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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Feb 22. 2024

아르바이트와 10분

내가 짠 건지 님이 짠 건지

*22년도 작성된 글입니다.


   22살에 처음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요즘에는 보통 성인이 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던데, 너무 늦은 것은 아닐지 걱정이 앞섰다. 사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나는 아르바이트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뿐이랴 나는 내가 아르바이트를 할 것이라는 상상조차 못 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충분했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부모님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받는 돈으로 나의 소비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학교에 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한 번 들어오는 잉여 소득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데 휴학을 하니 오히려 돈이 없어졌다.


    집에만 있는데 돈이 왜 이렇게 순식간에 없어지는 것인지 궁금해져서 원인을 분석해 보았다. ···여러 고민을 해보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나의 소비벽에 있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친구랑 한 번 놀면 5만 원, 옷 한 벌 사면 3만 원, 교통비로 10만 원 그리고 1일 1 카페 음료. 그렇게 2주 살다 보면 30만 원이라는 돈이 훌쩍 없어지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남은 2주 동안은 부모님께 불쌍한 표정으로 구걸하며 연명하다가 용돈이 들어오면 또다시 물 흐르듯이 돈을 쓰는 것을 반복했다. 구걸의 텀이 짧아지는 것을 보니,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소비를 줄여야겠다고 다짐하며 강제 무지출 챌린지를 시도했다. 그러나 휴학을 한 지 5개월 만에 아르바이트를 찾기 시작했다. 한 번 늘어난 소비벽을 줄이는 것은 원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사람이다. 누군 처음부터 뭐든 쉽겠냐 만은 내가 생각해도 나는 태생부터 느린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손재주가 좋은 편도 아니었고 배우는 속도도 느린 편이다. 성격도 급하다기보다는 여유롭고 귀찮음을 많이 탔다. 그래서 나는 몇 번이고 내가 일하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하며 이 정도 일이면 할 수 있을지 머리를 싸매며 사서 걱정하기 시작했다. 가장 인기 있는 아르바이트 구인 앱을 깔고 심심할 때마다 들어가서 구인광고를 찾아보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겠다 싶은 일들은 이미 마감이었고 남은 일은 누가 봐도 힘들어 보이거나 이상한 아르바이트뿐이었다. 결국 이전의 고민과 시뮬레이션은 전부 쓸데없는 망상이었다. 그놈의 고민은 왜 사서 한 것인지.


 며칠 동안 계속 보이는 바(Bar) 구인만을 건조한 눈으로 보며 스크롤바를 내리는데 혜성처럼 스터디카페 아르바이트가 눈에 띄었다. 옳거니 하고 바로 지원했는데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서 며칠을 떨리는 마음으로 있다가 아르바이트 장소로 향했다. 면접을 보라고 하시고는 아무 말씀이 없으셔서 인터넷을 뒤적거리자 사람들이 이력서를 준비해 가야 한대서 없는 경력에 이력서를 꾸역꾸역 썼다. 옷도 단정하게 입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사장님은 내 이력서도 보지 않고 합격의 목걸이를 걸어주셨다. 스터디카페에서의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간단한 청소와 매장 관리가 전부였고 일하는 시간도 짧았다. 사장님도 좋은 분이셨고 복지도 좋았다. 다만,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오후 8시에 점검 10분, 오후 11시 30분부터 1시간 청소라는 놀기도 애매하고 공부하기에도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그래서 4개월 만에 그만뒀다.


