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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Nov 18. 2024

영화<퍼펙트 데이즈>-반복되는 일상에 비치는 햇살

그를 구원한 코모레비

히라야마는 도쿄 공공 화장실 청소부이다.

영화는 커다란 서사 없이 주인공이 매일 보내는 일상을 잔잔하게 보여준다.

어떤 사람은 줄거리도 없는 영화라며 화를 낼 수도 있지만, 어떤 사람은 영화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수도 있다.

‘퍼펙트 데이즈’라는 제목은 반어법이 아니라 진짜 주인공이 보내는 매일을 의미한다.

더러운 화장실을 청소하면서도 어떻게 완벽한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궁금하다.

여러 번 볼수록 더 마음을 움직이는 이 영화를 추천한다.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명이 비치는 새벽, 길에서 빗질 소리가 들리고 그것을 알람 삼아 히라야마는 잠에서 깬다.

이부자리를 단정하게 정리하고, 어젯밤 읽던 책을 선반 위로 올리고, 아래층 부엌 싱크대로 내려가 이를 닦고 면도를 하고, 스프레이에 물을 담아 2층 거실 탁자 위 작은 분재에 물을 뿌려준다. 청소복을 입고 현관 옆 선반에서 폰과 지갑과 열쇠와 동전을 집은 후 집을 나서며, 그는 옅은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본다. 집 밖에는 자판기가 있고 그는 동전을 넣고 BOSS 캔커피를 뽑는다.

청소도구가 실린 미니밴에 올라탄 그는 아침으로 캔커피를 마시며 그날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고른다. ‘House of The Rising Sun’을 들으며 도로를 달려 그가 담당한 화장실로 출근한다.

잘 빨아서 깨끗한 대걸레와 도구들을 들고 그는 화장실 바닥의 휴지를 줍고 거울을 닦고 변기를 꼼꼼히 닦고 바닥도 깨끗하게 걸레질을 한다. 그의 작업파트너인 청년 다카시가 “어차피 더러워질 거 뭐 그렇게까지 하세요?”라고 말하며 건성건성 청소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일을 한다.

다음 화장실에서 청소 중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를 달래며 손잡고 나가는데 엄마가 달려와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아이의 손을 물휴지로 닦으며 데려간다.

신사가 있는 공원의 화장실 청소 후 근처가 나무가 많은 장소여서 편의점 샌드위치를 가져와서 벤치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빵을 먹다가 필름 카메라를 꺼내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하늘을 찍는다. 나무 아래서 작은 분재를 발견하고 소중하게 종이 봉지에 담아 온다.

유리로 벽과 문이 제작된 투명 화장실은 문을 잠그면 불투명하게 변하며 안이 보이지 않게 되는데 외국인이 당황하자 사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근처에서 매일 마주치는, 나무와 함께 춤을 추거나 자기 그림자와 놀고 있는 노숙자와 눈인사를 한다.

일과를 마치고 퇴근하는 길, 카세트테이프를 골라 ‘Pale Blue Eyes’를 듣는다.

집에 온 그는 가져온 작은 식물을 정성스럽게 화분에 옮겨 심고 다른 화분들 옆에 놓는다.

평상복을 갈아입고 자전거를 타고 공중목욕탕에 가서 씻고, 머리를 말리는 동안 휴게실에서 노인들과 함께 티브이를 잠깐 보고, 돌아오는 길에 단골 지하 식당에 가서 술 한잔과 작은 안주를 먹으며 야구 중계를 잠깐 보고, 돌아와서 자리를 편 후 앉아서 소설책을 읽다가 졸려지면 누워서 조금 더 읽다가 불을 끄고 잠을 청한다.

이때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림자)와, 울던 어린아이와 잡았던 두 손의 이미지가 겹치며 머릿속에 어른거린다.

     

다음날도 다시 똑같은 루틴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날은 다카시가 지각해서 늦게 온다. 서둘러 청소를 끝내고 그의 여자 친구가 밖에서 기다리는데 자신의 오토바이가 고장 났다며 히라야마의 차를 빌려 타겠다고 부탁한다. 셋이 같이 카세트테이프를 들으며 그의 밴을 타고 오던 중 다카시는 데이트할 돈이 없다며 히라야마의 오래된 카세트테이프를 팔자고 고집부리지만 그는 거절하고 지갑 안의 돈을 다 꺼내서 준다. 다카시가 떠난 후 차의 기름은 떨어지고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할 돈이 없는 히라야마는, 결국 테이프를 팔아서 기름을 넣고 집에 돌아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잠을 청한다. 코모레비와 다카시의 여자 친구 얼굴이 떠오른다.

