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스개 소리로 부인이 뭐가 미안한 지 말해보라고 할 때 남편들이 제일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언어는 반쪽짜리 진실이기 때문에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는 것이 관계를 시작하고 지속하는 비결이다.
사람의 마음과 말은 얼마나 일치할까?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골 출신의 젊은 청년 바비는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외삼촌 필 아래서 일을 배우기 위해 도시로 온다. 필은 화려한 파티를 열어 그곳의 연예인이나 유명인사를 모아서 인맥을 쌓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성공한 에이전트 사업가이다.
삼촌이 자신의 비서 보니를 시켜 조카에게 도시를 보여주라고 해서 둘은 데이트를 하게 된다. 보니는 바비에게 베버리 힐즈의 저택들을 구경시켜주며 수영장 딸린 큰집을 소유하는 것은 남들에게 과시하려는 허영심에 불과하다며 속물을 경멸하고 자신은 바닷가가 보이는 집이면 된다고 말하고, 그녀의 순수한 매력에 반해 바비는 보니를 사랑하게 된다. 삼촌의 화려한 풀장 파티에서 많은 셀레브리티를 만나고 영화판의 뜬소문과 뒷담화를 듣게 되지만 그는 보니와 소박한 식당에서 지내는 것이 더 좋다. 곧 월급도 오르게 되어 보니를 좋은 식당으로 초대하지만 그녀는 차려입고 가는 것이 싫다며 그의 집으로 가서 요리를 해주겠다고 한다. 바비가 기대하며 기다리지만 그녀에게 사정이 생겨서 못 오겠다는 연락이 온다.
사실 그녀는 삼촌 필의 내연녀였고 약속 날 갑자기 필이 그녀를 불러내자 한껏 멋을 부리고 비싼 레스토랑에 나간 것이었다. 보니도 순수한 청년 바비에게 끌리지만 유부남 필의 중후함과 부유함의 매력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그날 필이 나와서 아내와 이혼하지 못하겠다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자 실망한 보니는 바비와 결혼하여 뉴욕의 가난한 예술인 마을로 가기로 결심한다.
필은 책임감 때문에 아내를 떠나지 못했지만 보니를 잊지 못해서 괴로워하다가 결국 아내와 이혼하기로 결심하고 바비에게 알리는데, 둘의 사이를 모르는 조카 바비가 삼촌에게 보니와 결혼해서 뉴욕에 가겠다고 말하자 놀라고, 바비는 보니에게도 그의 이혼 사실을 알리게 된다. 결국 다급해진 필은 보니를 찾아가 자신과 결혼하자고 말한다. 필이 아내와 이혼하고 돌아오자 결국 보니는 바비가 아닌 필을 선택한다. 역동적이고 성공한 정력가와, 자신을 아껴주지만 가능성 이외에는 현재 별 볼 일 없는 청년 중에 그녀는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실망하여 혼자 뉴욕에 온 바비는 난폭한 성품의 친형 벤이 운영하는 술집 일을 도와 사업을 일으킨다. 그의 클럽은 새로운 곳에서 예전에 삼촌 필이 만들었던 클럽처럼 사회 명사들을 끌어모으는 카페 소사이어티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곳의 인맥으로 알게 된 상류층 아름다운 이혼녀 베로니카를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되고 형이 살인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아 사라지자 사업체는 바비의 소유가 된다.
바비가 승승장구하던 어느 날, 필과 보니 부부가 뉴욕에 와서 바비의 클럽을 방문한다.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옛날과는 달리 화려하고 돈 자랑 인맥 자랑을 하는, 예전에 자기가 비난하던 수다스러운 속물이 되었다.
서로를 그리워하던 둘은 다시 만나 이번에는 바비가 뉴욕 구경을 시켜주며 데이트를 하는데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꿈을 꾸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린 그들은 현실로 돌아가기로 결심하며 헤어지고, 새해 파티에서 둘이 각자의 배우자와 키스를 하면서도 현실을 넘어 어딘가를 향하는 꿈 꾸는 듯한 시선을 보여준다.
영화의 현실은 바비 커플과 보니 커플 네 사람이 펼치는 드라마지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바비와 보니 두 사람의 이야기이다. 필과 베로니카는 바비와 보니의 미래 모습이거나 마음속에 있는 그림자로 볼 수 있다.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순수한 성향은 두 사람을 서로 사랑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비의 마음속에는 가난한 예술가로서의 꿈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번 성공한 사업가로 주위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고 싶다는 욕망도 있다. 그는 뉴욕에 돌아와 삼촌과 똑같은 모습이 된다.
마찬가지로 보니의 마음속에는 소박하고 진실한 꿈 이외에도 화려한 집과 보석으로 치장하고 유명한 인물들과 어울리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 있다. 그녀는 바비를 대할 때와 필을 대할 때 완전히 다른 태도를 가진다.
두 사람이 결혼했으나 보니는 자신이 의식적으로 한 말대로 바비가 순수해서가 아니라 무의식 속의 욕망대로 바비가 나중에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어서 결혼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비도 보니가 겉으로 하는 말과는 달리, 부유하고 화려한 여성이 되고 싶어 한다는 진심을 읽는다.
이렇게 사랑하는 상대의 속마음을 눈치챈 둘은 처음의 순수한 의도와는 다른 속물 인생을 살게 된다. 결과적으로 삼촌 필과 나중의 바비가 사는 모습은 똑같다. 또한 영화에서는 많이 나오지 않지만 심지어 보니와 이름도 같은 아내 베로니카는 보니가 상류층 생활을 오래 한 후 가질 수 있는 모습이다.
나이가 들면서 과거에는 억압했던 속물 성향이 활성화되자 이제는 오히려 현재에 억압한 순수한 성향이 올라온다. 그들은 과거의 자신을 소환해서 데이트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제 순진한 청년들이 아니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안다. 마음속에 추억을 간직한 채 앞으로도 계속 부유하고 속물적인 삶을 살아가기로 한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아니마나 아니무스상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과 사랑에 빠진다. 그 이미지는 평생 잊히지 않는다. 감정을 휘저어 놓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삶은 다르다. 또한 현실의 인물은 계속 변한다. 결국 매혹의 순간은 한여름밤의 꿈일 뿐이다.
젊은 시절의 바비는 순수한 자아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내면에는 물질적 욕망이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욕구가 그림자로 억압되어 있다. 그가 아니마를 투사한 여성 보니도 얼핏 보면 순수해 보이지만 그녀의 선택의 배경을 자세히 보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돈과 명예와 안정감을 추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비는 내면의 여성성을 투사한 인물의 변화에 따라 점점 그의 삼촌으로 상징되는 속물이 되어간다.
흥미롭게도 삼촌에게 자신이 사귀고 있는 여자의 정체를 밝힌 사람도, 보니에게 삼촌의 이혼 사실을 알린 사람도 바비이다. 그가 가만히 있었다면 영화에서 둘은 결혼하여 진실한 예술가로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아는 그림자를 나오게 하고 아니마에게 선택권을 준다. 가난한 예술가로 살 것인가, 속물적인 사업가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에서 그는 후자를 선택한다. 결국 바비 자신의 선택이다.
그들이 자신이 어떤 부분을 억압하는지 의식했다면 양자택일이 아닌 통합을 이룰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을 부정하고 뭔가 아쉬운 마음을 가진 채 한쪽으로 편향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다.
그들이 재회하여 소박한 식당을 빌려 과거의 감정을 소환해도 그것은 연극일 뿐이다. 미래를 걸지 않고 하는 행위들은 모두 위선이거나 거짓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