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출판
노인들이 행복하게 사는 법, 또는 잘 나이 드는 법 등의 주제를 가진 책들을 살펴보면 공통된 내용이 있다.
첫째가 좋은 음식을 먹으라는 것이고, 둘째가 적절한 강도의 운동을 하라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이 내용의 다음은, 사람들과 어울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결이 맞는 친구와의 대화는 사람을 성장시키지만 결이 다른 여러 사람들과 만나서 먹고 시간을 보내면 시간이 잘 흘러갈 뿐, 마음은 여전히 어지럽고 허전하다.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원은 단 두 명이라고 생각한다. 세 사람만 돼도 분위기를 배려하느라 가끔 솔직하지 않은 말이 나오게 된다. 하물며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면 공허한 이야기가 오가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과 다른 흐름이 생기면 입을 닫고 그냥 듣고 온다. 물론 돌아와서 엄청 피곤하다.
잘 맞는 친한 친구와의 대화는 나의 상처를 치유할 수도 있고 상대를 위로할 수도 있다. 상대방의 진심을 담은 말이 서로를 성장시킨다. 그 사람과 있으면 서로가 좋은 사람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반면에 마음이 꼬이거나 남을 비방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서로의 흐름이 끊기고 돌아온 후에 느끼는 기분이 몹시 찝찝하다. 이런 사람들은 불행을 전염시키고 나이가 들어도 무리 지어 다니며 다른 사람들 비평이나 한다.
그래서 나는 성숙하게 나이 들어가려면 혼자 있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힘을 기르는 일은 쉽지 않다. 고독을 버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고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데는 긴 시간의 훈련이 필요하다. 나에게 이 도구는 독서와 영화 감상과 명상과 글쓰기이다.
말이 통하는 단 두 명 사이의 대화 중의 백미는 단연코 독서다. 독서는 저자와 독자 사이의 일 대 일 대화다. 저자가 하는 말을 꼼꼼하게 읽고, 천천히 이해하고, 거기에 내 의견도 말한다. 동의할 경우 책에 밑줄을 치고 끝나지만, 의견이 다른 경우는 그것을 시작으로 새로운 글을 쓰기도 하고 리뷰를 쓸 때 반대 의견을 피력하기도 한다.
가끔은 같은 책을 읽은 여러 명의 독자들과 모여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그때 내가 보지 못한 새로운 시각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도 역시 저자 한 사람과의 대화이다.
한편 영화는 나의 공간적 한계를 초월하게 해 준다. 영화감독은 책의 저자처럼 이야기의 맥락과 주제를 끌고 가며 내가 살아보지 못한 삶을 체험하게 한다. 내 좁은 인생을 확장시켜 준다.
이렇게 독서나 영화를 통해 많은 것이 내면에 들어오면, 내 안에 이미 있던 생각들과 충돌하기도 하고 맥락 없이 흩어지기도 한다. 이것을 정리하는 과정이 명상이다. 명상을 하는 방법에는 홀로 책상 앞에 앉아서 생각하거나, 산에 홀로 올라가서 생각하거나, 혼자 산책하며 마음을 정리하거나, 혼자 천천히 뛰며 생각하는 것 등이 있다. 사람에 따라 요가를 하며 생각하는 것이 효율적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때 하는 동작은 운동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마음을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방법을 선택하든 생각을 정리하려면 '혼자' 움직여야 한다.
독서와 영화로 자극을 받고 명상을 통해 생각이 정리되면 글을 통해 결과가 흘러나온다.
다른 사람들은 여행이나 사회생활 등 직접 경험을 통해 자극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라도 영감을 받고 오랜 시간 생각을 하고 흘러나온 것이 글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결과물이 훌륭하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숙고를 통해 나온 작품이라면 자신에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는 노년에 대한 에세이 책을 출간했다. 책의 내용은 많이 부족하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책에 비하면 솔직히 부끄럽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글을 쓰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충만하게 보냈다는 사실이다. 내향적인 성향을 가졌기 때문에 혼자 있을 수 있었던 것도 맞지만, 나도 설렁설렁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혼자 책상 앞에서 치열하게 긴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이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자기의 색을 찾을 수 있었고, 지나간 시간에서 보물들을 건질 수 있었고, 노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방향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의사들이 노년에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라고 조언하지만, 나는 혼자 있는 힘을 기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혼자 티브이만 보며 운동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독서를 하고, 늘어지는 드라마 말고 좋은 영화를 보고, 혼자 산책하라는 이야기다. 당연히 영혼이 맑은 좋은 친구와의 대화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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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동료 작가들의 신간에 따뜻한 리뷰 써주시는 유미래 작가님이, 제 책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예의>의 리뷰를 써 주셨습니다. 오마이뉴스에도 실어주셨네요.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책보다도 더 훌륭한 후기라 여러분도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ce3179a175d043c/936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81863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