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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티스트 Jan 21. 2024

삶의 길목

그녀에게도 따듯한 봄이 왔으면

엘리베이터를 내려 내부로 들어서니 옅은 파스텔 계통의 삼 인용 패브릭 소파 그리고 중앙엔 나무 테이블이 놓여있고 맞은편에는 일인용 소파가 두 개 나란히 짝이 되어 놓여있었다. 추운 바깥공기와는 사뭇 다르게 온열기가 돌아가는 실내 온도는 따듯한 분위기를 감싸고 훈훈하게 느껴졌다. 양손 가득 영양식 먹거리를 들고 앞장선 남편 뒤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다가 가로놓여 있는 유리 벽 저편으로 눈길을 돌렸다. 


유리 넘어 저곳으로 가야 하는데 자동문의 장치는 흔히 아는 그런 게 아니었다. 그리고 투명 유리 너머 두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하얀 테이블을 응시하는 희끗희끗한 머리칼의 남성은 이마의 굵은 주름이 두드러져 보여 더욱 고독해 보였으며 그 뒤로 푸른 소파에 깊이 파묻힌 몸을 하고는 웃음기라고는 하나 없는 나이 든 여인과 눈이 마주쳤을 때 느꼈던 그 공허함은 왠지 쓸쓸한 영혼을 마주하는 듯했다. 

투명 유리 너머 크지 않은 규모의 실내는 모든 게 정지된 듯 고요한 이미지로 내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자동문인데 자동문 역할을 못 하는 유리문 앞에서 잠시 멈칫하던 남편과 나, 남편은 인터넷에서 찾아낸 전화번호를 눌렸다. 잠시 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지더니 저편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육십 대 정도의 여성이 웃으며 우리를 향해 걸어왔고 꽁꽁 잠겨있던 유리문이 동시에 시원하게 열렸다. 

순간 막혔던 장벽이 무너지고 공기가 소통하는 경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왜 그런 감정이 일시적으로 들었던 것인지는 그 장소를 마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남편도 동시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하니까 말이다. 


석 달 전 넘어져 꼬리뼈 골절로 수술을 하신 시고모님을 찾아뵙기 위해 며칠 전 요양원을 찾은 날의 첫인상이다. 

평소 워낙 건강하신 분이라 소화제 한 번 드신 적이 없다는 말씀처럼 여든일곱의 연세에도 회복이 무척 빨라 담당 의사 선생님도 놀라셨다고 한다. 그런데 수술 뒤 재활치료원을 거쳐 얼마 전 요양원으로 들어가셨다. 신체의 건강과는 다르게 더해지는 치매 증세로 요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 연세에 흰 머리칼 하나 찾아보기 힘들 만큼 새카만 머리를 자랑처럼 하시던 분이다. 그만큼 밝고 경쾌한 성품을 지닌 분인데 심해지셨다는 치매 증세에 난 그녀를 만나 뵙기가 몹시 두려웠다.


요양원 간호사와 함께 걸어 나오던 나이 든 여인은 전에 보았던 그 모습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우리 내외를 보며 무척 반가워하시는 그녀의 미소는 여전했기에 난 염려되었던 마음을 조금은 내려놓을 수가 있었다. 기억력이 다소 흐려지긴 했으나 걱정했던 만큼은 아니었기에 감사한 마음도 먼저 들었고. 

눈시울을 붉히시는 그녀를 보며 울컥 올라오는 감정을 추스르기가 우리 내외 역시 힘들었는데 어느새 밝은 성품 그대로의 모습처럼 활짝 웃으시는 그 모습에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나오던 눈물 꼭지도 잠글 수 있었다. 


‘여전하시다. 언제나 밝게 웃고 계셨던 분’ 


검은 머리가 제법 옅어졌지만, 머릿결이 오히려 그녀를 더욱 곱게 만들고 있었다. 기억력도 희미해진 어느 부분을 제외하고는 다행이라 할 만큼 유지하고 계셔서 감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잃어가는 자신의 기억력을 아쉬워하며 서글퍼했다. 

여전히 밝게 웃던 그녀의 모습 뒤로 쓸쓸한 내면이 보였다. 


“빨리 가고 싶은데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네.”


우린 잠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특유의 밝은 그녀의 성품은 그대로였고 여전히 경쾌했다. 그래서 마음이 더 아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몇십 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린 그곳에서 일어나야 했다. 


남편이 다시 요양원으로 전화를 하고서야 열리는 문


그녀가 다시 유리문 저편으로 들어가고 우린 그녀를 마주 보고 서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못내 아쉬워하는 그녀가 자신의 이름이 적힌 방으로 들어가고 우리도 그곳을 돌아서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는 말없이 걸었다. 

그새 눈이 약하게 내리고 있었다. 

날씨까지 구색을 맞춰 궁상을 떠는 건지. 

서울에서 벗어나 위치한 그곳은 쌀쌀한 기온 탓인지 아직 눈이 녹지 않고 군데군데 그대로 있었다. 저 멀리 긴 등줄기를 따라 하얗게 덮여 있는 산을 바라보며 추위가 타고 드는 듯하여 난 옷깃을 세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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