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어느날 경제문제로 집이 이사해야 하는 위기를 맞는다. 귀염둥이로 불리며 부모님이 모든 것을 주고 그것을 받기만 하면 되었던 낙원이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성장의 전환점에서 그녀는 내면을 상징하는 터널 속으로 들어가 무의식을 탐색한다.
터널 안 세계에서 만난 수많은 캐릭터들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모두 원래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부분들이다. 그것들은 특정 시점에 의식화되고 그때마다 그녀는 성숙해진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치히로라는 소녀는 부모가 이사를 하는 바람에 친구들과 헤어지고 전학을 해야 해서 화가 난 상태이다. 부모와 함께 승용차를 타고 새집으로 가던 중 운전을 하던 아빠가 길을 잘못 들어 수상한 터널에 다다른다. 으스스한 분위기에 겁이 나서 그냥 가고 싶지만 엄마 아빠는 구경하고 가자며 차에서 내려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따라 들어간 그 안에는 버려진 테마파크였던 듯 넓은 평원과 시냇물과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있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린 부모는 주인도 없는 식당에서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치히로는 허락도 없이 먹을 수 없다며 거절하고 밖을 구경하다가 돌아왔는데 이때 부모는 모두 돼지로 변해있었다.
겁에 질려있는 치히로에게 하쿠라는 소년이 다가와 이곳은 신들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면서 과거부터 그녀를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약속한다.
밤이 되자 800만 신령들과 괴물들이 배에서 내려 거대한 목욕탕에 휴식을 위해 들어온다.
이곳을 관장하는 유바바라는 마녀는 치히로에게서 이름을 뺏고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그곳에서 일하게 해준다. 센은 게으르게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으면 돼지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유바바의 엄포를 받고 첫 번째 임무로 더러운 오물의 신 목욕을 돕게 된다. 모두가 꺼리던 오물의 신의 내부에서 세상의 온갖 쓰레기를 빼내자 해탈한 표정을 한 강물의 신이 나타나고 센에게 신비의 경단을 선물하고 떠난다.
또한 센은 자신의 주변을 맴돌던 얼굴 없는 검은 귀신 가오나시가 밖에서 비를 맞자 안타까워서 건물 안으로 들이는데, 안으로 들어온 그는 강물의 신이 두고 간 사금을 가지고 그곳의 존재들을 유혹하고 삼키며 엄청나게 덩치를 불린다. 그러나 정작 센은 금에는 관심이 없고 유바바의 임무를 수행하다 다친 용 하쿠를 찾는 데에만 신경을 쓴다. 화가 난 가오나시는 목욕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그의 힘은 마녀 유바바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져 있었다.
센이 그에게 경단을 먹이니 가오나시는 삼켰던 존재들을 다 토해내고 다시 원래의 사이즈로 줄어들었다.
하쿠는 어릴적 치히로가 살던 고향의 개천에서 사는 용이었고 그녀가 개천에 빠지고 그녀를 구해주었을 때 그들은 이미 만난 적이 있었다. 개천은 도시 개발로 없어지고 하쿠는 할 수 없이 마녀 유바바를 위해 일하며 마법을 배우게 되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잊게 되었다.
그는 유바바의 명령으로 쌍둥이 언니 제니바로부터 신령 세계를 지배할 수 있는 도장을 훔치다가 도장에 걸려있는 저주 때문에 심각한 상해를 입게 되었다. 센이 강의 신이 준 경단을 하쿠에게 먹이고 도장을 토해내게 하지만 그의 몸은 아주 약해진 상태이다. 센은 그를 낫게 하기 위해 도장을 원래 주인인 제니바에게 돌려주고 사과하려고 그녀의 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호수 위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줄어든 가오나시와 생쥐로 변한 유바바의 아기 보도 같이 동행하여 ‘늪의 바닥 정류장’에 내린다. 제니바의 집에서 센의 정성으로 치유된 용 하쿠를 타고 둘은 유바바의 공간으로 돌아온다.
마지막 센이 치러야할 유바바의 시험은 수십마리의 돼지들에서 부모를 찾아내는 일이다.
그녀는 돼지들 중에 부모는 없다고 대답한다. 즉, 부모는 돼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시험에 통과한 센은 하쿠와 이별하고 부모와 함께 터널을 건너 현실로 돌아온다.
실로 오랜 시간이 흐른듯하다. 이전과는 다른 치히로가 되어 돌아온 것이다.
같은 주제라도 어떤 배경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갈지는 작가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현대 문명과 환경파괴 같은 문제를 비판하는 작가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도 이런 모티브가 많이 나온다.
치히로의 부모는 일본 국산차가 아닌 외제차를 타고 다니는 속물로 묘사된다. 아빠는 자신의 입으로 버블 경제를 언급하지만 분위기로 볼 때 자신이 그 덕에 돈을 번 사람같이 행동한다. 그들은 허락도 받지 않고 남의 음식을 먹어 치우는 돼지 같은 삶을 산다.