   첫 아르바이트를 너무 꿀 같은 직장에서 해서 그런가. 나는 아르바이트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호기롭게 패스트푸드 아르바이트를 지원했다. 나의 안일함을 비웃듯 새로 시작한 아르바이트는 나에게 철저한 사회의 맛을 선물해 주었다. 처음 일에 갔는데, 같이 일하는 사장님이 하나를 알려주고 열을 못한다면서 혼을 냈다. 메뉴 종류도 모르는데 못한다고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 사장님을 도왔다. 교육이라고 배운 것은 영수증도 못 보냐는 말이었던 걸 보면 어지간히 일을 못했구나 싶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르바이트를 나가니 또 욕을 먹었다. 일을 못해서가 아니라 출근 시간 정각에 도착했다고 욕을 먹었다. "정시에 출근해서 정시에 퇴근하는 거 아니에요. 할당량 끝나면 가는 거고 10분 일찍 와서 준비하는 게 맞지 않아요?" 출근하자마자 몰려오는 무안함에 쥐꼬리만 한 목소리로 "네. 죄송합니다."라는 답밖에 할 수 없었다. 시간을 보니 정시 2분 전이었다. 지각도 아니었는데, 이게 그렇게 혼날 일인가.

   그날 유튜브 쇼츠 알고리즘에 ‘요즘 사장님들이 20대 알바를 뽑지 않는 이유’에 관한 동영상이 나왔다. 첫 장면에서 사장님이 지각한 아르바이트생에게 지금이 몇 시냐며 추궁하는 모습이 등장했다. 아르바이트생은 사장에게 좋지 않은 태도를 보이며 자신이 부조리한 일을 당했다며 같이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게 사장의 험담을 했다. 일부러 20대 아르바이트생을 좋지 않게 밈화시킨 영상 탓도 있겠지만, 댓글에는 아르바이트생 욕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걸 보자 생각한 것은, 나도 다른 사람이 보면 저렇게 보일까? 하는 의심과 부끄러움이었다. 나도 사장님이 뽑기 싫은 20대 중 한 명이라 잘리면 어떻게 하지. 그런데 나는 지각은 아니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물며 나의 행동을 반성하다가 다음 날부터는 10분 일찍 가게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이후에 너무 걱정이 되어서 아르바이트 후기 글을 볼 수 있는 커뮤니티에 10분을 검색했다. 그런데 그곳에서 이야기하는 현실은 달랐다. “10분 일찍 출근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지 않나요? 어차피 최저시급에는 포함이 안 되어있는 시간이잖아요. 10분 일찍 출근하라고 할 거면 그 10분까지 돈을 측정해서 줘야죠.” 커뮤니티 속 사람들의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나는 일주일에 삼일 출근한다. 근무지에 가기 위해 10분 일찍 가게로 출근하고 1분 동안 옷을 갈아입고 바로 일을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정시에 퇴근한다. 그러면 일주일 30분, 한 달에 2시간이라는 시간 동안 추가로 근무하게 되는 것이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즉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18400원어치의 무상노동을 업장에 제공하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스터디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아르바이트는 1시간 동안 했지만, 사장님은 점검 10분까지 월급에 포함시켜 주셨다. 어? 그럼 지금 사장님이 부당한 꼰대였던 것인가?


   이 10분은 정리하자면 구시대의 유물이다. 10분 일찍 업장에 나오는 예의는 기존 산업혁명 이후 정시에 돌아가야 하는 공장 기계들로 인해 생겨난 암묵적인 법이다. 즉 과거의 부당한 노동의 흔적이 아직 암묵적으로 사회에 남아 있어 발생하는, 전근대적 사상의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구세대들이 당연시하는 10분 일찍이라는 말은 현세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어처구니없는 말일 수밖에. 요즘에는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풍조이다. 그러므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정시에 일을 시작해서 최저시급이 인정해 주는 시간 동안만 일을 하고 집에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자기의 업장도 아닌데 굳이 10분 일찍 나와서 일을 시작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10분 일찍은 결국 윗사람에게 지키는 예의에 불과하다. 이를 지키지 않는 아르바이트생이 이상한 것일까? 국가에서 노동자를 보장해 주기 위해 만든 최저임금제는 어쩌면 구세대와 현세대간의 갈등만을 야기할 뿐인 규정인 것이 아닐까. 수많은 질문이 뇌리에 흘렀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18400원을 아깝다고 생각하는 내가 짠 건지, 아니면 18400원어치의 노동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사장이 짠 건지 도통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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