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김밥이 내일의 추억이 된다
어린 시절, 소풍날이면 집 안은 늘 분주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부엌에서는 참기름 냄새와 깨소금 향이 퍼졌다.
엄마는 새벽부터 일어나 김밥 재료를 준비하셨다. 달걀 지단을 부치고, 햄을 굽고, 시금치를 데치고, 단무지를 가지런히 놓았다. 김 위에 밥을 올리고 재료들을 줄 맞춰 올릴 때, 나는 그 옆에서 기다렸다가 잘라내는 첫 조각을 재빨리 먹곤 했다. 따끈한 밥과 달콤한 단무지, 고소한 계란이 어우러진 그 한입은 언제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다. 엄마는 바쁜 손길 속에서도 내 입에 김밥을 넣어 주셨고, 나는 그 맛에 행복했다.
엄마의 김밥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랑을 한 줄로 말아 놓은 것이었다.
소풍날 학교에 도착하면, 도시락 가방 속에서 풍기는 김밥 냄새가 나를 더 설레게 했다.
친구들과 돗자리를 깔고 도시락을 열 때, 나는 엄마의 김밥을 자랑스럽게 내놓았다.
“우리 엄마가 싸주신 김밥이야. 먹어볼래?”
그렇게 권하며 우쭐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송도 바닷가 솔밭에서, 바닷바람과 솔향 사이로 먹던 김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특별했다.
그때는 몰랐다. 엄마가 그 많은 재료를 준비하고,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을 쏟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나는 그저 맛있고 행복했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내가 엄마가 되었다.
어느새 ‘소풍’이라는 말은 ‘체험 학습’으로 바뀌었다.
낯설고 딱딱한 단어 같지만, 여전히 나의 하루도 그 때의 엄마처럼 일찍 시작된다.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 아이들 김밥을 싸면서 문득 어린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김밥을 자르다 옆구리가 터진 건 내 입으로,
일찍 나가야 하는 중학생 첫째 한 알, 출근하는 남편 한 알, 체험 학습 가는 막둥이도 한 알, 학교 갈 준비하는 셋째도 한 알, 1박 2일 수련회 가는 둘째도 한 알. 작은 한 입들이 온 집안을 깨우는 듯했다.
웃고 떠들며 김밥을 나누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옆구리 터진 김밥 한 조각에도 가족의 웃음이 담겨 있다.
아이들은 이제 ‘소풍’이라는 말을 잘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김밥을 한 줄 싸는 순간, 그 단어가 불러오는 두근거림과 설렘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엄마의 김밥을 먹으며 느꼈던 기쁨과 설렘을, 나는 아이들에게 건네주고 있다.
언젠가 아이들도 나처럼 기억하겠지.
고소한 냄새가 가득한 새벽, 바쁘면서도 따뜻했던 엄마의 손길, 소풍날의 들뜬 마음.
김밥은 세대를 이어주는 설렘의 상징이다.
김밥을 싸는 일은 결국, 오늘의 사랑을 내일의 기억으로 건네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이들에게 한 줄의 김밥으로 설렘을 싸서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