하쿠는 작은 하천의 신이었는데 무분별한 난개발로 아파트를 짓느라 하천이 없어지는 바람에 (환경 파괴) 이름을 잃고 유바바의 휘하로 들어오게 된다.
목욕탕의 화력을 담당하는 가마구치 할아버지는 손이 여섯 개인데 그것들을 쉴 새 없이 움직여서 보일러를 가동시킨다. 우리 속담의 손이 열 개라도 모자르다는 말처럼 휴식도 없는 바쁜 노동자의 삶을 보여준다.
또한 목욕탕에서 일하는 남녀 일꾼들은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남성은 개구리, 여성은 민달팽이의 모습이다. 현대의 큰 사업체에서 일하는 직장 남성과 여성이 비슷한 복장과 말투와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의 비유일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처럼 이들은 사금(돈)만 주면 누구를 위해서도 일할 수 있다. 물론 센을 도와주는 린은 예외이다. 그녀는 자신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영화 ‘아노말리사‘에 나오는 다른 사람들과 유일하게 목소리가 다른 리사와 같은 인물이다.)
강의 신이 온갖 쓰레기를 삼켜 오물의 신이 되어버린 이야기를 통해 자연에 무분별하게 버리는 쓰레기 문제도 꼬집는다.
그러나 작가가 현대 문명이나 환경파괴를 비판하기 위해 이 작품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영화는 명백히 한 소녀의 성장 이야기이다.
처음에는 이사를 해서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부모가 이기적으로 보인다. 자기들만 생각하는 돼지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러나 치히로 스스로도 자신이 얼마나 유아적인지는 알고 있다. 유바바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치히로를 ‘굼뜬 응석받이 울보’라고 부르며 힘든 일을 해내지 못하면 돼지가 된다고 한 것은 사실 치히로 스스로가 자신에 대해 내린 평가이다.
이런 인식에서 소녀의 마음의 탐구가 시작된다. 터널 안쪽은 마음의 무의식 영역이다.
자신을 무의식의 여러 요소와 잘 연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하쿠는 소녀의 ‘아니무스’라 볼 수 있다.
처음에 등장하는 센이 목욕시키는 오물의 신은 무의식 속의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더러운 생각’의 상징이라고 보인다. 내부의 쓰레기를 빼낸 후 해탈한 강의 신이 되는 것으로 보아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더러운 생각도 사실은 가치 중립적인 것으로, 나쁜 행동과 결탁하지 않는다면 중심에는 순수한 정수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강의 신이 준 선물로 하쿠도 치료하고 가오나시의 욕심도 줄일 수 있었다.
흥미로운 캐릭터인 가오나시는 물질적 욕심을 억압해서 생긴 끝없는 탐욕을 상징하는 내면의 ‘그림자’이다. 끝없이 삼키고 끝없이 커져서 나중에는 누구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커진다. 이러한 탐욕도 인간의 본성이므로 무조건 억압하면 폭발한다.오히려 인정하고 다스리는것이 현명한 일이다.
유바바와 제니바는 모습이 완전히 똑같은 쌍둥이 자매이지만 성격은 정반대이다.
무의식 전체를 관장하는 마녀 유바바는 현실적으로 세계를 잘 돌아가게 하는 유능한 마녀지만 아들인 아기 '보'로 표현되는 순수하지만 충동적이고 폭발적인 힘에 휘둘려서 다른 이들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을 강요한다. 반면 똑같은 외모의 쌍둥이 자매 제니바는 외딴 습지에서 검소한 삶을 살면서 현실 세계에 직접적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다른 등장인물들의 충동을 조절할 수 있고, 최종 판결을 할 수 있는 도장을 소유하고 있다. 아기 보도 엄마인 유바바앞에서는 제멋대로 떼를 쓰지만 제니바 앞에서는 순한 생쥐 같이 유순해진다. 이 쌍둥이 자매는 마음 전체를 관장하는 ‘자기’인데 어린 치히로에게는 아직 통합되지 못한 단계이다.
센이 유바바의 영향으로 게으르고 유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고, 제니바에게는 통찰력을 얻고, 오물의 신을 역겹게 여기지 않고 귀한 지혜를 얻으며, 그림자 캐릭터인 가오나시와 아기 보를 내치지 않고 보듬어 데리고 다니고, 아니무스인 하쿠의 등에 올라 춤추듯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모습은 앞으로 성숙한 치히로가 조화롭게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갈 것임을 보여준다.
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독립한 치히로는 더 이상 부모를 돼지로 보지 않는다. 가족이 경제적인 문제로 이사하게 된 것이 부모가 자신들만을 위해 내린 결정은 아니라고 현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아직 성인이 된 것은 아니므로 여전히 부모와 더불어 살아가겠지만, 그녀는 응석받이 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 치히로로 성장해서 현실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