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목에서
삶에는 어느 갈래의 길이 매일 나타났다 사라지고 또 불쑥 고개를 내밀고 나타나길 반복한다.
참으로 요지경 인생이다.
면발처럼 꼬불꼬불 길이라 여겼던 것이 직선으로 뻗은 곧은길일 때도 있고 막상 막혔다고 생각한 막다른 골목길 끝이 다시 옆으로 환하게 길을 내어주기도 한다.
나의 삶을 돌아보면 수 많았던 인생 길이 막연하게 펼쳐져 있기도 했고 뜻하지 않았던 행운이 찾아오기도 했던 오늘이라는 삶이 있었다. 현재도 그런 반복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고 말이다.
그림과 더불어 동반된 삶, 학창 시절 나의 작품에 대해서, 미래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교수님의 높은 신망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의 활동을 뒤로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또 다른 삶에 올인한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외부로는 활동하지 않고 글도 쓰고 작업도 가끔씩 하며 만족한 오늘의 삶이 있었다. 그 시간은 또 다른 하루의 행복이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 그림 작업
설레었던 시간과 더불어 단절된 시간과의 괴리감, 급변하는 그림 장르도 난 너무 무디게 바라본 게 아닌가 고심한 시기도 있었다. 그러므로 난 다시 붓을 들며 많은 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했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그동안 해 오던 작업 스타일이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건지 무척이나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소재의 정체성마저 무척 흔들렸기 때문이다. 몇 년간 정체성의 혼란은 내면의 갈등과 더불어 거듭되었고 그런 기간을 조금씩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과정은 공백기의 혹독한 대가였을 것이다.
어느 날 상념의 끝자락을 잡고 생각을 정리해 가던 날,
난 왜 작업을 하는가? 그날은 좀 더 깊이를 더한 시간이 지속되었다. 그 끝은 행복이었다. 나와 내 가족 나아가 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에서 행복을 느끼게 하고 싶은 간절한 무엇이 마음을 움직였다.
오늘이라는 눈부시도록 특별한 하루의 삶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렇기에 외롭고 고단한 길이지만 작업대를 떠나질 못한다. 그림은 또 다른 나의 일기와도 같기에.
전시회도 하고 인스타그램이나 브런치 스토리를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많은 작가들의 작품과 삶을 읽게 되면 경험의 공감대가 마음속 깊이 형성되어 큰 나무의 단단한 뿌리내림을 느낀다. 특히 젊은 작가들의 고뇌가 그대로 느껴지는 날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요즘처럼 녹록지 않은 시대의 현실에서 나를 포함한 작가들에게 오늘이란 삶이 눈부시도록 특별한 날이 되길 응원해 본다.
오늘은 새로운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