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사이의 마음과 대화방식은 너무도 달라서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실제의 의미가 다를 때가 많다. 두 사람의 관계라고 해도 두 사람의 무의식까지 포함하면 네 사람의 관계라고 볼 수 있고 이런 메커니즘을 모르는 경우 관계는 삐걱거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관계는 자신과 상대방의 무의식까지 이해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
왕가위 감독이 두 사람과 그들의 무의식을 인물로 아름답게 구체화한 사랑 이야기인, 화양연화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홍콩의 어느 집에 신혼부부 두 쌍이 세를 얻어 같은 날 이사 온다.
리첸의 남편은 출장 중이라 그녀 혼자 일꾼들을 지도하고, 차우도 아내가 직장에 있어 혼자 이삿짐을 받고 있다. 이웃한 방이라 이삿짐들이 뒤섞여서 그들은 짐들을 세심하게 분류하여 자기 방으로 옮긴다.
그 뒤로도 배우자들이 자리를 비우는 경우가 많아 두 사람은 복도에서, 응접실에서, 부엌에서 자꾸 마주친다. 리첸은 남편이 없는 날이면 혼자 요리하기가 싫어서 국수를 사러 나가고 차우도 아내가 없을 때 국숫집에서 밥을 먹다가 또 둘은 자주 스치며 만난다.
리첸의 남편이 일본에서 사다 준 전기밥솥의 값을 지불하기 위해 차우가 리첸의 방에 갔을 때 리첸의 남편은 이미 차우의 부인이 지불했다고 대답한다. 차우가 야근한다는 아내와 저녁을 먹으러 그녀의 직장에 갔는데 아내는 벌써 퇴근했다 하고 집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리첸의 남편은 출장이 더 많아졌다. 리첸이 남편이 안 들어온 날, 차우의 부인과 대화하고 싶어 옆집 방문을 두드리지만 그녀는 아프다고 하고, 약을 주겠다고 해도 약이 있다며 거절한다. 그때 그녀의 방에는 리첸의 남편이 있었다.
둘은 배우자들이 바람이 난 것을 눈치챈다. 남편이 리첸에게 사다준 똑같은 핸드백을 차우의 부인도 들고 다니고, 부인이 차우에게 사다준 것과 똑같은 넥타이를 리첸의 남편이 매고 다닌다. 즉, 바람의 상대가 서로의 배우자들인 것이다.
절망한 둘은 서로의 배우자에 대해 물어보고 서로를 위로하다가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그들은 자신들은 그들과는 다르다는 자존심과, 남들의 평판과 소문에 신경 쓴다. 부엌 같은 공공장소나 무협 소설을 쓴다는 명분이 있을 때만 편안하게 만날 수 있고 그 이외에는 극도로 접촉을 삼간다. 괴로워하는 리첸에게 차우는 우리도 그들과 같다며 마침내 사랑을 고백하지만, 그녀를 위해 결국 이별을 선택한다.
몇 년이 지나서 어린 아들과 함께 리첸은 다시 살던 곳에 와서 같은 집을 빌리며 옛날을 그리워하고, 차우도 앙코르와트를 찾아가서 못다 한 가슴속에 있는 말을 기둥의 구멍에 쏟아 넣고 진흙으로 구멍을 막아버린다.
두 사람 인생의 화양연화(가장 좋은 시절)는 과거 둘이 함께하던 날들이었다.
둘이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잡는 것도 힘들다면 이들 사이를 막는 페르소나의 벽은 얼마나 단단한 것일까?
차림새만 보아도 그들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배우 장만옥의 미모와 치파오 패션은 화제가 될 정도로 아름다웠지만, 머리카락 한 올도 삐져나오지 않는 올림머리 스타일과 목도 돌릴 수 없이 빳빳한 카라, 숨 쉴 여유조차 없는 딱 붙는 치파오 원피스와 하이힐까지, 늘 긴장하고 남의눈을 의식하는 리첸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녀는 주인집과 식사도 같이하지 않고 혼자 국수를 사다 먹을 정도로 체면을 중시한다.
차우도 늘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머리도 흐트러짐 없이 무스로 고정시킨 스타일로 규범에 충실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들의 페르소나는 그들과 오랫동안 한 몸이어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다. 그들은 서로의 배우자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제대로 화 한번 못 낸다. 자신들이 배우자 관리를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서로 사랑하는데도 둘 중 아무도 배우자와 헤어지고 둘이 같이 있자는 말을 못 한다. 자신들은 규범에 충실한 반듯한 사람들인 것이다.
기껏 차오가 한다는 배려는 소문이 심해지면 리첸이 힘들어지니 그가 떠나겠다는 말이다. 내레이션에 나오듯이, 그의 소심함 때문에 수줍은 그녀는 떠나버렸다.
