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 - <어린왕자> 中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동화의 형식으로 만들어진 작품이지만, 작가가 작 중 첫 페이지에서 밝힌 듯이 <어린 왕자>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가 아닌 어린이였던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어린왕자>의 내용을 간단히 줄여서 말하자면,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조종사가 자신의 작은 별에서 여러 별을 거쳐 드디어 지상에 내려온 어린 왕자의 이야기를 듣고, 결국 어린 왕자가 보아뱀에게 물려 자신의 별로 돌아간 이야기이다.
<어린 왕자>는 인간의 고독에 대한 극복, 사랑과 소유를 ‘어린 왕자’를 통해서 표현한다. 책 속 어린 왕자는 아이 같은 자신의 순수성으로 피안을 통해 세계를 성찰하는 인물이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어린 왕자>는 아이들이 읽기에는 다소 난해한 책이지만, 어른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이해와 더불어 자신들이 잊혀왔었던 ‘순수성’을 재고할 수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상념에 젖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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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에서 어른들은 성장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자기 욕망에 눈이 멀어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가 첫 번째로 도착한 별은 왕 말고는 아무도 없는 곳이었다. 어린 왕자는 그곳에서 왕과 짧게 이야기하게 되었다.
어린 왕자는 왕을 보고 “왕은 어찌 됐든 자기 권위가 존중되길 바랐던 것이다. 그는 불복종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절대 군주였다.”(p. 43)라고 말했다. 그리고 어린 왕자가 지루해져 다른 곳으로 떠나려고 하자 왕은 어린 왕자에게 직위를 줄 테니 떠나지 말라고 한다. 하지만 왕자는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하는 수 없이 왕은 그를 대사로 임명했다.
여기서 왕은 자신 이외의 존재에게 명령만 하고 싶은 권력의 화신이다. 안타깝지만 왕은 이분법적인 인간이기에2) 세상의 어떤 존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왕은 어린 왕자와 지속해서 이야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로 도착한 별은 찬미 받고만 싶어 하는 허영쟁이가 살고 있었다. 허영쟁이는 처음 어린 왕자를 보고 “아! 아! 찬미자가 하나 찾아오는구나!”(p. 49)라고 말하고, “허영쟁이들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찬미자로 보이기 때문이다.”(p. 49)라고 말했다. 그리고 허영쟁이들은 자신을 “칭찬하는 말밖에 듣지 않는다”(p. 51)
무조건적으로 자신을 숭배해달라는 말만 하는 허영쟁이를 본 어린 왕자는 그 모습에 질려 두 번째로 도착한 별을 떠났다. 허영쟁이 또한 왕과 마찬가지로 자신만 생각하는 허영심 가득한 독단자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허영쟁이는 세상의 어떠한 존재와도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없었다.
세 번째로 도착한 별은 술꾼이 살고 있었다. 빈 술병 한 무더기와 가득 찬 술병 무더기를 앞에다 둔 술꾼을 본 어린 왕자는 그와 짧게나마 대화하고 그 별을 떠난다.―술꾼과 어린 왕자의 대화는 순환 논리에 대표적인 예시이다.―
“거기서 뭘 하고 계시죠?(어린 왕자)/ 마시고 있다(술꾼)/ 왜 마셔요?(어린왕자)/ 잊으려고(술꾼)/ 무얼 잊어요?(어린 왕자)/ 내가 부끄러운 놈이란 걸 잊기 위해서(술꾼)/ 뭐가 부끄러운데요?(어린 왕자)/ 마신다는 게 부끄러워!(술꾼)”(p. 52) 이 모습을 본 어린 왕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어른들은 아무리 봐도 아주아주 이상해.”(p. 53)라고 생각했다.
