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레베카>-저택의 주인은 누구인가?

자아를 압도하는 그림자

by 윤병옥
1940년 히치콕 작품

자신이 약하고 눈에 띄지 않고 존재감이 없다고 생각될 때 조용히 안에서 꿈틀대는 욕망을 들여다 보라. 밖으로 보이는 겸손하고 착한 이미지는 진짜일까?

오랫동안 억눌렸던 그림자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외모는 예쁘지만 가문도 별 볼일 없고 돈도 없는 젊은 여성인 주인공은 늙은 부잣집 여성의 심부름과 말동무 역할을 하며 상류사회의 맛도 보고 용돈도 버는 무기력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던 중 그녀는 부잣집 여성과 고급 호텔에 머물다가 상처한 돈 많은 젊은 남자인 맥심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맥심은 아름답지만 순진하고 촌스러운 아가씨에게 호감을 느끼고 급속도로 가까워지며 청혼하게 된다.

결혼하여 남편이 소유한 어마어마한 맨더리 저택에 들어가게 된 주인공은 시작부터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다. 쌀쌀맞고, 새로 온 안주인을 깔보는듯한 오래된 집사 댄버스 부인의 태도와, 자신에게 바다가 보이는 저택의 서쪽 부분은 빼고 동쪽 부분만 사용하게 하는 등 이상한 일이 많다.

남편은 항상 불안해 보이며 전처인 레베카에 대한 질문만 하면 차갑게 변하고, 남편의 지인과 하인들도 죽은 전처 레베카를 잊지 못하고 있었다.

미지의 영역인 서쪽 부분에는 전처 레베카의 방이 있었고 아직도 그녀의 옷과 이니셜 “R”이 새겨진 물품들이 그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레베카의 미모, 신분, 지성, 취향은 그야말로 전설이었다. 댄버스 부인은 주인공을 대놓고 비웃으며 그녀가 레베카를 따라갈 생각조차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가 레베카같이 되고 싶어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고 집에서 가면무도회를 개최했는데, 댄버스 부인의 계략대로 그녀가 과거에 레베카가 입었던 것과 똑같은 드레스를 입었을 때 남편과 하객들은 경악하고, 그녀는 아무리 노력해도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죽은 전처와 경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느끼고 절망한다. 이때 댄버스 부인이 그녀를 따라와 자살을 하도록 유도한다.

죽으려고 창밖을 내려다보던 순간, 실종되었던 레베카가 탔던 배와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당황하며 도망간 남편을 따라간 아내에게 그는 사실 레베카는 남자관계가 복잡한 자유분방한 여자였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레베카가 다른 남자의 아기를 임신했다며 남편의 재산을 다른 남자의 자식에게 상속하겠다고 그를 도발하자, 이에 분노하여 그녀를 죽였다고 고백한다.

남편이 레베카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는 용기를 갖는다. 남편이 전처 살해범으로 재판을 받게 되자 그녀는 과거에 레베카가 갔던 병원을 추적하여 레베카가 임신한 것이 아니었고 난소암 말기로 시한부 상태였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레베카는 자신이 어차피 병으로 곧 죽을 것을 알고 남편이 그녀를 죽인 죄책감으로 평생 자기에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그의 분노를 유발해서 자신을 죽이게 한 것이다.

재판에 레베카가 암이었다는 진료 기록을 제출하고, 레베카가 병으로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결론이 나서 남편은 무죄 판결을 받는다.

부부는 집에 돌아오는 중 그들의 저택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발견한다. 댄버스 부인이 맨더리 저택을 불태우고 자신의 인생도 마감한 것이다.

그들은 이제 새로운 집을 찾고 행복한 생활을 시작하려 한다.



자존감이 많이 떨어지는 여자 주인공은 영화에서 심지어 이름조차 없다.

영화에서 여자는 자신의 인생에서 주인공이 아니고 너무 미미한 존재이다. 과거에는 부잣집 마님의 말동무였고, 나중에는 부자 남자의 아내여서 이름 없이 그냥 드윈터 부인일 뿐이다.

그러나 죽은 전처 레베카는 회상 장면조차도 없이 한 번도 출연하지 않고, 초상화나 사진도 없지만 존재감은 막강하여 저택을 장악한다. 그녀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대리인인 댄버스 부인을 통해 여전히 힘을 과시한다. 죽어서 전설이 된 사람과의 경쟁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러나 남편의 고백은 레베카가 천사가 아님을 보여준다. 남편은 레베카를 없애고 주인공을 선택했고, 레베카의 흔적이 가득했던 저택은 불탔고, 레베카를 늘 소환했던 댄버스 부인도 죽었다. 그녀는 드디어 주인공이 되어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 영화는 자신의 삶을 주도해가는 자아의 힘이 미약할 때 무의식이 어떻게 인생을 압도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자아와 반대되는 특성이 억압되어 뭉친 덩어리가 ‘그림자’라고 볼 때 레베카는 주인공의 그림자이다. 소심하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에 한 번도 반항해 본 적이 없고 가문도 돈도 없는 여자의 은밀한 소망은, 화려하고 인기 있고 자유분방한 대담한 여성이 되는 것이다. 레베카는 이 모든 특성의 집합체이다. 이러한 욕망은 누르면 누를수록 폭발력이 커진다. 자아를 지배하고 비웃는다.

맨더리 저택은 주인공의 마음의 상징인데 그 저택의 주인은 주인공이 아니라 레베카, 즉 무의식의 그림자이다. 드윈터 부인은 이 저택의 명목상 주인일 뿐 실제 주인은 레베카인 것이다.

남편으로 상징되는 ‘아니무스’는 자아가 개인의 본질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데 남편은 처음에는 그림자의 힘에 밀리지만 결과적으로 부정적인 무의식을 제거하고(레베카를 죽이고) 주인공을 선택하여 그녀가 자신감을 가지고 인생을 살 수 있도록 돕는다.

기존의 저택이 불타고 새로운 집을 물색하는 것은 성장한 자아가 새로운 구조의 마음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제 그녀 앞에는 자신이 주인공인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림자는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또한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의 존재를 의식하고 조절하고 약화시킬 수는 있으나 없앨 수는 없다. 과거의 드윈터 부인은 자신 없고 나약해서 늘 남에게 휘둘리는 존재였다. 레베카의 자신 있고 화려하고 욕망에 솔직한 측면을 통합한 나중의 드윈터 부인은 겸손한 듯 하지만 강하고 독립적이고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그림자를 억압하지 않고 의식화하여 조절할 수 있다면 삶을 더 다채롭고 활력 있게 만들 수도 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이 아니라 통합의 문제인 것이다.

맨더리 저택과 레베카는 가끔씩 그녀의 마음에 떠오를 것이다. 새로운 집은 맨더리 저택의 구조를 참고해서 지을 것이고 주인공은 레베카의 일부 특성들을 억압하지 않고 가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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