


"혜진 언니 엄마 김치는 달아요. 우리 엄마 김치는 딱 알맞아요!"


"뭐? 우리 엄마 김치가 달다고?"


두 사람이 농담처럼 다투기 시작했다. 민희는 웃음이 났다.


"자, 자, 둘 다 맛있어. 그래서 번갈아가며 쓰는 거잖아."


"선생님, 오늘은 누구 엄마 김치예요?" 혜진이 물었다.


"오늘은 민수 어머니 김치야."


"아, 그럼 다음엔 우리 엄마 김치로 해주세요!"


"그럼 당연하지."


두 사람이 만족스럽게 돌아갔다.


정희 씨가 웃으며 말했다.


"저렇게 김치 자랑하는 게 귀엽죠? 자기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가족들이 담가준 김치를 쓴다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아요."


"네, 여기만의 특별함이에요. 각 가정의 맛이 여기 모여 있는 거죠."


김치찌개가 보글보글 끓었다. 간을 보니 조금 심심했다. 소금을 약간 더 넣었다.


"준호 것은 따로 끓여야겠어요."


민희는 작은 냄비에 따로 김치찌개를 끓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돼지고기 대신 참치를 넣었다. 그리고 고춧가루를 적게 넣어서 빨갛지 않게 만들었다.


"이 정도면 괜찮을까요?"


정희 씨가 냄비를 들여다봤다.


"완벽해요. 준호가 좋아할 것 같아요."


아침식사 시간. 거주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민수가 제일 먼저 김치찌개를 떠서 먹었다.


"맛있어요! 역시 우리 엄마 김치!"


혜진도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음... 맛있긴 한데, 우리 엄마 김치만큼은 아니에요."


"혜진아,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정희 씨가 타이르듯 말했다.


"농담이에요! 정말 맛있어요!"


다른 거주인들도 맛있게 먹었다. 수정은 여전히 자신만의 순서로, 진우는 한 가지씩 먹었다.


준호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앞에 놓인 김치찌개를 봤다. 다른 사람들 것보다 색이 연했다.


준호가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그리고... 또 한 숟가락 먹었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였다.


"준호야, 맛있어?" 정희 씨가 물었다.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희를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민희는 가슴이 따뜻해졌다. 준호의 미소를 보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영미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이거..."


영미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작은 메모지였다.


'김치찌개 맛있었어요. 우리 집 맛 같아요. 고마워요.'


영미가 직접 쓴 글씨였다. 삐뚤빼뚤하지만 정성스러웠다.


"영미 씨... 이거 직접 쓰신 거예요?"


영미가 수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 영미 씨. 소중하게 간직할게요."


영미가 환하게 웃었다.


점심 준비를 하면서 정희 씨가 말했다.


"선생님, 김치찌개의 비밀을 아세요?"


"비밀이요?"


"김치찌개는 단순해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음식이에요. 같은 재료로 만들어도 만드는 사람마다 맛이 다르거든요."


"그건 알아요. 손맛이라는 거죠?"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손맛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뭔데요?"


"마음이에요."


민희가 정희 씨를 바라봤다.


"음식을 만들 때 누구를 생각하며 만드는가. 그게 제일 중요해요."


"누구를 생각하며..."


"네, 오늘 선생님이 김치찌개를 끓이면서 준호를 생각하셨잖아요. 색깔을 연하게 하고, 돼지고기 대신 참치를 넣고. 그게 바로 마음이에요."


민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민수 어머니의 김치를 쓰면서 민수를 생각하셨죠. 혜진이가 섭섭해할까 봐 다음엔 혜진 어머니 김치를 쓰겠다고 약속하셨고요."


정희 씨가 계속 말했다.


"그게 바로 이곳 김치찌개의 비밀이에요. 레시피가 아니라 마음이죠."


민희는 깊이 공감했다. 20년 동안 영양사로 일하면서 배우지 못한 것을 여기서 배우고 있었다.


오후에 민수 어머니가 깜짝 방문하셨다.


"어머님, 어떻게 오셨어요?"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 잠깐 들렀어요. 우리 민수 잘 지내죠?"


"네, 오늘도 엄마 김치로 만든 김치찌개 맛있게 먹었어요."


"그래요? 김치가 잘 익었나 봐요."


민수 어머니가 민희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이게 뭐예요?"


"새로 담근 김치예요. 이번엔 조금 더 맛있게 담갔어요."


"어머님, 이렇게까지 하시지 않아도 되는데..."


"아니에요. 우리 민수가 김치찌개를 좋아하는데, 맛있는 김치로 해주고 싶어서요."


민수 어머니의 눈가가 촉촉했다.


"선생님, 우리 민수 잘 부탁드려요. 여기 오고 나서 정말 행복해 보여요."


"제가 오히려 민수한테 많이 배워요."


"아이가 아침마다 '오늘은 선생님이 뭐 해주실까' 하면서 기대한대요."


민희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녁에는 혜진 어머니의 김치로 김치찌개를 끓였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혜진이 얼마나 기뻐하던지.


"선생님! 오늘은 우리 엄마 김치죠?"


"응, 맞아. 약속 지켰지?"


"와! 정말 최고예요!"


혜진은 김치찌개를 세 그릇이나 먹었다.


"우리 엄마 김치가 제일 맛있죠?"


"응, 정말 맛있어."


민희의 대답에 혜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민희는 생각했다. 김치찌개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각 가정의 손맛, 어머니의 사랑, 거주인들의 기쁨.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였다.


집에 도착해서 냉장고를 열었다. 자신이 담근 김치가 있었다. 딸들을 위해 담근 김치였다.


"내일은 우리 집 김치찌개를 해볼까?"


민희는 작은 다짐을 했다. 거주인들에게 자신의 집 맛도 보여주고 싶었다.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여섯째 날의 깨달음: 김치찌개의 비밀은 레시피가 아니라 마음이다. 누구를 위해 만드는가, 어떤 마음을 담는가. 그것이 음식의 맛을 결정한다. 오늘 나는 여러 어머니들의 사랑을 김치를 통해 느꼈다. 그리고 그 사랑을 거주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는 것을 알았다.'


민희는 따뜻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내일도 맛있는 김치찌개를 끓여주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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