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죄책감에 시달리며 수면제를 들고 먼 일본의 원시림으로 가방도 없이 편도 항공권을 끊어서 떠난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서는 과학자이지만 돈이 되는 연구소에는 오래 있지 못하고, 월급도 적고 미래가 불투명한 대학에서 연구하는, 가장으로서는 무능력한 사람이다. 연구소 시절의 외도로 아내와 멀어진 후 둘의 사이는 소원하다.
부동산업을 하며 남편 대신 생계를 책임지게 된 아내 조안은 점점 지쳐가며 술에 의존하게 된다. 둘이 서로의 탓을 하며 계속 싸우던 중, 아내는 뇌종양에 걸려 수술을 하게 되고 비로소 아서는 아내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녀와 소통하려고 노력하며 아내를 정성껏 간호한다. 그러나 아내가 회복하기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기던 중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장례식에서 밤새도록 슬프게 울던 아서는, 장례사에게 아내가 좋아하는 색이나 계절, 책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심한 남편이었다고 고백한다. 장례사는 아내의 동생들이 장례식에서 그녀에게 좋아하는 동화책을 소포로 보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 책에 대해서는 대답이 될 거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내에 대한 간단한 정보도 모를 정도로 그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병원에 있을 때 아내는 낯선 병원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나중에 남편은 완벽한 장소에서 죽었으면 좋겠다고 했었다. 절망한 아서는 죄책감에 죽을 결심을 하고 죽기에 완벽한 장소를 검색해서 ‘죽음의 숲’으로 불리는 일본의 아오키가와라숲을 찾는다. 나무가 많아 바람이 불면 마치 파도가 치는 듯한다 해서 ‘주카이’(씨 오브 트리스)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 숲에 들어가서 길을 잃은 아서는 죽으려고 수면제를 한 알씩 삼키다가 멀리서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나카무라 타쿠미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그는 나가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하고 그것을 아서가 돕다가 나중에는 길을 잃고 함께 숲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 헤맨다. 다쳤을 때 서로 구해주면서 그에게 아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그의 이야기도 듣는다. 이때 그의 아내와 딸의 이름이 ‘키이로’와 ‘후유’라는 것도 알게 된다. 숲을 헤매며 자살한 사람들의 흔적들도 많이 발견한다.
온갖 고초를 겪다가 나카무라가 다치게 되고 그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아서는 다친 남자를 눕혀놓고 자신의 코트를 덮어주며 반드시 구하러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후 계속 걷다가 간신히 구조된다.
병원에서 회복하고 그를 찾으러 다시 돌아간 장소에 그 남자는 사라지고 자신이 그에게 덮어준 코트만 남았는데 그것을 치우자 그 자리에 그가 영혼의 상징이라고 말했던 난초꽃만 피어있었다.
다시 돌아온 학교 연구실에서 일본에 살다 왔다는 학생과 대화하다가 ‘키이로’와 ‘후유’라는 단어는 일본어로 노란색과 겨울이라는 뜻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남자가 돌보지 않아 죽어간 아내는 그의 마음속 ‘아니마’의 메타포다. 주인공의 현실적 아내가 병들었다는 설정은 마음속의 여성(아니마)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심각한 병이 걸린 후에야 남성은 여성을 들여다본다. 늦게라도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대화해보지만 버려둔 세월이 길다. 위기가 계기가 되어 다시 잘해보려고 하지만, 늘 그렇듯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아내의 뇌종양 같이, 인생을 흔드는 순간이 와야 무엇이 소중한지 깨닫는다. 그러나 그런 순간은 항상 짧고 너무 늦게 온다. 인간이 착해졌다고 해서 신이 시간을 선물로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우연으로 아내의 죽음이라는 사건이 끼어든다. 죽음이라는 사건은 소통의 완전히 단절을 의미한다. 이제는 미안하다는 말을 할 기회도 없게 된 것이다. 노력한 시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알게 된 것도 별로 없다.
절망적인 상태에서 아내에 대해 죄책감에 시달리며 주인공은 숲으로 간다. 숲이란 심리학에서 무의식의 상징이다. 그러니 주인공은 사실 무의식으로 들어간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지도자 혹은 가이드로 보이는 일본인을 만나 함께 숲을 헤매며 자신과 아내에 대해 실로 많은 대화(생각)를 한다. 살아서 아내와 겪은 경험과 시간들을 대화 형식으로 끄집어내어 재구성하고 해석한다. 진심을 전하지 못하며 겉돌았던 긴 결혼 생활보다 고독한 숲 속에서의 내면의 대화를 통해 아내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녀를 이해하고 사랑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모두 죽을 운명이고 아내는 좀 일찍 간 것뿐이다. 아서도 아내 없이 살아남았지만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다. 잠깐 더 사는 것 뿐이다. 중요한 것은 사는 동안 아내의 영혼과 함께 하는 것이다.
이러한 성찰이 현실에서는 죽은 아내를 의미 있게 보낼 수 있게 해 주고, 앞으로 남은 삶을 아니마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주인공의 성숙한 인격을 만들어 주게 된다.
일본인으로 나타난 심리적 가이드는 미숙한 주인공에게 적절한 질문과 도발을 통해 깨달음을 얻도록 돕고 역할을 다하자 신비하게 사라진다.(입구의 카메라에는 그 남자가 출입한 흔적이 없었다.) 결국 일본인은 실제 인물이 아니며,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혼자서 주고받은 대화를 통해 해답을 얻었다는 의미이다.
아내에게 배달된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처럼 그는 퇴원후 숲 속의 타쿠미를 찾으러 갈 때 돌아오는 길을 잃지 않으려 조약돌을 떨어뜨리듯 노트의 종이를 찢어 구겨서 길에 표시한다. 그리고 자신의 노력(주인공의 외투)으로 살려낸 아내의 영혼(아니마)의 상징인 난초꽃을 찾아서 현실로 돌아온다. 이제 주인공은 여성성을 품은 남성으로 태어날 수 있게되었다. 영화 끝부분에서 주인공은 과거와는 달리 부드럽고 잘 웃으며 학생들에게도 친절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된다. 아내의 상징인 난초꽃도 가져다 둘이 좋아했던 바닷가에 심는다.
영화에서는 일본에서 거주한 적이 있는 학생이 우연히 알려준 것으로 나오지만, 아내가 좋아하던 색과 계절인 '노랑'과 '겨울'도 주인공이 아내와의 시간을 곰곰이 회상해서 떠오른 것일 것이다.
결국 모든 질문과 답은 자신의 마음속에 있다.
그러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혼자만의 치열한 사색의 시간이 필요하다.
한 번도 들어가 보지 않았던 원시림인 무의식 속으로, 죽기를 작정하고 들어가 탐험하면 해답을 얻고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