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나들이
인사동의 바람은 언제나 남다른 감정으로 다가온다.
그건 설렘이었다.
허리 부상으로 긴 시간 활동에 제약이 있다 보니 그동안
생활 반경 역시 사는 곳을 벗어나지 못한 약 일 년이란 시간
그러다 보니 모처럼 찾게 된 인사동의 거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전자 바이올린을 매만지고 있던 고개 숙인 금발의 아티스트, 고개를 숙인 모습을 보며 영락없는 외국인이라 추측하며 돌아서는데 감미로운 전자 바이올린의 선율이 어깨너머로 들려왔다.
운치를 더하는 멋스러움이었다.
‘가을이 깊어가네.’
인사동의 평일은 내국인 외국인이 뒤섞여 거리의 움직임이 매우 활기찼는데 내 마음도 덩달아 흥겨웠다.
그날은 전시회가 있어서 나 또한 그들 속에서 딸과 함께 그곳을 거니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오프닝 시간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차를 마시기로 하고 골목 안을 기웃거리다 고풍스러운 찻집을 발견하고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찻집 내부로 들어서니 현대적인 미와 고전적인 미가 조화로운 게 눈길을 끌었다. 전통 문양이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자리에 딸과 마주 보고 앉아 따뜻한 연잎 차와 녹차(세작)를 주문했다.
주문한 차를 기다리며 독특한 문양 패턴을 올려다보며 흰 여백과 연붉은 문양의 조화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단층 문양이 주는 조화로움이 대담하고 멋스러웠다. 아주 한국적인 멋이 피어나고 있었다.
"와! 멋지다. 찻집이 정말 운치 있는 곳이구나."
난 흐뭇한 마음에 딸을 보며 감상에 젖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여긴 정말 인사동 그 자체네. 이런 곳에서 마시는 차 맛은 더 좋을 것 같아."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시선을 던지든 딸아이도 찻집의 매력을 즐기는 것 같았다. 나 역시 분위기에 취해 차 맛이 더 깊어지리라 생각되었다.
잠시 뒤 기다리던 차가 나왔는데 보온병도 한 사람당 각각 하나씩 따라 나와 차를 즐기는 나로선 매우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진하게 우러나온 연잎 차,
차를 마주하면 색에 한 번 반하고 맛에 한 번 더 입이 즐거우니 그 시간이 행복하다.
작은 찻잔에 또로록 흐르는 연잎 차를 코로 먼저 느껴보았다. 은은한 연잎 향이 풍부하게 스며들며 부드러웠다.
몇 해전에 집에서 연잎 차를 만들어 마셔본 기억이 문득 떠 올라 다시 그 맛을 느껴보았다.
"음! 맛이 연한 게 은은한 색만큼 부드럽고 향긋하네."
내 말을 듣던 딸도 녹차(세작)를 입으로 가져가며 향을 즐겼다.
"맛이 강하지 않고 좋아."
딸의 한 마디에 나 또한 그 맛이 궁금하여 입을 적셔보니 녹차 특유의 은은하며 쌉싸래한 맛이 고소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차의 매력에 푹 빠져있던 우리 모녀는 남편과 만나기로 한 갤러리 앞으로 가야 했기에 이십 분 가량 머물던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짧은 시간 가졌던 여유라 다소 아쉬웠지만 차 한 잔이 주는 행복을 오랜만에 딸과 함께 만끽할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다.
가을은 이렇게 또 깊어간다.
밖으로 나오니 갤러리로 가는 인사동 거리는 여전히 많은 인파로 분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