어린 왕자는 술꾼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다. 왜냐하면 술꾼은 난해하고 배반(背反)적인 어른을 상징하고, 어린 왕자는 술꾼과 달리 순수한 동심을 상징한다. 어린 왕자는 술꾼을 도와주려고 했지만, 순수한 동심을 가진 인간이 배반적인 인간을 도울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순환 논리에 갇힌 인간 즉, 자기 밖의 것에는 무관심한 사람은 자기 밖으로 탈출할 수 없으므로 어린 왕자는 술꾼을 도와줄 수 없었다. 도움을 줄 수 없었던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네 번째 별은 사업가가 사는 별이다. 사업가는 계속 숫자만 세고 있었다. 그 모습에 어린 세알린왕자는 “뭐가 억이고 백만인데요?”(p. 56)라고 묻자 사업가는 우주의 별들을 세고 있고, 세던 이유는 별을 소유하기 위함이었다. 그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그럼 그 별을 소유하면 아저씨에게 무슨 소용이 있는데요?”(p. 57)라고 물었고, 사업가는 “부자가 되지”라는 말과 부자가 되면 다른 별을 소유하는데 소용이 있다고 말했다.
사업가가 소유에 소용에 관해 계속 강조하자 어린 왕자는 “나는요. (중략) 나는 꽃을 하나 가졌는데 날마다 물을 줘요. 화산 세 개를 가졌는데 주일마다 청소를 해요. 불 꺼진 화산도 같이 청소하니까요. 지금은 죽은 화산이지만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요. 그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화산한테도 이롭고 꽃한테도 이롭지만, 아저씨는 별들한테 이로울 게 없어요.”(p. 58)라고 말했다.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사업가는 침묵했고,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정말이지 어른들은 확실히 이상야릇해.”(p. 58)라고 말한 뒤 떠났다.
사업가는 세상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하는 탐욕의 상징인 어른이다. 그는 소유 관계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든다. 그는 자신이 소유하지 못한 것에 관한 관심은 상당하다. 그렇지만 정작 자신이 소유한 것에는 관심 두지 못했고, 정성을 다한 적이 없다. 그러니 사업가는 어린 왕자의 말에 아무런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별은 별들 중 가장 작은 별이었다. 이 별은 가로등의 불을 껐다 켰다 하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이 별에 도착했을 때 “어쩌면 이 사람도 엉터리일 거야.”(p. 59)라고 처음에는 편견을 갖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왕이나 허영쟁이나 술꾼이나 사업가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적어도 그는 “가로등에 불을 켜면 별 하나나 꽃 한 송이를 새로 태어나게 하”고(p. 59), “가로등을 끄면 꽃이나 별을 잠재우”(p. 59)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고, 유익한 일로 보았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그’에게 이 일을 왜 하는지 물어봤고, ‘그’는 “명령이야”라고 답했다. 어린 왕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왕자에게 자기 고백을 한다.
“나는 여기서 아주 끔찍한 일을 하고 있단다. 한때는 이치에 맞는 일이었지. 아침에 불을 끄고 저녁에 불을 켰었어. 낮엔 쉴 시간도 있었고 밤엔 잠잘 시간도”(p. 60) 있었지만, “별은 해가 갈수록 점점 빨리 돌고 명령은 바뀌지 않고! (중략) 그래서 이제는 1분에 한 바퀴씩 돌고 있느니 나는 단 1초도 쉴 시간이 없지. 1분마다 한 번씩 켰다 껐다 하는 거야!”(p. 60)
이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별이 엄청 작으니까 “좀 천천히 걷기만 하면 계속 햇빛 아래에 있을 수 있어요. 쉬고 싶으면 걷는 거예요……. 그럼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낮이 길어질 거야.”라고 도움을 주지만, ‘그’는 자신에게 별로 대단한 도움이 아닌 것 같다며 도움을 무시했다.
누군가는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는 ‘그’를 보고 몰비판적이고 바보 같은 어른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어린 왕자가 봤던 사람들 중 가장 우스꽝스럽지 않은 사람은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는 ‘그’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전의 사람들과 달리 이기적이지 않고, 다른 것에 정성을 들이고 있는 성실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별은 너무 작아서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아쉬워하며 여섯 번째 별로 이동했다.