새로운 아침, 여명에 눈을 뜬 히라야마는 미소를 띠고 하늘을 바라본다.

청소 중 벽틈에서 발견한 쪽지의 칸에 그려진 O옆에 X를 표시한 후 다시 틈에 끼워둔다. 공원에서 점심 식사 중 옆 벤치에서 샌드위치를 먹는 젊은 여성에게 눈인사를 하지만 그녀는 냉랭하게 무시한다. 빌려간 카세트테이프를 돌려주려고 다카시의 여자친구가 찾아와서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한다. 퇴근 후 방에 누워 그는 행복한 표정으로 카세트 플레이어에 ‘Perfect Day’를 넣고 듣는다.   

또 다른 아침, 청소 중 발달장애 아이가 다카시에게 다가와 웃으며 그의 귀를 만진다. 다카시는 그의 귀를 좋아한다는 그 아이와 웃으며 이야기한다. 쪽지를 꺼내보니 또 다른 O가 그려져 있다. 그도 또 다른 칸에 X를 표시한 후 다시 틈에 끼워놓는다. 그날밤 코모레비와 달빛이 보이고 쪽지의 이미지가 겹친다.


비번인 날이 오고, 그는 청소복과 빨래를 들고 세탁방에 들르고 빨래가 되는 동안 필름 가게에 가서 필름도 교체하고 현상된 사진도 찾는다. 집에 돌아와 괜찮은 코모레비 사진을 골라서 통에 넣고 달별로 분리해서 보관한다. 헌책방에 들러서 문고판 책을 한 권 산 후 세탁방 앞의 술집에 들른다. 술 한잔을 마시며 여주인과 즐겁게 대화하고 노래도 듣는다. 그날밤에 코모레비와 여주인의 이미지가 겹친다.

다음날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어릴 때 보았던 조카딸 니코가 와있다. 엄마와 싸우고 외삼촌집에 무작정 온 것이다. 조카를 자신의 방에서 재우고 아이는 삼촌의 책장에서 책‘11’을 읽고 주인공의 마음이 자신과 같다고 한다. 그는 아래층 창고에서 불편한 잠자리를 만들어 자게 되지만 그도 여전히 책을 읽다가 잔다. 다음날은 조카가 삼촌의 일정에 함께 한다. 그다음 날도 삼촌을 따라와서 일을 돕기도 하고 끝난 후 목욕탕도 함께 간다. 그는 여동생에게 딸이 와있다고 전화하고, 둘이 저녁을 먹은 후 집에 돌아오자 동생이 딸을 데리러 와 있다. 오랜만에 동생을 본 히라야마는 울컥하고, 그날밤 코모레비와 자전거를 타는 니코의 이미지가 겹친다.

다음날 다카시는 갑자기 전화로 일을 그만둔다고 하고, 그의 일까지 도맡은 히라야마는 두배로 무리하고 루틴이 깨지며 피곤해서 저녁도 못 먹고 잠자리에 쓰러진다.

그러나 다음날이 되자 집을 나서며 다시 하늘을 보며 미소 짓고 캔커피를 두 개나 뽑아 차에서 마시며 출근한다. 새로운 작업파트너가 와있고 쪽지는 완성되어 감사 인사까지 적혀 있다. 돌아오는 길에 며칠간 안 보이던 노숙자가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이 보인다. 그날밤에 코모레비와 함께 춤추는 노숙자의 이미지가 겹친다.

다시 비번날 아침, 히라야마는 창을 열고 아직 환하지 않은 여명을 황홀하게 바라본다. 세탁방에 들르고 현상된 필름을 찾고 동네에서 공터를 발견하는데 과거에 그 자리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헌책방에서 조카가 가져간 책 ‘11’을 다시 산다. 비번날마다 가는 술집 여주인의 암에 걸린 전남편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인생이 끝나는 것 같다"고 자조하는 것을 강가에서 들어주고, 집에 돌아온 히라야마는 코모레비와 강물에 어린 빛이 겹치는 것을 본다.

