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엄마의 손맛
두 번째 달 셋째 주 목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가을비는 쌀쌀했고, 거주인들은 평소보다 조용했다.
민희는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고 싶었다. 이런 날에는 뜨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 좋을 것 같았다.
"오늘은 뭐 할까요?" 정희 씨가 물었다.
"칼국수 어때요? 비 오는 날엔 칼국수가 좋잖아요."
"좋아요. 거주인 분들도 좋아하실 거예요."
칼국수 준비를 시작했다. 멸치와 다시마로 육수를 우리고, 야채를 썰고, 면을 준비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 음식 냄새를 맡으면 제일 먼저 달려오던 민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민수가 안 보이네요?" 민희가 물었다.
"아, 민수가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아서 방에 있어요." 유미가 말했다.
"아프신가요?"
"몸이 아픈 건 아니고...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아요."
민희는 걱정이 됐다. 늘 밝던 민수가 방에만 있다니.
아침식사가 시작됐다. 민수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민수 오빠 왜 안 와요?" 혜진이 물었다.
"오늘은 좀 쉬고 싶대." 정희 씨가 대답했다.
식사 후, 민희는 민수의 방으로 갔다. 문을 노크했다.
"민수야, 나 민희 선생님이야."
"..."
대답이 없었다.
"들어가도 돼?"
"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민희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민수는 침대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이 빨개져 있었다.
"민수야, 울었어?"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울었어?"
"엄마 생각나서요..."
민희는 민수 옆에 앉았다.
"엄마 보고 싶어?"
"네... 오늘... 엄마 생일이에요..."
민희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민수는 엄마의 생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엄마한테 전화했어?"
"아침에 했어요... 근데... 엄마가 아프대요... 병원에 있대요..."
민수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떨어졌다.
"그래서 오늘 못 오신대요... 제가 엄마 생일인데 못 가요..."
민희는 민수의 손을 잡았다.
"민수야, 엄마가 많이 아프셔?"
"아니요... 감기래요... 근데 저는 걱정돼요..."
"괜찮아. 감기는 금방 나아."
"저... 엄마한테 뭐 해주고 싶어요... 생일인데..."
민수가 민희를 바라봤다.
"선생님... 제가 엄마한테 뭐 해줄 수 있을까요?"
민희는 생각했다. 민수가 엄마에게 해줄 수 있는 것. 그리고 떠오르는 게 있었다.
"민수야,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엄마요? 음... 미역국이요! 엄마가 미역국 좋아해요!"
"그럼 우리 엄마를 위해 미역국 만들까?"
민수의 눈이 반짝였다.
"제가요? 제가 만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선생님이 도와줄게."
민수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정말요? 우와! 저 엄마한테 미역국 만들어주고 싶어요!"
주방으로 내려갔다. 정희 씨와 유미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좋은 생각이에요." 정희 씨가 웃었다.
"민수한테 큰 의미가 될 것 같아요." 유미도 동의했다.
민수와 함께 미역국 만들기를 시작했다.
"먼저 미역을 물에 불려야 해." 민희가 설명했다.
"이렇게요?" 민수가 미역을 조심스럽게 물에 넣었다.
"응, 잘했어. 이제 10분 정도 기다려야 해."
기다리는 동안 민수는 계속 웃었다.
"엄마가 좋아하실 것 같아요!"
"당연하지. 민수가 만든 건데."
미역이 불자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이제 참기름을 두르고 미역을 볶아야 해."
민수가 조심스럽게 참기름을 부었다. 그리고 미역을 넣었다.
"지글지글 소리 나요!"
"응, 잘하고 있어. 이제 볶으면서 저어줘."
민수는 집중해서 미역을 볶았다. 혀를 살짝 내밀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 정도면 됐어. 이제 물을 부어."
물을 붓자 구수한 냄새가 올라왔다.
"우와, 냄새 좋다!"
"마지막으로 소고기를 넣고 간을 맞추면 돼."
민수가 소고기를 넣고, 민희가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맞췄다.
"자, 이제 완성이야!"
민수가 국을 한 숟가락 떠서 맛봤다.
"맛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민수가 잘 만들었으니까."
민수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거 엄마한테 가져다 드려도 돼요?"
"당연하지. 우리 예쁘게 포장해서 보내자."
민희는 보온 용기에 미역국을 담았다. 그리고 민수와 함께 작은 편지도 썼다.