여섯 번째 별은 열 배나 더 넓은 별에 노신사 한 명이 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리학자’라고 소개했다. 지리학자는 “어디에 바다가 있고, 어디에 강이 있고, 도시가 있고, 사막이 있는지 아는 학자”(p. 64)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의 별에 큰 바다가 있는지, 산이 있는지, 도시와 강과 사막이 있는지 물어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알 수 없다.’였다.
지리학자는 탐험가와 달리 자신들이 너무 중요한 사람들이라서 돌아다닐 수 없고 “자기 서재를 떠나지 않는”(p. 66) 존재이며, 서재에서 탐험가의 기억을 기록하는 사람이었다. 즉 타인에게 의존해서 자신의 말을 할 수 있는 존재였다.―반대로 말하자면 타인이 없다면, 그들은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존재다.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에게 자신이 어디로 갔으면 좋겠냐고 물어봤다. 이에 지리학자는 “지구가 괜찮아. (중략) 그 별은 평판이 좋아……”(p. 68)라고 답했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지리학자의 조언대로 지구로 떠났다.
일곱 번째 별인 지구는 “왕이 111명(물론 흑인 왕도 포함해서), 지리학자가 7천 명, 사업가가 90만 명, 주정뱅이가 750만 명, 허영쟁이가 3억 1천1백만 명, 다시 말해서 거의 20억이나 되는 어른들이 살고 있다.”(p. 70)
여기서 어린 왕자가 어른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알 수 있다. 그는 지구에 도착하기 전 왕, 지리학자, 사업가, 주정뱅이, 허영쟁이를 만나고 왔다. 그리고 이들 모두를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구는 20억이나 되는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을 ‘어른들’이라 표현했다.
어린 왕자에게 어른들의 세계는 이질적이고 기괴하다. 어린 왕자에게 ‘어른들’이란 진정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이기적이고,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이다. 그런데 지구에는 이러한 인간들―어른들―이 20억 명이나 존재한다고 표현한다. 어린 왕자가 지구를 이상한 세계라고 직간접적으로 말함으로써 어른들에게 반성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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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한 뒤 여러 가지 경험을 하게 된다. 경험 중에서 장미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때 어린 왕자는 본인의 행성에 홀로 있는 장미꽃을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반성하고 있었다.3)
자기반성 후에 어린 왕자는 “나는 내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꽃을 가진 부자라고 생각했는데, 흔한 장미꽃 하나를 가졌을 뿐이야. 거기에다 무릎밖에 안 차는 화산 세 개, 그것도 하나는 영원히 꺼져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걸 가지고 어떻게 훌륭한 왕자가 되겠어.”(p. 81)라고 생각한 뒤 풀밭에 엎드려 울었다.
이 장면은 어린 왕자가 현실을 직시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에서 어린 왕자가 더 이상 순수했던 때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려준다. 그는 “‘흔한’ 장미꽃 ‘하나’”, “화산 ‘세 개’, 그것도 ‘하나’”라고 수치화해서 이야기한다.
이전에 어린 왕자가 사업가와 이야기했을 때, 그가 말했던 숫자는 대상을 위한 관사일 뿐이었고, 대상의 성질을 중점적으로 이야기했다.4) 하지만 이젠 숫자의 의미가 아주 달라졌다. 왜냐하면 “‘흔한’ 장미꽃 ‘하나’”, “화산 ‘세 개’, 그것도 ‘하나’”라는 말은 숫자가 대상이 돼 버렸기 때문이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이상야릇하다고 말하고, 생각했던 “어른들”이 돼 버렸다. 이전까지 어린 왕자는 추상적으로든 감각적으로든 대상의 성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하지만 그는 이제 어른들처럼 대상의 성질을 무시하고, 숫자로 성질을 대신 표현하게 되었다.
더불어 숫자의 틀 갇힌 어린 왕자는 자신이 가진 대상들이 유일하지 않았고, 수적으로도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자신이 부자였다는 착각―동심―에서 벗어나 어른들이 사는 세상―세속―으로 넘어왔다. 더 이상 어린 왕자는 동심의 세계에서 살 수 없게 됐다. 그래서 그는 엎드려 울었다.
