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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배원 Jun 01. 2024

오라, 지리멸렬한 인생이여

모순, 양귀자

   어느 날 갑자기 문득, 정말이지 어떠한 계시나 암시도 없이 이 책을 마주한 순간, 거센 부르짖음이 나를 관통했다. “이 책을 읽어야만 해! 이건 틀림없이 분명한 내 취향의 책이다. 내 직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어!”


   SNS 등지에서 갑자기 뜨기 시작한 평소 흥미도 없던 한국소설을, 친구와 놀러 간 영풍문고에서 우연히 발견한 날. 양장으로 아름답게 존재하는, 몇십 년 만에 탈환한 베스트셀러의 완장을 위시하며 등장한 책을 보며 살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친구의 추천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차마 읽을 엄두는 내지 못한 채 책장에 고이 모셔두고 수개월이 지난 어느 날, 시작한 독서 소모임이 나를 완독의 길로 이끌었다. 그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이 책을 언제 읽었을까. 아니 읽기는 했을까. 어쩌면 그것 또한 인생의 모순이다. 나는 이 책을 구매하지 않았어도 책장을 정리하며 발견한, 엄마가 이십여 년 전 구매하고 집에 묵혀둔 헌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리고 독서 소모임이 아니었더라도, 책을 소장하고 있는 한 언제든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을 것이며 그 시기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에도 이토록 큰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삶만큼 지리멸렬한 것은 없다.



   <모순>은 사랑을 통해 인생을 고찰한다. 안 진진(眞眞), ‘참 진’ 자를 두 개나 달았음에도 그 앞에 ‘안’이 붙어 참을 부정한 존재가 된 존재. 그녀는 스물다섯, (책이 쓰인 시대를 고려했을 때) 인생의 갈림길을 앞둔 중대한 시기에 앞으로의 인생을 결정지을, 또 자신과 인생을 나누게 될 운명의 두 남자를 만난다. 한편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의 인생 선생 또한 두 명이었으니, 쌍둥이 엄마와 이모 곁에서 자란 안진진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천천히 그녀들의 인생을 회고하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신의 미래를 대강이나마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의 원인과 과정, 결과가 <모순> 속 내용의 전체를 대변하므로 혹자는 이게 무슨 장편 소설이냐, 시시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진 면목은 그 별거 없는 내용에 빠져드는 흡입력과 몰입감에 있다.


   <모순>은 장편 소설이지만 빠르면 한 시간, 느리면 두어 시간 내로 책을 완독 할 수 있다. 충격적인 점은 이렇게 몰입력이 강점인 소설임에도, 작가는 이 책의 끝에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이라 고백한다는 점이다. 절대 몰입의 단편 소설과 같은 흡입력을 추구하면서도 아주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니. 작가의 말부터 모순투성이다. 그러나 읽는 속도와 반비례하게 우리는 완독을 통해 깊은 여운에 잠길 수 있다. 진진의 최종 선택의 이유가 무엇일지. 그녀에게 인생이란 무엇이었으며, 그녀가 진정 사랑한 사람은 그이가 맞지 않냐며 따져보고 토로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안진진은 활자 속에서 유영하는 한 명의 존재일 뿐이므로, 나는 그녀에게 깨달음을 습득하기 위한 진리를 강요할 수 없다. 그러니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나의 사유만이, 그리고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고정된 진리를 향한 나의 고민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작가가 말한 천천히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은 이 점에서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편 책에서 진진 외에 중요하게 등장하는 인물은 김장우와 나영규, 엄마와 이모지만 나는 이 관계 속에서 진정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김장우와 아빠, 나영규와 이모의 상관관계라고 본다. 그러나 이 책은 ‘엄마’라는 캐릭터로 독자의 눈을 가리고, 결말에서 반전을 선사한다. 그리고 이러한 트릭은 결말의 드라마틱함을 부각한다. 따라서 작가가 극적 표현을 강조하기 위해 선택한 제재는 ‘죽음’이라 볼 수 있다. 되도록 스포일러를 하지 않기 위해 진진의 선택에 관해 묘사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 책을 더욱 깊숙이 이야기하기 위해서 아빠와 이모에 대한 이야기를 생략할 수 없었기에 양해를 구한다.


   사실 진진의 인생에서 엄마는 참으로 미련한 사람이다. 엄마는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누구보다 비참한 삶을 살지만, 그것을 한탄하면서도 즐기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진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아빠와 이모였다. 술을 마시면 폭군이 되지만 누구보다도 엄마를 사랑하는 아빠와, 이모부라는 재미없는 남편과 백지 같은 삶을 사는 이모. 이 둘은 진진의 이상인 동시에 지독한 현실이다. 이토록 두 인물이 그녀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작가는 진진의 독립을 위해 아빠와 이모를 죽임으로써 진진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그리고 그것이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우리는 인생에서 좋은 선택지를 모두 고를 수 없다. 언젠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선택지를 고르는 것의 연속이다. 그리고 진진은 지독한 선택의 기로 속 자신이 지지하고 사랑했던 중요한 사람들의 죽음의 형태를 보며 결말에 도달한다. 사회적 죽음인가 물리적 죽음인가. 어쩌면 그것이 진진에게 있어 진정성과 풍요로움 중 하나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을지니, 결말에서 오는 짙은 허무는 인물들의 허무한 죽음에서 나온다고 방점 찍을 수 있다.   

  


   <모순>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작가가 진진 인생의 버팀목이었던 두 인물을 죽임으로써 결말을 향해 다가섰다는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이 죽음이 아닌 생(生)이었다면, 진진은 조금 더 감정적이었을 수 있다. 혹은 독자에게 인생의 지리멸렬함을 더욱 강렬하게 각인시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작가는 죽음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완고하게 완결 짓는다. 어떻게 보면 꽉 막힌 엔딩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삶의 기로를 확실하게 제시하여 여지를 남기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렇기에 독자는 진진의 선택에 더욱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의도는 명확했으나 혹자가 시시하다 느낄 수 있는 점은 이것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강한 여운이 꽉 막힌 엔딩을 통해서도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느꼈다. 기실 나는 책을 읽으면서도 진진의 최종 선택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고, 그 짐작은 역시나 들어맞았다. 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으므로 나에게 이 책은 진부하고 그저 그런 책으로 남지 않고 신선하고 경이로운 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90년대 쓰였지만 아직도 세련되고 아름다운 문체와 마냥 선하지 않은 독특한 주인공, 그리고 다양한 인물 군상을 통해 양귀자의 집약된 세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찬란한 책.


   우리는 최선에 반(反)하지 않기 위하여 언제나 차악을 선택한다. 그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인생에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선택했다고 믿고 싶은 것일 뿐, 최선이란 없고 차악만이 전부일지 모른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앞으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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