다음날 다시 출근길에 오른 히라야마는 ‘Feeling Good’을 들으면서 해가 뜨고 있는 도쿄를 달리며, 얼굴에 햇살이 비치자 눈물이 글썽한 채로 함박웃음을 짓는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사연이 많은 사람으로 보이지만, 영화에서는 잠깐 그의 부자 여동생이 딸을 찾으러 와서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할 때 엿볼 수 있는 것으로 끝낸다. 그는 아마도 돈 많고 좋은 집안에서 성장했고 자신의 본성을 거스르는 아버지의 야심에 부합하는 것을 거부하고 가족과 절연한 사람으로 보인다. 그의 집은 결코 비싼 집이 아니지만 그의 단정한 방안의 정리된 책과 카세트테이프는 그의 교육 수준과 지적인 취향을 보여준다. 그는 피곤한 하루를 끝내고도 티브이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검색하며 저녁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듯 화장실 청소부라는 직업 자체가 못 배우고 사회에서 실패한 사람을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의 사는 모습은 사회적 성공이나 명예보다는 세상을 위해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남는 시간을 자신이 소박하게 좋아하는 것으로 채우는, 거의 성자 같은 삶을 보여준다.

화려하고 부유하게 살 수 있지만 남을 이용하는 일보다는 몸은 고달프지만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데 꼭 필요한 일을 묘사하는 데 적격인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은 그의 적극적인 선택이다. 그는 성심성의껏 화장실을 닦는다. 그가 구해준 아이의 엄마에게 더러운 사람 취급을 받고, 청소부 옷을 보고 젊은 여자가 외면하고, 여동생이 그를 동정해도 그는 상관없다.

그의 일은 세상에 꼭 필요한 일이고, 노동을 마친 후 그는 달콤한 휴식과 일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


영화는 그가 보내는 일상의 어느 날을 골라도 똑같을 루틴을 보여준다. 다음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진행될 거라고 기대했던 관객 중 화를 내는 사람도 있고, 실망해서 나가버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당번인 날과 비번인 날의 루틴은 언제나 똑같다. 그러나 똑같은 날씨가 없듯 언제나 변주가 있다. 그가 듣는 음악이 매일 다르고, 화장실에 길 잃은 아이가 들어있기도 하고, 동료가 갑자기 그만두기도 하고, 조카가 불쑥 찾아오기도 한다. 비번날 가던 술집의 문이 닫혀있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가 바라보는 햇살의 각도와 구름과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빛이 매일매일 다르다. 이 영화의 키워드인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은 구원의 상징이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빛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 그가 많은 직업 중 화장실 청소부를 택한 데는 야외에서 이동하며 늘 햇빛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공원 근처에 화장실이 있는 경우가 많으니 휴식 시간에 공원의 나무들 아래서 코모레비를 보고 카메라로 찍을 수 있었던 것이다.


코모레비는 똑같은 적이 없다. 나뭇잎의 양도 계절마다 다르고, 태양의 각도도 다르고, 바람도 다르게 불고, 구름의 양도 매일 다르다. 그것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소중하게 보관한다. 심지어 코모레비는 그가 매일 밤 잠들기 직전, 그날의 기억과 함께 재현된다.

그가 동네를 지나가다 공터를 보았을 때 과거에 거기에 무엇이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것은 어떤 사람이 존재하다가 사라져도 그사람이 과연 있었는지, 그가 누구였는지 모르는 것의 비유이다. 지구의 시간에서 인간이 짧게 존재하다가 사라질 운명은 마치 한순간 존재하는 코모레비와 같다. 작가의 생각은 그래서 허무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것이다. 그 사실이 주인공 히라야마가 삶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출근하는 차안에서  히라야마가 보여주는 천 가지 표정은, 짧은 찰나에 햇빛을 받으며 살아있는 존재가 얼마나 행복할 수 있나를 보여준다.

삶은 좋을 때도 슬플 때도 화날 때도 있지만, 흐르는 강물을 보며 하늘의 햇살을 받으며 출근해서 일하, 술 한잔으로 피곤을 풀고 집에 돌아와서 평화롭게 잠들 수 있다면, 매일이 새롭고 완벽한 날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주인공이 언어장애인인가 의심할 정도로 말이 없는데, 영화 속 노래 가사들이 이를 대신한다고 생각될 정도로 절묘하게 그때의 상황을 묘사한다. 음악이 아주 좋다.

*영화에 나온 공공화장실들이 다 독특하고 건축적으로도 아름다운데,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서 유명한 건축가들이 프로젝트로 만든 작품들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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