슬퍼하고 있을 때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났다. 그는 여우에게 “이리와서 나하고 놀자. (중략) 난 아주 슬퍼……”(p. 83)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우는 자신이 길들지 않았기 때문에 어린 왕자와 같이 놀 수 없다고 말한다. 어린 왕자는 여우의 말에 의문이 생겨 ‘길들인다.’가 무엇인지 물어봤다. 그러자 여우는 “그건 모두들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중략)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p. 85)
연이어 여우는 “너는 아직 내게 세상에 흔한 여러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게 없는 한 아이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나는 네가 필요 없어. 너도 역시 내가 필요 없지. (중략) 그러나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 필요하게 되지. 너는 나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야. 나는 너한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될 거고……”(pp. 84~85)라고 말해줬다.
마지막으로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길들이려면 아주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처음에는 나한테서 조금 떨어져서 바로 그렇게 풀밭에 앉아 있어. 난 곁눈질로 너를 볼텐데, 너는 말을 하지 마. 말은 오해의 근원이야. 그러나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이 앉아도 돼……”(pp. 86~87)라며 길들이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줬다.
작품 속 ‘길들인다’는 말은 자신과―나와― 타자와의 ‘관계 맺음’을 의미한다. 결국 ‘길들인다’는 자신의 삶에 일부분을 그 타자로 채우는 것이고, 타자 또한 그의 삶에 일부분을 ‘나’로 채우는 것이다. 서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로 서로를 길들였을 때, 서로의 존재는 서로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것”이 된다. 결국 ‘길들인다’는 ‘권력’, ‘부’, ‘명성’과 같은 욕망에서 오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볼 수 없고, 허례허식 없이 ‘마음으로·온몸으로 다가감’을 의미한다.
여우와 어린 왕자가 헤어지게 될 때, 여우는 그에게 “내 비밀은 이거야. 아주 간단해.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 중요한 것은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중략) 네 장미를 그토록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너의 장미에게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 (중략) 사람들은 이 진실을 잊어버렸어. (중략) 그러나 너는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 너는 네 장미한테 책임이 있어……”(p. 90)라고 말해줬다.
여우는 눈으로 볼 수 없는 가치에 대해 중요하게 말한다. 그는 어린 왕자에게 욕망―눈으로 보이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즉 욕망이 아닌 가치 덕분에 어린 왕자의 별에 있는 장미 한 송이를 다른 장미들보다 더 소중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한다.
사람들은―어른들 혹은 우리는― 이 사실을 잊어버렸다. 앞서 말한 사업가의 예시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모두 욕망에 눈이 멀어버렸다. 눈이 멀어버린 우리는 기존의 것들에 소중함을 생각하지 않고, 기존의 것들에 관한 관심을 새로운 것으로 돌린다. 그렇게 우리는 기존의 것들을 내팽개쳐버린다.
진작에 이를 알아차린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너는 잊으면 안 돼.”라고 말한다. 이를 강조한 이유는 욕망에 눈이 멀지 않고,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가치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모든 관계에 대한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서로의 삶의 일부를 서로로 채워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여우는 “네가 길들인 것에 너는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어.”라고 어린 왕자에게 말했다.
어린 왕자는 여우를 통해 관계에 대한 책임, 가치의 중요성을 배웠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책임과 가치의 중요성에 관해서 정확하게 이해해 점점 더 성숙해지고 있었지만, 결국 ‘성숙’의 의미는 ‘좀 더 나은 어른이 됐다.’라는 의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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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관계에 대한 책임, 가치의 중요성을 어린 왕자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렇지만 여우는 되려 어린 왕자를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가고 싶어 했지만, 여우에게서는 돌아가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결국 그가 다시 순수했던 때로 회귀할 방법은 오직 ‘뱀’에게 있었다.
어린 왕자와 뱀의 첫 번째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 대화에서 뱀은 추상적으로 자신의 존재에 의미를 어린 왕자에게 알려준다.5) 뱀은 “나는 너를 배보다 더 멀리 데려갈 수 있어. / 누구든지 내가 건드리기만 하면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가지”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어린 왕자는 “그런데 너는 왜 늘 수수께끼로 말하니?”라고 뱀에게 묻는다. 그러자 뱀은 “나는 그걸 모두 풀지.”라고 어린 왕자에게 답한다.
