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꽂히는 음식이나 가게가 생기면, 질릴 때까지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먹는다. 최근에는 학교 근처의 Pho K&K라는 쌀국수 집에 꽂혔는데, 지난번에 점심 약속을 통해 처음 가본 이곳에 빠져든 건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사실 한국에 있을 때 집 근처 서현역에서 자주 가던 사이공 핫팟에 갈 때마다 쌀국수 대신 팟타이를 시켜 먹곤 해서 쌀국수 자체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태국과 베트남 음식 사이의 경계를 너무나도 쉽게 허물고 합쳐버린 그곳과 달리 미국엔 나름 그 경계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덕에 쌀국수 대신 팟타이를 선택할 여지조차 없다.
방학 내내 1일 1식, 정말 배고프다 싶으면 가볍게 두 끼를 먹는 식의 식습관을 유지해 오다가, 방학이 거의 끝나갈 무렵 이사를 가면서 먼 거리를 통학하고, 파이널이 겹치며 정신없는 상황이 이어지니 적게 먹으면서 얻는 에너지로는 도저히 이 불안정한 생활을 감당할 수가 없어 수업 사이 점심시간에 최대한 든든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서 어떻게든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찾아보니 학교 정문 근처에 파는 것들은 죄다 테이크 아웃 위주라 아예 찾아보기 힘들고, 한국 음식 찌개류는 너무 무겁고 짜서 별로고, 미국 와서 처음 먹어본 돈코츠 라멘은 어지간히 음식 가지고 맛없다는 소리 안 하는 내가 봐도 정말 맛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실패하기 힘든 라멘의 실패가 어떤지 경험하게 했다. 결국 며칠 동안 점심 메뉴 고르는데만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다가 항상 집에서 해 먹는 파스타로 귀결되던 지난 날의 시간을 그리워하려던 찰나, 학교에서 거리는 좀 떨어져 있지만 확실한 괜찮은 한 끼를 보장해 줄 수 있는 쌀국수가 새로운 옵션으로 떠올랐다.
한 번 먹다 보니 괜찮아 5일 연속으로 점심으로 쌀국수를 먹었다. 그렇게 알게 된 게 쌀국수에 들어가는 소고기 부위에 따라 종류가 거의 10가지 가까이 되는데, 이전에 처음 올 때는 뭐가 뭔지 잘 몰라 무난한 걸로 고르다가 여러 번 오니 어떻게든 나은 선택을 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 없이 하루에 하나씩 다른 메뉴로 시도해 봤다. 미트볼을 제외하면 다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양지(brisket) 중에서는 미디엄보단 웰던 옵션이 더 좋았다.
또 하나 깨달은 건 쌀국수 역시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국밥과 같이 미리 조리되어 있는 재료들을 한 번에 넣어 곧바로 준다는 점에서, 나오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에 있어서는 패스트푸드와 차이가 거의 없다. 사실 재료만 신선한 걸 쓴다면 햄버거가 국밥이나 쌀국수 같은 것들이랑 비교해도 그다지 꿀릴게 전혀 없지 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국물이 있는 음식을 선호했는데, 그 기호가 지금까지 이어져 뭔가 기력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마다 저절로 국물 음식을 찾는다. 이게 포만감 차이 때문인 걸까. 국물이 없으면 열량이 아무리 높아도 뭔가 부족한 에너지를 제대로 채워주지 못하는 것 같다고 느낀다.
같은 식당을 연속적으로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 사장님도 나를 알아보고, 지난번에 했던 것과 다른 메뉴도 추천해 주시면서 뭔가 식당과 연결점이 생기는 것 같다. 여기서 1년 동안 지내면서도 식당 안에서 먹기보다는 매번 테이크 아웃을 하거나 집에서 해 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이곳을 오는 사람들이 괜찮은 식당 어딨 냐고 물어올 때마다 바로 답하지 못하고 고민하곤 하는데, 식생활도 결국 버클리 생활을 통해 얻는 경험들 중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에 먹는 행위에 있어서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기보다 신선함을 불어넣는 시도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구글맵 리스트에 버클리 주변 식당 카테고리를 만들어서 몇 군데 저장해 뒀는데, 여기 지내는 동안 여러 곳 다녀보면서 맛에 관한 다양한 경험을 좀 해볼 생각이다. 계속 쌀국수만 먹다가는 이전의 판다 익스프레스처럼 한순간 완전히 질려버려 끊어버릴지도 모르는 노릇이니, 사람도, 음식도 뭐든 그 끌림이 전부 소진될 때까지 내버려두지 말고 적당히 나눠서 아껴 즐기는 미덕을 실천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