그들이 비난하는 배우자들은 비록 사회 규범면에서는 비도덕적일지라도 최소한 서로에게 솔직하기는 했다. 사랑이란 솔직한 표현이고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그들의 사랑은 숨겨진 마음뿐이고 과거일 뿐이니 결국 사랑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둘의 타이밍도 계속 어긋난다. 지하에 있는 국숫집을 오갈 때도 한 사람이 내려가면 다른 사람은 올라와서 스칠 뿐이다. 둘이 무협소설을 같이 쓰던 호텔도 서로 다른 시간에 들러 흔적을 찾으며 그리워한다. 수년이 흐른 뒤 각자 살던 집에 방문할 때도 시간차가 나서 접점이 없다. 따라서 둘의 사랑은 언제나 과거형이다.
이번에는 심리학적으로 이들의 관계를 들여다보겠다.
영화에서 리첸의 남편과 차우의 부인의 정면 얼굴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뒷모습이 잠깐 나오거나 조금 열린 방문 뒤에서 목소리만 들리거나 전화 목소리만 나올 때도 있다. 심지어는 라디오 프로에 엽서를 보내서 아나운서의 목소리로 대신 사연을 읽어주기도 한다. 과연 이들이 실재하는 인물들일까?
심리학적으로 볼 때 이들은 무의식에 존재하는 캐릭터들이다. 리첸의 단정한 숙녀 스타일은 남들에게 보이는 페르소나이자 자아이고, 내부에는 본능적이고 가벼운 요부 스타일인 차우 부인의 그림자를 가지고 있으나 억압하고 부정한다.
차우는 점잖고 규범에 충실한 페르소나와 자아를 가지고 있지만, 리첸의 남편처럼 비도덕적이고 솔직하게 바람둥이처럼 행동하고 싶은 욕구를 그림자로 감추고 있다.
따라서 같은 핸드백을 가진 리첸과 차우의 부인은 같은 사람의 양면이다.(현실적으로 바람을 피우는 남자는 들킬까 봐 서로 매일 보는 이웃에 사는 애인에게 부인과 똑같은 핸드백을 선물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같은 넥타이를 맨 차우와 리첸의 남편은 같은 사람의 양면이다.(똑같은 논리로 바람피우는 여자가 매일 매고 다니는 눈에 띄는 넥타이를 남편과 이웃의 애인에게 똑같은 것으로 사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리첸과 차우는 부부일 것이다. 껍질인 페르소나가 단단한 두 인물의 관계는 서로의 내면에 다다르기 쉽지 않다. 게다가 자신들이 가진 아니마와 아니무스의 이미지까지 상대에게 투사하고 결과가 다르면 실망한다. 둘의 이별 연습에서도 리첸이 차우의 대사를 듣고 남편은 당신과 닮지 않았고 남편은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며 정색을 한다. 즉 내 마음의 남성상은 이런데 당신은 달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둘이 자주 가는 지하에 위치한 국숫집은 본능적인 욕망을 의미하는 무의식의 상징이다. 그들은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스칠 뿐 함께 지하의 무의식에 도달하지 못한다. 차우는 수리첸에게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고, 그녀 역시 아픈 그에게 좋아하는 참깨죽을 만들어주면서도 그냥 우연히 만들어서 준 척한다. 그들은 끝까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다.
결혼은 겉보기에는 한 남성과 한 여성이 하지만, 실제로는 두 남녀와 그들의 무의식까지 넷이 펼치는 드라마이다. 결국 내 마음과 상대방의 마음의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까지 볼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리첸과 차우가 자신이 억누르는 그림자와 상대방의 그림자까지 이해했더라면 남의 잣대와 상관없이 현실에서도 택시에서 같이 내리고 우산도 같이 쓰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화양연화’ 노래도 같은 방에서 들으며 그들의 진짜 화양연화를 누리지 않았을까? 결혼 초에 둘이 가면을 벗고 무의식에서 원하는 것까지 표현할 수 있었다면 둘은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그래도 같이 노력했었던 좋은 시절이었다. 이후에 둘은 단단한 페르소나를 벗지 못하고 소통을 포기한다. 옛날이 좋았다며 혼자 눈물짓거나, 마음의 소리를 구멍에 넣고 봉인 같은 것을 하면서 말이다.
이들 부부가 끝까지 모양뿐인 결혼을 유지했는지는 모르지만, 또 다른 사람들의 좋은 평판과 꼿꼿한 자신의 자존심을 지켰을지는 모르지만, 결국 사랑에 있어서는 자기와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실패했고 행복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