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친구와 계엄령에 관한 대화를 나눴을 때, 정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넓은 주제로 옮겨갔다. 과거 내가 보인 정치적 성향을 돌아보면서, 어떤 정치 성향을 가지냐와 상관 없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에 빠지고 그걸로 반대쪽에 서있는 가치관이나 생각을 정의롭지 않은 것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만큼 개인이나 사회에 해로운 게 없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정치의 본질은 더 나은 삶이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타협의 과정에 있는데, 나와 다른 생각을 제대로 들어보기도 전에 불의로 여기고 배척하려는 태도가 깊게 자리잡은 순간 본질 자체가 어긋나버리는, 소위 정치병에 빠지게 돼서 정치에 무관심한 것 마냥 못한 결과가 생기는 거다.
7년 만에 또다시 발생한 대통령 탄핵이라는 이슈를 대하는 여당의 태도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던 반대를 하는 걸 넘어서 찬성한 의원들을 색출해내서 불이익을 줘야한다는 국민의 힘 주류에게서 비겁함과 소인배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만, 냉정하게 총선에 있어서는 더 이상 전국구 정당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할 정도의 마치 영국의 SNP를 연상시키는 영남 중심 정당이 된 국민의 힘에 있어서 그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건 사실상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내려놓겠다는 것이나 다름 없기에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본질을 저해하는 심각한 사안에서 본인의 소신조차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거나 표를 주는 건 내 생각과 거리가 멀기에 어떤 극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국민의 힘에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길 일은 당분간 없을 것 같다. 당장 이번 정권의 2년 반가량의 시간은 윤석열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 표를 줬던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었으니.
사족이 조금 길어졌다. 최근 고장난 계산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던 와중에 지금의 문제 의식이 덧붙여져 과거의 순간을 떠올렸다. 한동안 나의 기억 밖에 존재하던 당시의 일을 주변 사람들이 기억할지는 모르겠다만, 지금 그때를 돌아보니 여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지만 그 상황을 대하는 태도에 깃든 나의 옳음에 대한 그릇된 집착을 떠올리면 그 행동의 바탕이 되는 생각들에 대해서는 반성하게 되는 부분이 있다. 뭐랄까 종종 과거를 돌아보면서 드는 생각이라면, 옳은 행동을 하는데 있어서 그 이유가 단순히 옳음이라는 명분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라, 잘못된 행동을 한 타인에게 망신을 주려는 못된 심보가 작용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어쩌면 학창 시절에 모든 일을 선생님에게 일러바치는 비겁한 태도도 그런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3, 입시가 끝나고 기숙사를 떠나기 전 많은 사람들이 그동안 쓴 물건들을 중고로 내놓곤 했다. 보통 시험 볼 때를 제외하면 거의 쓸 일이 없던 계산기나 졸업한 이후에 쓸 일이 없는 텍스트북 같은 것들을 주로 팔았다. 내가 기억하는 그 사건이라면, 당시 친분이라고는 전혀 없던 동기가 올린 중고 판매글에서의 TI Nspire 가격에 관한 문제였다. 정확한 가격이 얼마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일부러 네이버 검색 결과 중에서도 해외 직구를 통해 가격이 비싸게 올라와있는 걸 사진으로 찍어 올리면서 중고 판매가를 실제 정가보다 높게 불렀던 거였다.
그걸 보고 화가 날 정도인가는 개인차가 있겠지만, 당시 실제 정가랑 비교해도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으로 올려서 잘 모르는 후배 한 명쯤은 낚으려는 태도에 어이가 없었다. 그 사람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인식이 작용했을 수도 있겠지만, 어딘가 악의적으로 보이는 그 행동을 어떻게든 바로잡아야한다는 지금 보면 그정도로 해야하나 싶은 사명감 같은 걸 가졌던 건지, 그 게시글에다가 직접 댓글을 썼을 뿐 아니라 면전에 대고 왜 그런 식으로 해서 이득을 보려고 하냐는 투로 비판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뒤로 어떻게 됐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어쨌든 그때의 나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에 주체하지 못할 정도의 분노를 느끼곤 했다. 대놓고 중고가를 정가보다 비싸게 파는 그런 작은 사건 뿐만 아니라 당시에 조국 사태를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보이는 민주당의 위선, 미래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탈핵이라는 이념에 의존한 채 대책없는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비전없는 에너지 정책 등, 당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이유는 어쩌면 감정을 투영할 세상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지도. 그때는 잘 안 풀리는 인생에서 남 탓을 쏟아낼 대상이 필요했던게 아닐까. 그 시절 친구랑 롤만 하면 욕하고 탈주하던 버릇도 그런 연유에서 였을 수도.
나이를 먹으면서 찾아온 변화라면 분노라는 감정을 표출하기 전에 한 번은 되돌아보는 습관이 생겼다는 거다. 지금도 쉽게 흥분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긴한데, 글쓰기를 통해 상황을 쪼개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긴 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런 일련의 변화를 통해 깨달은 거라면, 우리가 이성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몰아붙이는 건 의외로 감정적인 배경에서 비롯되곤 하는데, 일반적인 경우에선 그게 분노였다. 단순히 나의 사례로 일반화하기도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문제의 본질에 집중한 채 해결방안을 가지고 대화를 하려고 하기보다는, 일방적으로 한 쪽을 악마화하고 비난하는 경우들은 한 가지 깨달음으로 귀결됐다. 개인적인 생각이라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들을 저해하는 온갖 소모적인 갈등의 본질에 이런 감정들이 깔려있는 게 아닐까. 아무런 감정 없이 어떤 현상을 바라본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우리가 기분을 풀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서 갈등을 대하는 건 어느 쪽에나 해롭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덧붙이자면, 요즘 탄핵 이슈 때문에 유튜브에서 정치 컨텐츠를 어느 때보다도 많이 보는데, 계속해서 똑같은 메시지에서 아주 조금의 변주만 주는 컨텐츠들을 반복해서 보는 건 단순히 정치나 특정 이슈에 관한 인사이트를 얻는 걸 넘어 자신이 듣고 싶어하는 정치인이나 세력에 대한 비난을 대신 해주고, 시스템에 대한 분노를 충족시켜주는 무언가를 원하기 대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번 계엄 사태는 정당화할 일말의 여지조차 없지만, 탄핵 이후 우리의 정치에 고질적으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본적으로 정치 경험도, 인물로서 카리스마도 없던 윤석열이 대통령이 된 데에는 그가 문재인의 목을 제일 잘 벨 수 있는 최고의 망나니였기 때문이라고 본다. 국민의 힘 지지자들은 경선에서부터 국가의 미래 비전을 다지기 이전에 윤석열이 그저 자신들이 혐오하는 문재인에 대한 완벽한 안티테제라고 생각했기에 그를 지지했고, 정치인 윤석열의 지지의 본질은 그 현상에서 비롯된다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그래도 이재명은 안 된다는 이유로 대선에서 그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그런 비겁한 행동의 집약체로서 본인이 부정선거 세력에 맞서는 정의의 수호자라 굳게 믿는 대통령이 가져온 파장은 쉽게 감당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게 됐다. 담화문을 들을수록 짜증이 밀려오는 그의 호소는, 계산기를 정가보다 비싸게 올리는 행동을 참교육 해야한다고 굳게 믿었던 19살의 나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잇값만 더 오른 지금, 그때로부터 얼마나 더 나아갔는지 의문이다. 나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행동이나 생각으로부터 얼마나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