'엄마, 생일 축하해요. 제가 만든 미역국이에요. 맛있게 드세요. 빨리 나으세요. 사랑해요. - 민수'
민수가 정성스럽게 편지를 썼다. 글씨가 삐뚤빼뚤했지만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선생님, 이거 어떻게 보내요?"
"유미 선생님이 병원에 가져다주실 거야."
유미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오후에 병원 갈 일이 있어서 그때 전해줄게."
"정말요? 고마워요!"
민수가 유미에게 꾸벅 인사했다.
오후, 유미가 병원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민수를 불렀다.
"민수야, 엄마한테 전해줬어."
"엄마가 뭐래요?"
"엄마가 우시더라. 너무 감동받으셨대."
유미가 휴대폰을 꺼냈다. 민수 엄마가 보낸 사진이 있었다. 빈 미역국그릇을 들고 있는 사진이었다.
"우리 민수가 만든 미역국, 세상에서 제일 맛있었어요. 고마워, 아들. 사랑해."
민수가 사진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가... 다 먹었어요..."
"응, 엄마가 정말 맛있게 드셨대."
민수는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저녁 식사 시간, 민수는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늘 제가 엄마한테 미역국 만들어줬어요!" 민수가 자랑했다.
"와, 진짜?" 혜진이 놀랐다.
"응! 선생님이랑 같이 만들었어요!"
"민수 오빠 대단해요!"
다른 거주인들도 민수를 칭찬했다. 민수는 하루 종일 웃었다.
며칠 후, 민수 엄마가 회복해서 참사랑의 집을 방문했다.
"민수야!" 엄마가 민수를 꼭 안았다.
"엄마! 이제 괜찮아요?"
"응, 다 나았어. 네 덕분이야."
민수 엄마가 민희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민수가 저한테 미역국을 만들어줄 줄은..."
민수 엄마의 눈가가 촉촉했다.
"민수가 혼자 다 만들었어요. 저는 옆에서 조금 도와줬을 뿐이에요."
"아니에요. 선생님이 민수한테 기회를 주신 거예요."
민수 엄마가 민희의 손을 꼭 잡았다.
"그 미역국을 먹으면서 깨달았어요. 우리 민수가 이렇게 컸구나. 이제 엄마한테 뭔가를 해줄 수 있을 만큼 컸구나..."
"민수는 원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이예요."
"선생님이 그걸 끌어내 주신 거예요."
점심시간, 민수 엄마와 함께 식사를 했다. 오늘 메뉴는 된장찌개였다.
"엄마, 이거 제가 도와서 만든 거예요!" 민수가 자랑했다.
"정말? 우리 민수가?"
"네! 이제 저 요리할 줄 알아요!"
민수 엄마가 한 숟가락 떠서 먹었다.
"맛있다. 엄마 손맛 같아."
민수가 환하게 웃었다.
"엄마 손맛이요? 정말요?"
"응, 정말이야."
민희는 그 대화를 들으며 깨달았다. 엄마의 손맛은 단순히 맛이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그리고 민수가 엄마에게 전해준 것도 바로 그 사랑이었다.
민수 엄마가 돌아가기 전에 민희에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 민수 잘 부탁드려요."
"제가 오히려 민수한테 많이 배워요."
"민수가 요즘 정말 행복해 보여요. 전화할 때마다 선생님 이야기를 해요."
민희의 가슴이 따뜻해졌다.
"저도 민수가 있어서 행복해요."
그날 밤 일기에 썼다.
'열두째 날의 깨달음: 엄마의 손맛은 레시피가 아니라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배울 수 있고, 전달할 수 있다. 민수가 엄마에게 미역국을 만들어준 것은 단순히 음식을 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은 사랑을 돌려준 것이다. 음식을 통해 사랑은 순환하고, 그 순환이 가족을 만든다.'
민희는 감사한 마음으로 잠들었다. 민수의 환한 웃음, 민수 엄마의 눈물, 그리고 빈 미역국그릇. 그 모든 것이 사랑의 언어였다.
다음날 아침, 민수가 또 주방에 나타났다.
"선생님, 오늘은 뭐 만들어요?"
"오늘은 계란찜이야."
"저도 도와줄게요!"
민수는 이제 주방의 일원이 되었다. 그리고 그가 만드는 모든 음식에는 엄마에게 배운 사랑이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