언뜻 보기에는 뱀의 말이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보일 수 있다. 그렇지만 뱀의 말은 문제(問題)의 형태이다. 여기서 우리는 뱀에게 물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뱀은 어린 왕자에게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린 왕자에게 문제를 주어 직접 해석하게 만들고, 해석 후 선택하도록 만들었다.
이후 어린 왕자는 여러 가지 것들과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뱀의 문제를 해석해냈다. 해석한 어린 왕자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졌다. 지구에 남을 것인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다시 말해 이 선택지는 ‘어른으로 남을 것인가?’ 혹은 ‘동심으로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어린 왕자는 뱀을 두 번째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선택해놓고 있었다. 어린 왕자는 “네가 가진 독은 좋은 거니? 오래 아프게 하지 않을 자신 있니?”(p. 106)라고 뱀에게 물어봤고, 비행기 조종사인 아저씨에게 “나도 오늘 내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하며, 자신이 있던 곳으로, 순수했던 때로 돌아가길 선택했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뱀에게 물려 “나무가 넘어지듯 천천히 넘어졌다.”(p. 114)
어린 왕자는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지구에서는 도저히 순수성을 갖고 살아갈 수 없었고, 오히려 자신이 이상야릇하다고 말했던 어른의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다. 여우를 만나 그는 도움이 되는 조언을 얻었지만, 그 조언은 되려 어린 왕자를 ‘성숙한 어른’으로 만들어 놨다. 더 이상 지구라는 속세에서 살고 싶지 않았던 어린 왕자는 뱀의 도움을 받고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어린 왕자는 결국에 자기 별로 돌아가기 위해 뱀에게 물린다. 그리고 육안적이고 욕망적인 삶이라는 우로보로스적인 시간을 본인의 의지로 거절해 관철한다. 어린 왕자의 관철은 되찾고 싶었던 ‘순수성’을 위한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통해 우리는 순수성을 재고된다.
어린 왕자의 죽음은 순수성을 위한 회기였다. 더불어 <어린 왕자>에서는 만일 어른인 당신이 순수성을 잃어버린다면―잊어버린 것과는 다르다!― 죽음과 동치 되는 노력과 희생을 해야지만 되찾을 수 있다고 넌지시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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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더 다채롭고 풍부하게 살기 위해서, 미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감수성이 얼마나 두터운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두터움은 우리가 새로운 감수성의 발견이 아닌 기존에 숨겨져 있던 감수성의 발견에서 굳고 깊어진다. 고심하고 시간을 들여 다시 발견한 감수성은 아마 우리가 잊고 살았던 ‘순수성’이다. 그리고 순수성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진정으로 감수(感受)하기 시작한다.
“어른들도 처음엔 다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걸 기억하는 어른들은 별로 없다.)”(p. 5)
어른이 된 우리에게 순수성은 모래성처럼 사라지는 꿈이 된다. 그렇지만 그 꿈은 무의식의 저편에 남아있다. 만일 우리가 순수성이란 꿈을 다시 끄집어내 찾아내고, 이를 끝까지 지켜낸다면, 우리는 여우의 말처럼 마음으로·온몸으로 시작한 인식이 가능해지고, 책임을 알고, 가치를 알게 되고, 끝으로는 육안적이고 욕망적인 삶이라는 우로보로스적인 시간에서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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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제1 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서> 18장 25~28장을 말하겠다.
“25 “너희는, ‘주님의 길은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 이스라엘 집안아, 들어 보아라. 내 길이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냐? / 오히려 너희의 길이 공평하지 않은 것 아니냐? /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 27 그러나 악인이라도 자기가 저지른 죄악을 버리고 돌아서서 /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 그는 자기 목숨을 살릴 것이다. /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 <에제키엘 예언서> 18,25-28.
