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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병옥 Apr 11. 2024

영화<로켓맨>-프로이트의 소파에서 일어나라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하기

    

프로이트는 과거에는 밝히지 못했던 여러 증상들을 무의식의 영역으로 해석하여 심리치료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현대에는 분석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도 어릴 때의 경험이 미래에 성인이 되었을 때 미치는 영향, 트라우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의 심리학적 내용들을 많이 알고 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자신의 경우에 기계적으로 단순하게 적용하여 자신의 퇴행을 합리화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엘튼 존의 어린 시절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사이가 매우 안 좋았는데 어른스럽지 못하게도 자신들의 책임은 회피하고 그들이 아이 때문에 헤어지지 못했다고 공공연히 표현하고 다녔다.

아내를 사랑하지 않았던 냉담한 아버지는 아들을 안아준 적도, 다정한 대화를 한 적도 없었고 심지어는 집을 떠날 때 아들에게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도 아들과 같이 살기는 했지만 자신이 우선인 여성이어서 아들에게 무심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유일하게 아들에게 준 좋은 영향은 음악에 대한 능력취향뿐이었던 것 같다.

다행히 같이 지낸 외할머니가 손자를 아끼며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그가 피아노 교육을 받도록 도왔다. 그는 왕립 음악학교 입학시험에서 바로 전 선생님이 친 곡을 한번 듣고 그대로 칠 정도로 음악적 감각이 뛰어났고 결국 합격했다. 그러나 엘튼 존은 재능이 뛰어났지만 자신이 클래식 음악만으로는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대중음악 무대로 진출한다. 예상대로 크게 성공하고 젊은 나이에 돈도 많이 벌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자신은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심리적으로 결핍을 느끼고 있었고, 대중에 알려진 후 그리워하던 재혼한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는 새로운 가정을 꾸린 아버지가 어릴 적 자신에게는 그토록 차가웠었는데 어린 이복동생들에게는 다정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상처를 받는다. 아버지가 여전히 자신에게는 냉담하고  심지어 자신이 이룬 음악적 성취조차 인정해 주지 않자  너무 실망하여 그 후로 다시는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재혼한 엄마도 성공한 아들에게 계속 당연한 듯 돈을 요구한다. 더 이상 그 요구를 받아주지 않자 “자식을 낳은 것을 후회한다. 너는 절대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는 등의 해서는 안 되는 심한 말을 하며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한다. 결국 엄마에게도 경제적 지원을 끊는다.


남의 곡을 연주하는 것으로는 크게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작곡을 시작하지만 작사에 어려움을 겪다가, 그의 예술에 있어서 평생의 소울 메이트인 시인이자 작사가 버니를 만나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다가 동성 애인 존 리드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엘튼 존이 평생 부모로부터 갈구하던 '사랑'과 ‘듣고 싶었던 말'을 해주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바랄  그를 진심으로 사랑한 것아니어서 나중에는 바람을 피우고 사업적으로도 엘튼 존을 착취하며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그를 배신하게 된다.  

절망한 그는 그때부터 술, 마약, 성, 기타 모든 나쁜 것에 중독되며 폐인이 된다.

바닥까지 추락한 그는, 어느날 예정된 공연을 자발적으로 취소하스스로 재활병원에 찾아가서 입원한다. 그리고 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고 자신을 돌아보며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그는 이제 심리적으로 부모에게서 완전히 독립하고 진정한 사랑도 찾고 예술적으로성공하게 된다.

    



엘튼 존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그러나 과연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았던 어린 시절이 사람의 전 인생을 결정하는 지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엘튼 존 자신이 약해지고 타락하는 핑계로 그것을 되풀이해서 말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도 그것을 깨닫자 이제 더 이상 약물에 의존하지 않고, 상상 속 부모에게 매달리지 않고, 인생의 다음 단계로 올라갈 수 있었다.

엘튼 존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작업은 음악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거기에 매진하여 현대 대중음악사의 한 획을 긋는다. 또한 새로운 동성 연인과 진정한 사랑도 시작하고 그 관계를 지속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의자에서 튀어 나가 탈출한 로켓맨이 된것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다 성숙한 인간은 아니다.

부모라고 해서 다 자식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주위에서 보면 자식에게 부모 노릇을 제대로 못하는 못난 부모들이 정말 많다. 객관적으로 봐도 가슴 아픈 일이고 어린 자녀의 입장으로 보면 정말 가혹하고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는 일이고 대부분의 경우 부모의 부모도 못난 사람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부모의 어린 시절도 불행했을  것이고 부모의 부모 탓을 하는 것은  끝없는 환원일  다.

어느 시기가 되면 그들의 나이가 자신을 힘들게 던 부모의 나이보다 많아지는 순간이 온다. 부모들이 그토록 미숙하완전한 사람들인여전히 상상속 과거의 부모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프로이트가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이야기한 것은 그것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이해해야 거기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성숙한 사람들은 과거의 회한에 빠져서 거기에 오랫동안 매이지 않는다. 어릴 때는 자신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상황을 통제하기에는 너무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약하다. 그러나 성장한 후에는 현재에 영향을 주는 과거의 상처를 대면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과거를 바꿀수는 없으나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태도를 바꿀수 있고, 현재의 심리적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과거를 소환하며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과거의 핑계를 대며 프로이트의 소파에 파묻혀 있는 것은 자신이 성숙해지기를 포기하는 일이다.

    

다행히 엘튼 존은, 오래 걸렸지만, 외로워도 음악을 만들고 공연하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아픔을 예술작업으로 승화한 것이다. 노래 ‘로켓맨’의 가사는 그가 살아온, 또 살아갈 삶을 들려준다.

“난 하늘의 연처럼 높이 날고 있죠.

 난 지구가 많이 그리울 거예요.

 끝없는 비행을 하는 지구 밖 우주는 너무 외로워요.

 내가 지상에 있으면 편안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요.

 난 로켓맨이에요.

 높은 곳에서 홀로 심지를 다 태우는 로켓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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