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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기쓰는 복학생 Jan 19. 2024

공(空)

삶에 집중하기 위한 나만의 빈 시공간

문득 이상적인 상황에서 내 집중력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고 싶어졌다. 수학 과제를 끝내는 데 한 시간 넘게 걸리는 오늘 나의 집중력 꼬락서니를 보고, 좋은 음질의 음악을 들으며 공부하겠다는 핑계로 매번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공부하는 건, 아침 점심을 굶은 후 집에 돌아왔을 때 식탁에 차려진 아구찜을 보고도 하루동안 아무것도 안 먹는다고 다짐하는 거나 다름없는 멍청한 짓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곧장 책상 위에 놓인 핸드폰이나 노트북 같은 전자기기와 잡동사니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 치웠다. 그리고 요즘 읽어야지 생각만 하고 막상 읽지도 않아 몇 주째 책상에 올려두고 방치한 박완서의 <나목>을 읽었다.


책 읽기에 한참 몰두하다가 싫증이 나 그만두기까지 걸린 시간은 약 35분이었다. 평소 온갖 방해요소들을 끼고 있을 때는 한 번도 안 끊기고 5분 집중하는 것도 버겁던 걸 생각하면 30분 감탄할 정도지만, 사실 책을 읽다가 도중에 떠올린 잡생각들 대문에 잠깐 흐름을 놓치기도 해 엄연히 따지면 그것보단 짧다. 그래도 생각들의 주제가 대부분 책 내용과 관련된 것들이기도 하고, 주변에 아무것도 놓지 않은 채로 읽었던지라 집중의 질 자체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다.


단순히 투자하는 시간의 양을 넘어, 나에게 주어진 제한적인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할 방법에 대한 고민은 지난 학기부터 해왔지만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이번 학기 들어 수업도 더 많이 듣고, 여름 방학동안 할 일을 준비해야 해 여러모로 바빠질 게 분명해, 그 안에서 삶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소중한 시간을 관리하는데 더 진지하게 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그런 문제의식의 일환으로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책상 위를 깔끔하게 치우고 한 가지 것에만 집중해 본 건데, 군 생활동안 글도 더 수월하게 써지고 책도 많이 읽었던 이유가 괜히 그랬던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다는 듯이 효과 자체는 엄청났다.


그러나 집중을 해치는 요소들은 전자기기 같은 물리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당장 집중을 하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불안, 막연한 고민거리 같은 잡생각들이 가로막을 때가 있는데,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도중에 생각 자체를 안 하는 게 낫다는 말이 뭘 의미한 건지 이해했다. 새롭게 들어오는 자극들을 효과적으로 받아들여 온전하게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선 물리적, 정신적으로 0에 가까운 상태를 만들고 유지해야 한다. 


비슷한 생각에 최근 유튜브 프리미엄 구독을 끊었는데, 유튜브가 핸드폰 스크린 타임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비중이거니와 굳이 볼 영상도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자극에 대한 갈증을 참지 못해 계속 새로고침을 하면서 다른 새로운 영상을 찾는 나의 모습에 어느 순간 일종의 환멸감을 느꼈다. 게다가 부정적인 요소를 줄이는 것을 넘어 집중을 위한 새로운 시공간을 더하기 위해 매일 10시부터 12시까지, 2시간 동안은 책을 읽던 과제를 하던 글을 쓰든 무슨 일을 하는지와 관계없이 전자기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 둔 채 사용하지 않을 거다. 


이게 뭐랄까 전자기기, 특히 노트북으로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도무지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려고 해도 당장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과제들이나 알림 들을 신경 쓰게 되고,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새로운 탭을 여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괘나 긴 시간을 들이는 반면에 마무리한 건 하나도 없어 괜히 마음만 초조해진다. 아무리 강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어도 계속해서 이런 것들에 노출되는 상황 자체를 끊어내지 않고서는 변화가 생긴다는 건 요원해 보였다.


결국 나에게 필요한 건 빈 공간이다. 그 어느 것도 침범할 수 없이 단단히 마감된 채 긴 시간 동안 유지되는 그런 빈 공간. 마음의 안정과 새로운 배움을 위한 빈 공간을 최대한 많이 찾고, 유지하는 게 이번 학기의 목표다. 오늘은 35분이 최대였지만, 앞으로는 꾸준히 시간을 늘려나가면서 책 한 권 정도는 거뜬히 끝낼 수 있을 정도까지 늘려나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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