위 예언서에서는 “26 의인이 자기 정의를 버리고 돌아서서 불의를 저지르면, / 그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 자기가 저지른 불의 때문에 죽는 것이다.”, “28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악을 생각하고 그 죄악에서 돌아서면, / 그는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제키엘 예언서>에서는 악한 사람일지라도 선한 사람으로 돌아오는, '선하게 돌아오는 사람'이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100번 선을 행해도 한 번 악을 행하고 그리로 빠진다면, '100번의 선'의 의미는 '100'이라는 숫자에 불과해진다.
또 다른 의미에서, 어쩌면, <에제키엘 예언서>는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이 사필귀정(事必歸正), 개과천선(改過遷善) 할 수 없음을 알려 준 걸지도 모른다. 그러니 사람이 바뀔 것이란 기대 그 자체를 하지 말라는 충고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들이 자유의지로 행한 모든 언행의 의미들은 결국 자신에게 다시 돌아온다. 그때 그들은 죽을 것인가? 살 것인가? 란 갈림길에 ―많이― 놓이게 될 것이다.―이것이 <에제키엘 예언서>의 숨겨진 의미다.
앞서 말했다시피 대부분의 독자들은 내가 인용한 <에제키엘 예언서> 부분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해와 실천의 몫은 다르다. 당신은 이해만 할 것인가? 실천까지 할 것인가? 참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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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산 선생의 수필집을 좋아하다보니, 황현산 선생이 번역한 어린 왕자까지 읽어보게 됐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기 전 읽어줬을 때는 정말 재미없고 지루한 책이었지만, 10년이 지나고 다시 보니 눈물을 흘릴정도의 책이었다.
잃고 싶지 않지만 때에 따라서는 잃고 싶은 순수성.
갈피를 잡기 힘들다.
참고문헌
1)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2015). <어린왕자>(황현산, 역). 열린책들. p. 5 / 앞으로 이 책을 인용할 때는 쪽수만 표기하겠다. 그리고 이 책에서 표기한 인물들의 이름으로 대상을 적시하겠다.
2)
명령하는 자신과 명령받는 타자.
3)
“웃음거리가 되지 않으려고 큰 소리로 기침을 하고 죽는시늉을 하겠지. 그럼 나는 할 수 없이 돌봐 주는 척해야겠지. 그러지 않으면 나까지 부끄럽게 만들려고 정말 죽어버릴지 몰라.”(p. 81)
4)
사업가가 소유에 소용에 관해 계속 강조하자 어린 왕자는 “나는요. (중략) 나는 꽃을 하나 가졌는데 날마다 물을 줘요. 화산 세 개를 가졌는데 주일마다 청소를 해요. 불 꺼진 화산도 같이 청소하니까요. 지금은 죽은 화산이지만 어떻게 될지 누가 알아요. 그것들을 내가 가지고 있는 건 화산한테도 이롭고 꽃한테도 이롭지만, 아저씨는 별들한테 이로울 게 없어요.”(p. 58)라고 말했다. 이 물음에 대답하지 못한 사업가는 침묵했고, 어린 왕자는 그 별을 떠났다. 어린 왕자는 “정말이지 어른들은 확실히 이상야릇해.”(p. 58)라고 말한 뒤 떠났다.
5)
“너는 이상한 짐승이구나 (중략) 손가락같이 가느다랗고…… – 어린 왕자
하지만 난 왕의 손가락보다도 더 힘이 세지. – 뱀
네가 힘이 세다니…… 발도 없는데…… 여행도 할 수 없고…… - 어린 왕자
나는 너를 배보다 더 멀리 데려갈 수 있어. - 뱀
누구든지 내가 건드리기만 하면 자기가 태어난 땅으로 되돌아가지. (중략) 그러나 넌 순수하고 또 별에서 왔으니까…… - 뱀
너를 보니 애처롭구나 이 화강암의 지구 위에서 너처럼 약한 애를 보니. 어느 날 네 별이 너무 그립거든, 내가 널 도와줄 수 있어. 내가 해줄 수…… - 뱀